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東)아시아는 바람 잘 날이 없다.

한·중·일 3개국 정세(政勢)는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요동친다.

외교적 갈등은 단순히 정치에 그치지 않고, 경제와 사회·문화 분야에도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2019년 반일(反日) 불매 운동 ‘노(no) 재팬’이나, 최근 부쩍 불거지기 시작한 반중(反中) 정서는 국가 차원을 넘어 각 국 소비자 삶에도 긴장감을 불어 넣었다.

올해 역시 미국과 대만 등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한·중·일 3개국이 미묘한 줄다리기를 벌이는 가운데, 지난 13일 아시아 리더스 클럽(ALC·Asia Leaders Club)과 동아시아문화센터가 동아시아 3개국 주류(酒類)를 주제로 서울 성수동에서 ‘아시아 주류 페스티벌(Asia Liquor Festival)’을 열었다.

아시아 리더스 클럽은 비영리 청년 네트워크로, 2021년부터 다양한 행사와 캠페인을 통해 아시아가 가진 매력을 알리는 단체다. 현재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씨(58)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노재헌 이사장은 동아시아문화센터 센터장이기도 하다.

노재헌 이사장은 이날 행사 개회사에서 “술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문화를 연결하고 새로운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라며 “동아시아 젊은 리더들이 ‘술’을 매개체로 국경을 넘어 화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 주제는 ‘우애를 위한 건배’였다.

한국에서는 보해양조와 복순도가가 간판 상품을 놓고 시음회를 열었다. 중국을 대표해서는 서봉주를 수입·유통하는 화강주류와 중국 ‘국주(國酒)’ 마오타이(茅臺)를 들여오는 용성통상이 참석했다. 니혼슈코리아는 일본 전 지역에 걸친 니혼슈(日本酒)를 선보였다.

그래픽=정서희

한·중·일 세 나라는 비슷한 듯 하면서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마찬가지로 한국 술과 일본 술, 중국 술 역시 대체로 쌀이나 수수, 보리 같은 곡물을 이용해 술을 담그지만, 각 나라마다 개성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한국과 일본은 쌀로 술을 만들고, 곰팡이를 이용해 누룩을 만드는 점은 서로 닮았다. 역사학계에 따르면 술 문화는 고대에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개항기 이후에는 반대로 일본에서 한반도로 술 문화와 기술이 대거 들어왔다. 일제강점기 이후 대거 들어온 일본산 쌀 누룩은 여전히 국내 전통주 업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현대 이후 일본을 대표하는 술은 소위 ‘사케’라 불리는 청주다. 반면 한국은 전통주 가운데 탁주로 분류하는 막걸리를 주도적으로 소비한다. 일본 사케는 투명도와 숙성을 위해 쌀을 얼마나 깎아내는지 여부가 중요하지만, 한국 막걸리는 쌀 자체가 가진 풍부한 영양분을 빠르게 섭취하는 식으로 마시다 보니 도정을 중요한 변수로 여기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에 비해 광대한 곡창지대를 자랑하는 중국은 독자적으로 수수나 보리, 밀, 콩 같은 다양한 곡물을 이용해 술을 빚었다.

이날 아시아 주류 페스티벌에 참석한 참가자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복순도가 손막걸리, 일본의 다양한 사케, 중국 역사를 대표하는 명주 서봉주와 마오타이를 맛보면서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해 있다는 유대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행사에 참석한 그룹 소녀시대 겸 연기자 권유리씨는 “평소 막걸리를 직접 만들어서 마실 정도로 한국과 중국, 일본 각 나라가 자랑하는 전통주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런 술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서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화합의 장이 생겨서 좋았다”고 말했다.

아시아 리더스 클럽은 한·중·일 3개 국가 주류 페스티벌로 시작한 이번 행사를 앞으로 아시아 문화 페스티벌로 확대해 더 크게 열 계획이다. 이날 행사에도 일부 국가들을 대표해 그림 작품과 사진을 전시했다.

행사장 전면을 장식한 김수연 작가의 ‘달의 모든 시간’이 그 예다. 이 작품은 한·중·일 세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소망이라는 정서를 담은 ‘달’을 소재로, 한 달 동안 볼 수 있는 달의 주기를 표현했다. 그 밖에도 행사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중국 쓰촨성 지방의 독특한 연기 기법 변검 공연과 우리나라 여성 가수 유하의 무대가 이어졌다.

노 이사장은 “이번 행사로 ‘원(one)아시아’ 문화 창조 협력의 첫 발걸음을 뗐다”며 “한국을 시작으로 앞으로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에서 다양한 문화 행사를 열며 교류의 장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 요소를 융합해 확대, 발전시켜 아시아의 매력을 발굴하고 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하겠다”고 덧붙였다.

약 200여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는 노 이사장의 누나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 추조 주한일본공보문화원장, 심효강 주한중국문화원장, 어우보첸 한중일 3국협력사무국(TCS) 사무총장 등이 참석했다. 아시아 리더스 클럽은 입장료로 거둔 수익금 전액을 볼룬티어코리아에 기부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