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 오너들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받는 행위)’ 주식담보 대출을 하는 경우가 나오면서 주가 동향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기업 3~4세들은 상속·증여세를 부담해야 할 때 주로 주식담보 대출을 활용하는데, 주가가 떨어지면 반대매매 위험도가 커지기 때문이다. 반대매매란 담보로 잡힌 주식을 강제로 청산하여 금융권이 대출액을 보전하는 것이다.

그래픽=정서희

21일 금융감독원 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14일 신동빈 회장이 롯데쇼핑(023530) 주식 148만8900주를 한국증권금융에 추가 담보로 제공했다. 이는 신동빈 회장이 지난해 8월 한국증권금융과 1969억원 규모의 주식담보 대출을 받은 데 따른 추가 조치다.

이는 롯데지주(004990)의 주가가 최근 1년 새 하락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신 회장이 주식담보 대출을 체결했던 작년 6월 28일만 해도 롯데지주 주가는 3만6850원이었는데, 18일 주가는 2만4500원으로 33%가량 하락했다.

담보로 잡은 주식값이 떨어지면 담보유지비율(대출자가 유지해야 하는 최저 담보 비율)이 일정 아래로 내려가 반대매매가 실행된다. 반대매매를 피하고 싶다면 그 전에 담보를 더 추가해야 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반대매매 없이 주식담보 대출을 유지하기 위한 담보 물건 추가 설정”이라면서 “최근 롯데지주 주가가 떨어지면서 롯데쇼핑 주식을 추가 담보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롯데그룹은 올 들어 재계 순위가 하락하는 등 성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 재계 순위 발표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줄곧 지켜온 재계 순위 5위 자리를 포스코그룹에 넘겨주고 6위로 내려앉았다.

증권가에서는 롯데쇼핑의 목표 주가도 내려 잡고 있다.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 둔화로 롯데백화점의 매출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유통 업황이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삼성증권은 지난달 롯데쇼핑의 백화점 사업 가치 하락을 반영해 목표주가를 9만9000원에서 7만5000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박은경 삼성증권 연구원은 이날 종목 보고서에서 “백화점 부문은 해외명품, 패션, 잡화 등 대부분 품목의 매출이 정체된 상황이고 물가 상승으로 인건비를 비롯한 대부분의 비용이 늘었다”고 했다.

그래픽=정서희

한때 한국콜마홀딩스도 윤상현 부회장이 보유한 주식이 반대매매로 나올 수 있다는 우려를 받았다. 윤 부회장은 지난 2016년과 2020년에 부친인 윤동한 회장에게 한국콜마홀딩스 지분을 증여받으면서 체결한 주식담보 대출 때문이다.

윤 부회장은 증여로 한국콜마홀딩스의 지분율을 29.2%로 늘렸지만, 수백억원대의 증여세를 부담하게 된 상황이다. 이를 위해 증여세 연부연납(5년간 증여세를 나눠 내는 것)을 신청하고 주식담보 대출을 받아 세금을 내고 있다. 지난달 24일 기준 윤상현 부회장의 보유주식(544만5158주)의 93%인 509만7463주가 주식담보 대출이나 세금 연부연납에 의한 담보 제공으로 묶여있는 주식이다.

지난 4월 윤 부회장이 체결한 여러 주식담보 대출 계약 중 297만주를 담보 잡힌 대신 405억원의 대출을 받은 건의 경우의 주식 담보 비율은 110% 수준. 담보로 잡힌 주식이 455억원 이상은 유지해 줘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콜마홀딩스는 지난 7월 52주 최저가를 기록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지난달 25일 한국콜마홀딩스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당기순이익 50% 이상을 주주에게 환원한다고 밝히고 연내 무상증자, 분기 배당 신설, 자사주 취득 및 분할 소각 등 주가 부양책을 대거 내놨다”면서 “반대매매 우려가 나오면 주가 관리에 취약해지기 때문에 주가 관리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 밖에 다른 유통업체들도 승계 문제와 얽혀 증여받은 주식의 대부분을 담보물로 잡힌 경우가 있다. 오리온(271560) 3세 담서원 상무가 대표적이다. 오리온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기준 담서원 상무의 오리온 주식 48만6909주 중 42만1129주가 증여세 연부연납이나 주식담보 계약 담보로 잡혀있다. 전체 보유주식 중 86% 수준이다.

증여·상속 전문의 한 세무법인 관계자는 “오너 3~4세는 증여·상속세 재원으로 사용할 만한 공식적인 자금이 급상여 등 보수와 배당뿐인데 이에 비해 증여·상속세가 크다 보니 아무래도 주식담보 대출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면서 “주가 등락이 크면 이에 따라 담보 비율을 밑돌면서 반대매매가 나올 위험이 있으므로 평상시 주주 친화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고 주가 관리에도 유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