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언론의 지적을 받고 마지못해 제품 가격을 내리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

“가격 올릴 땐 경쟁적으로 너도 나도 올리더니, 내릴 때는 마지못해 찔끔 내리나.”

28일 서울 마포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시민들은 국내 식품기업들의 라면·과자 가격 인하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라면·과자 가격 인하는 환영할 일이나, 그 과정의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는 것이다.

28일 서울 마포구의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는 프리랜서 이인석(43)씨가 라면 코너를 살펴보고 있다./이민아 기자

제분업계가 밀가루 납품가를 인하하기로 하면서, 라면업계 1위 농심(004370)은 지난 27일 신라면과 새우깡 가격을 7월 1일부로 내린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같은 날 삼양식품(003230)이, 다음날인 28일엔 오뚜기(007310)와 팔도까지 가세해 대표적인 라면 회사들이 전부 제품 가격을 낮추기로 했다.

28일엔 과자업계도 제품 가격 인하 발표를 했다. 롯데웰푸드(280360)와 해태제과가 제품가격 인하를 발표했다.

잇달은 경쟁사들의 가격 인하 발표에도 과자업계 1위 오리온(271560)은 꿈쩍하지 않고 있다. 오리온은 작년 9월 과자 가격을 약 16% 인상하며 영업이익률 15%를 내기도 했다.

제빵업계 1위 SPC그룹의 SPC삼립이나 파리바게뜨는 30종 가격을 내린다고 밝혔다.

이날 대형마트와 커피숍, 편의점 등에서 만난 시민들은 라면·과자 가격 인하에 대해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인하 폭이 인상 폭에 비해 적고, 자발적인 인하가 아니라 정부의 압박에 못이겨 마지못해 가격을 내리는 것 같아 보기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날 서울 서대문구의 한 대형마트 과일 코너에서 장을 보던 최연숙(64)씨는 “제조사들끼리 경쟁하듯 가격을 올릴 때는 눈에 띄게 확 올리면서, 내릴 때는 마지못해 찔끔 내리는 게 보기 좋지는 않다”며 “그나마도 가격을 내린 적은 그동안 거의 못 본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인하 결정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서울 중랑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박소민(31)씨는 “원재료 가격 인하에 따라 제품 가격을 내려주는 선례가 있어야 소비자들이 가격이 원가에 따라 왔다갔다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며 “그래야 추후 가격을 올릴 때도 소비자들이 이해해주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박씨는 이어 “식품 기업들이 가격 인하를 발표하는 것은 고객들에 자신들의 회사 이름을 인지시키는 행위이기도 하다”며 “가격 인하로 만들어내는 홍보 효과까지 감안하면 가격을 더 많이 낮췄으면 한다”고 말했다.

라면 업계의 제품 가격 인하 움직임이 식품업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는 28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과자가 진열되어 있다. 이날 롯데웰푸드와 해태제과가 과자 가격 인하를 발표했다. /연합뉴스

서울 마포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라면 코너를 살펴보던 프리랜서 이인석(43)씨는 “아이가 있어 과자와 라면을 자주 산다”며 “기업들이 정부와 언론의 눈치를 보고 가격을 내리는 걸로 보이는데, 양심적으로 서민들의 삶을 보고 먼저 움직였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개입이 과도하다는 의견도 꽤나 다수였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라면값 인하’ 발언이 윤석열 정부의 철학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왔다.

다른 제품들도 대부분 가격이 올랐는데 라면이나 과자만 겨냥했다는 것이다. 사실 라면이나 과자는 절대적인 가격이 높지 않기 때문에, 전기료 등 공공요금을 낮춰주는 등 실질적으로 가계에 더 도움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서울 마포구 대형마트에서 라면 코너를 살펴보던 김한결(36)씨는 “맥주 값도 오르고, 대부분의 공산품 가격이 올랐는데 라면 가격만 높다고 하는 게 부자연스럽다”며 “정부가 너무 개입하는 것이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알아서 내려갈 수 있게 둬야 한다”고 말했다.

한 프랜차이즈 빵집 앞에서 만난 김명철씨(39)씨는 “가격 몇백원 내린다고 장바구니 물가가 확 떨어지는 체감 효과가 크지 않다”며 “시장경제에서 개별 품목을 하나하나 지목하는 윤석열 정부의 행태가 마뜩찮다”고 지적했다.

서울 중구 편의점에서 만난 장범주(29)씨는 “식품 회사들이 가격을 낮추겠다니 좋은 일이지만, 정부가 결정할 수 있는 전기요금, 난방비나 좀 내려줬으면 좋겠다”며 “사실 라면과 과자는 가격이 비싸지 않아 큰 부담은 없고, 생활비에 더 부담이 되는 품목은 저런 것들”이라고 말했다.

거시경제 전문가들은 물가 당국의 과도한 개입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재부는 모든 가공식품 가격을 하나하나 다 때려 잡을 계획인지 묻고 싶다”며 “정부가 개별 품목을 하나하나 겨냥해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건 과도한 처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