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식당의 메뉴 소개같지만, 사람이 먹을 음식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문을 열 예정인 ‘반려견 오마카세’의 셰프가 반려견이 먹을 음식을 내어주면서 했던 설명이다.

23일 청담동 한 애견 카페에서 반려견이 먹을 캥거루 고기를 그릴에 구워주고 있는 직원들./이민아 기자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대로변에 문을 연 애견 카페를 반려견과 함께 찾았다.

‘반려견 오마카세’는 김선권 카페베네 창업자가 새롭게 도전하는 사업이다. 그는 2008년 카페베네를 선보인 지 5년 만에 세계 곳곳에 1000개 매장을 내며 ‘프랜차이즈 신화’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한때 스타벅스와 커피빈을 제치고 토종 커피전문점으로 1위에 올라서기도 했다. 그러나 경영 악화로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등 쓴 맛을 본 그가 이번에는 고급 애견 카페 사업으로 재기를 노린다.

카페 2층으로 올라가자 일식 주방장 차림을 한 직원이 나와서 상냥하게 인사하고 기자의 반려견에게 ‘구찌 펫코트’를 권했다.

이 펫코트는 실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에서 제작한 반려견 옷으로, 가격은 133만원이다. 펫코트를 챙겨 든 직원은 유리 벽으로 공간을 구분한 방으로 기자와 반려견을 안내했다.

사람 3명이 앉을 수 있는 등받이 의자와 사진 찍기 좋은 알록달록한 보료, 작은 자개 밥상이 마련돼 있었다. 반려견 오마카세를 위한 방은 3개이며, 한 방에 강아지 3마리로 입장이 제한된다. 사람은 최대 6명 정도가 앉으면 꽉 찰만한 크기였다.

반려견 오마카세 전경. 1시간 30분동안 대여해주는 구찌 펫코트를 입은 반려견이 보료에 앉아있다. /이민아 기자

식탁에는 반려견의 이름 ‘루니’가 적힌 환영 쪽지가 놓여있었다. 이 공간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반려견이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반려견이 먹을 음식에 대한 안내를 적은 쪽지도 함께 놓여있었다.

7가지 코스 요리가 나오며, 소형견(7㎏ 미만) 기준 5만8000원, 중형견(7㎏ 이상 15㎏ 미만) 6만 8000원, 대형견(15㎏ 이상) 7만8000원의 가격이다. 반려견이 먹는 양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의 반려견은 5.6㎏ 짜리 몰티즈로, 평소 한 끼에 먹는 사료 양이 성인 여성 주먹 크기보다도 적기 때문이다.

음식은 사람 음식과 달리 짠맛, 단맛 등을 내는 음식 밑 간은 하지 않는다. 예약 때 미리 반려견의 알러지나 식습관을 알리면 이에 맞춰 음식이 준비된다. 메뉴는 전부 ‘휴먼 그레이드(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품 원료를 사용하여 만든 사료의 등급)’라고 업체 측은 설명했다.

사람을 위한 메뉴는 와인과 하이볼 등 주류, 그리고 핫윙과 감자 튀김, 감바스 등 4가지 안주류가 마련돼 있었다. 안주류 가격은 1만원 후반대. 끼니를 해결할 수 있을만한 메뉴는 없었다. 사람이 앉는 좌석에 넓게 준비된 테이블과 공간이 무색하게, 먹을 게 없었다.

반려견 오마카세 직원들이 준비하는 식사를 반려견이 침착하게 기다리고 있다./이민아 기자

이날은 7가지 코스 요리 중 두가지 메뉴를 기자의 반려견이 직접 시식했다. 기자의 반려견은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성향이 있어, 음식을 가져다주는 직원들이 접근할 때 우렁차게 짖었다. 평소 산책 때도 낯선 사람이 주는 간식은 잘 먹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우리 개가 다른 사람이 주는 음식을 과연 잘 먹을까’ ‘오마카세가 진행되는 내내 시끄럽게 굴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우려가 민망할 정도로, 기자의 반려견은 순식간에 셰프가 손으로 먹여준 음식들을 먹어치웠다.

일식 주방장 차림의 김혜련 셰프가 접시를 들고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코스 요리 시연이 시작됐다. 그는 “펫푸드 스타일리스트 자격증과 반려동물 행동교정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며 “견주들이 원할 경우 문제 행동 교정법 등에 대해 설명해주고 대화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려견 오마카세의 메뉴 중 하나인 '신비한 비밀 화원'을 셰프가 가져다주고 있다. 사람이 아니라 강아지가 먹을 음식이다. /이민아 기자

대표 메뉴로 미국산 소고기와 국내산 메추리알, 노르웨이산 연어 등을 주재료로 한 ‘신비한 비밀화원’이라는 요리가 소개됐다. 오르골을 돌려 김 셰프가 노래를 틀고, 메뉴 소개를 시작했다.

1분 안팎의 메뉴 설명 시간이 지나고, 그는 음식의 주인공인 강아지가 먹기 좋게 곰돌이 모양 그릇에 음식을 옮겨담았다. 보는 즐거움은 있지만, 화려한 플레이팅에 비해 음식의 양은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견주들의 재미를 위한 연출에 초점을 맞춘 일종의 ‘퍼포먼스’로 느껴졌다.

뒤이어 다음 메뉴인 ‘청정육 열정구이’가 나왔다. 한차례 구운 호주산 캥거루 고기를 직원들이 견주가 보는 앞에서 한번 더 그릴에 구운 후, 먹기 좋은 온도로 식히기 위해 부채질을 해줬다. 고기를 굽는 고소한 냄새가 방 안 가득 퍼졌다. 반려견이 킁킁거리며 반응했다.

이번에도 퍼포먼스가 끝난 후에 음식은 곰돌이 모양 그릇으로 옮겨 담아졌다. 기자가 맛을 볼 틈도 없이 반려견이 순식간에 음식을 먹어치웠다.

반려견 오마카세의 메뉴 가운데 '청정육 열정구이'. 한차례 익혀서 나온 호주산 캥거루 고기를 그릴에 다시 한번 구워 먹기 좋게 식힌다. 셰프가 고기를 손으로 잘게 부숴서 반려견 식기에 옮겨 담는다. /이민아 기자

2가지 요리만 나왔지만 이미 평소 소형견의 식사량을 넘어섰다. 김 셰프는 “강아지의 과식이 우려될 경우, 견주가 요청하면 추후에 나올 요리를 포장해줄 예정”이라고 밝혔다.

반려견은 이날 이 곳에서 두가지 요리 만으로도 배불리 먹었다. 반려견은 극도로 높았던 경계심이 누그러져, 셰프가 오마카세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그를 빤히 바라보고 우호적인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직원들은 낯가림이 심한 강아지를 다루는 데에도 능숙했다.

그러나 코스 요리가 진행되는 동안, 견주가 음식을 먹을 여유는 거의 없었다. 직원들의 오마카세 퍼포먼스를 지켜보고 강아지를 데리고 있느라 도저히 틈이 나지 않았다. 기자 대신 셰프가 반려견에게 고기를 먹여주는 동안, 간신히 콜라 몇 모금과 감자튀김을 다섯조각 먹는 데 그쳤다.

업체 관계자는 “견주들이 음식을 먹을 시간이 부족할 것이란 걱정이 있다”면서 “추후 ‘이팅 서비스(eating service·셰프가 반려견에게 먹여주는 서비스)’도 도입해 견주들도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곳을 운영하는 최선아 퍼피라운지 대표는 “반려견 오마카세를 처음 준비할 때 주변 사람들이 많이 웃었다”며 “사람도 돌 잔치, 회갑 잔치를 하듯 강아지에게도 이런 이벤트를 열어주고 싶어하는 견주들이 많이 있다는 데 착안해 이 곳을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