주요 사탕수수 산지가 이례적인 흉작을 겪으면서 설탕 가격이 12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설탕 가격이 계속 오르면 곧 슈거플레이션(sugarflation)이 닥칠 것이라는 우려도 불거지고 있다. 슈거플레이션은 설탕 가격 상승이 과자나 빵, 아이스크림 같은 가공식품값은 물론 외식 물가까지 끌어 올리는 현상을 말한다.
12일 런던국제금융선물거래소(LIFFE)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설탕 선물 가격은 1톤당 729.6달러로 1년 전(580.2달러)보다 25% 정도 뛰었다.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던 2019년 8월 설탕 선물 가격은 300달러 수준에 머물렀다. 이때와 비교하면 140%가 넘게 올랐다.
최근 10년 동안 톤당 설탕 가격이 700달러를 넘어선 적은 없다. 그러나 지난 5월 700달러를 돌파했다. 이후 3개월 정도 주춤하더니, 이달 재차 700달러를 넘어섰다. 12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유럽연합 통계국(유로스탯)은 “여러 식품 가운데 설탕이 가장 큰 폭으로 가격이 올랐다”며 “2022년 2월과 3월에는 각각 전년 같은 달보다 1.6%, 11% 올랐지만, 올해 2월과 3월에는 2022년 같은 달 대비 평균 61%가 올랐다”고 밝혔다.
백설탕과 설탕 원료로 쓰이는 원당(原糖) 가격도 상승세다. 원당 가격은 지난 8일 뉴욕상품거래소(NYBOT)에서 파운드당 26.31센트에 거래를 마쳤다. 1년 전(17.93센트)보다 47% 올랐다.
지난달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세계 식량 지수를 보면 곡물과 유지류, 육류나 유제품 가격지수는 이전 달보다 모두 내렸다. 하지만 설탕 가격지수는 전달보다 2% 상승했다.
올해 브라질과 인도, 태국 같은 원당 주요 산지는 이상 기후로 수확량이 줄었다.
전 세계 사탕수수 생산 1위 국가인 브라질에서는 폭염으로 생산량이 대폭 감소했다. 2위 수출국 인도는 지난해 5월부터 설탕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4위 수출국 태국도 가뭄으로 작황이 악화해 생산량을 줄였다. 태국설탕생산자협회는 올해와 내년 설탕 수확량이 직전 해보다 20% 정도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뛴 것도 설탕 가격 인상에 불을 지폈다. 에너지 가격이 뛰자 사탕수수 가공공장들은 사탕수수로 설탕을 만드는 대신 이윤이 더 많이 남는 에탄올 생산에 사탕수수를 투입했다.
원당과 설탕 선물가격은 보통 국내 설탕 가격에 반영되기까지 4개월에서 6개월이 걸린다. 이 때문에 지금 당장 설탕을 많이 쓰는 제품 가격이 오르거나, 기업 생산 비용이 뛰진 않는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오르기 시작한 설탕 가격 상승이 이르면 하반기부터 소비자 가격에 전가되기 시작하면 국내 주요 제당 업체들을 중심으로 설탕값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시중에서 파는 설탕은 전량 국내 제당 업체가 수입한 원당에서 불순물을 빼내고 정제(精製)한 형태다.
한국농수산유통공사 관계자는 “국내에 유통하는 설탕 가격 가운데 70~80%는 원당 가격“이라며 “우리나라는 원당 대부분을 호주와 태국에서 수입해 오기 때문에 국제 원당 시세가 오르면 자연스럽게 따라 오르는 구조”라고 평가했다.
원당 가격이 지금처럼 마냥 오르면 국내 제당 업계 경영 실적도 4분기부터는 미끄러질 가능성이 크다.
원당 가격 인플레이션이 절정을 기록했던 지난 2011년 기준 CJ제일제당(097950)·삼양사(145990)·대한제당(001790) 등 국내 3대 제당 회사들은 그해 상반기에만 약 6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상승세를 기록했던 그 직전 해 적자(약 700억원)까지 합치면 3개 회사가 1년 반 동안 1300억원에 달하는 누적 적자를 기록했다.
익명을 요구한 제당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한시적으로 설탕에 할당관세를 적용했고, 이미 수입한 물량이 있어 시장 가격 변동이 심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물가 안정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적자를 면하기 위해 수입국 다변화 같은 다양한 방법을 고려할 것”이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