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에 이어 과자까지 가격을 인하한 가운데 원자재 값이 떨어진 다른 식품으로 눈길이 쏠리고 있다. 대표적인 식품이 커피다.

지난해 커피 제조사는 물론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앞다퉈 원가 상승을 이유로 판매 가격을 올렸는데, 최고가를 찍던 가공 전 원두(생두) 수입 가격이 하락하면서 커피값 하락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는 커피가 직장인들의 애호식품이 된 데 따른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성인 한 사람이 마시는 커피 소비량은 연간 353잔인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하루 0.9잔 꼴로 세계 성인 1인당 커피 소비량(연간 132잔)과 비교하면 2.7배 수준이다.

서울 시내 한 스타벅스 매장의 모습/뉴스1

30일 관세청의 품목별 수출입 실적에 따르면 생두 수입 가격은 지난해 7월 1톤(t)당 5472달러로 최고가를 기록한 이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달 생두 수입 가격은 1톤당 4323달러로 최고가 대비 21% 하락했다.

조제커피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동서식품은 지난해 생두 가격 인상을 핑계로 두 차례 값을 올렸다. 동서식품의 ‘맥심 오리지날 170g’ 리필용 상품은 지난해에만 17.6% 올랐다. 그 밖에 맥심 모카골드 커피믹스(1.2kg)와 맥심 카누 아메리카노(90g)도 9.8% 가량 값이 올랐다.

당시 동서식품은 “커피원두와 물엿이나 설탕 등 주요 원자재 값이 오르고 에너지 비용과 환율이 오르면서 값을 조정하게 됐다”고 했다.

그 사이 주요 커피 프랜차이즈도 아메리카노 가격을 연쇄적으로 올렸다. SCK(옛 스타벅스 코리아)는 스타벅스 아메리카노(237ml) 가격을 지난해 1월 4500원으로 올렸다. 우유가 들어가는 카페라테 등 다른 음료들도 100~400원 가량 인상했다. 스타벅스가 값을 올린 것은 2014년 7월 이후 약 7년 6개월 만이다.

스타벅스가 커피값을 올리자 다른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도 줄줄이 인상 행렬에 동참했다. CJ그룹이 사모펀드 칼라일에 매각한 투썸플레이스는 아메리카노(355ml) 가격을 4500원으로 400원씩 올렸다. 투썸플레이스가 커피값을 올린 것은 2012년 8월 이후 9년 5개월 만이다.

그 뒤를 할리스커피, 탐앤탐스, 파스구찌, 커피빈 등이 따랐다.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이 4000~6000원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픽=정서희

직장인들은 커피값이 올라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이승현(39)씨는 “식사 후에 부서원들에게 커피 한 잔을 사주는 것이 상사의 미덕이었는데 그 미덕을 지키기도 어려운 시대가 됐다”고 했다.

하지만 커피 제조사들은 원두 가격이 떨어져도 판매가에 포함되는 전기료, 물류비, 인건비 등이 올라 당장 가격 인하를 결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또 원두는 달러화로 결제하는데 최근 환율이 다시 오름세로 가닥을 잡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29일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1315원대에 거래됐다.

통계청의 커피 생산자 물가 지수는 2015년 기준점 100을 웃돌고 있다. 커피믹스 생산자물가지수는 지난해 1월 105.83을 기록한 뒤 오르기 시작해 올해 초 117.22를 기록하고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커피음료의 생산자물가지수도 지난해 1월 103.22에서 지난 1월 114.77을 기록, 비슷한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장기간 커피 가격을 인상하지 않고 최대한 감내하다 오랜만에 값을 올린 것이기 때문에 당장 가격 인하를 검토할 상황은 아니다”고 했다.

동서식품 관계자도 “커피 국제 선물 가격은 인상되기 전인 2년 전에 비해서 아직도 30% 이상 높은 수준이며 선물 구매 특성상 구매한 후 국내 원재료 투입까지는 반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즉각적인 가격 반영이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제분이나 제과·제빵업체가 가격을 내리기 어렵다고 주장했던 것과 맥락이 같다.

동서식품은 지난해 1600억원의 이익을 냈다. 커피 원두 가격이 오르며 두자릿수 영업이익률이 10년만에 9.9%로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그러나 다른 식품사가 3~5%대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 점을 감안하면 조제커피 시장을 독점하는 동서식품이 수십년간 두자릿수 영업이익률로 높은 수익을 내 온 셈이다.

제과업계 관계자는 “물가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소비자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고통은 분담하자는 차원에서 가격 인하 발표를 하는 것일 뿐, 여력이 있는 건 아니다”고 했다.

반면 라면이나 과자, 빵과는 달리 커피는 일종의 기호식품이고 서민 음식으로 분류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가격은 기업이 일단 자율적으로 결정하되 소비자로부터 선택을 받지 못하면 기업 스스로 가격을 낮추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나서 모든 가공식품 가격을 하나하나 다 때려 잡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면서 “정부가 개별 품목을 하나하나 겨냥해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건 과도한 처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