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울음소리가 귀해진 시대다. 가임여성 한 명이 낳는 아이를 뜻하는 합계 출산율이 역대 최저치인 0.78명까지 하락했다. 저출산 분위기가 굳어지면서 분유 회사들이 제각기 살길을 도모하고 있다. 아무래도 분유 소비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2일 시장조사 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분유시장 규모는 2897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합계출산율이 1.05명을 기록했던 2017년 시장규모(4314억원)보다 33% 줄어든 수치다.
단종되는 분유도 속속 나오고 있다. 매일유업(267980)의 앱솔루트 본은 작년 11월부터 올 2월까지 순차적으로 납품을 종료했다. 남양유업(003920)은 분유 브랜드 임페리얼XO 유기농(오가닉)도 단종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 분유만 타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몇 년 새 인기를 끌었던 수입 분유도 공급 종류를 줄이고 있다. 2012년부터 프랑스에서 직접 수입한 노발락 분유를 국내에 독점 공급하고 있는 GC녹십자는 최근 노발락 스테이지를 단종한다고 밝혔다.
분유 업계에서는 국내 분유사와 수입 분유사가 격렬하게 싸움을 벌이던 시기도 한 차례 지난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분유사와 수입 분유사는 2017년 이마트가 독일 분유인 압타밀을 공식 판매하기 시작한 이후로 시장 점유율을 둘러싼 경쟁을 벌여왔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광고를 하거나 웹상에서 체험단을 꾸리는 등의 마케팅 활동을 강화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뺏고 뺏기는 점유율 확보를 위한 출혈 경쟁에 더 나서지 못할 상황에 직면했다. 바로 저출산 문제다. 국내 합계출산율은 0.78로 역대 최저치이자 OECD 국가 중 최하 수준을 기록했다. 사회적으로는 인구 감소의 골든타임을 지나쳤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한 가지 분유를 꾸준히 먹이는 문화가 사라진 것도 국내 시장 점유율 확보에 목매지 않는 이유다. 과거에는 산부인과에서 처음 먹인 분유를 그대로 이어가는 부모가 많았다. 영아의 분유를 바꾸는 데에는 최소 일주일의 시간이 필요하고, 두 분유의 비율을 조금씩 다르게 섞어서 먹이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분유 업체들이 산부인과 영업에 공들여 왔던 이유다.
하지만 최근엔 아이 상황에 따라 분유를 바꾸는 부모가 늘었다. 한 조리원 관계자는 “영아가 많이 칭얼대거나 울면 요즘 부모들은 배앓이를 의심해 젖병과 분유를 바로 바꿔준다”면서 “뒤늦은 나이에 어렵게 얻은 아이 한 명에게 온 신경을 다 쏟기 때문”이라고 했다.
분유 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국내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경쟁을 벌이는 때를 지나쳤다”면서 “수익이 나지 않는 분유 라인을 정리하고 성인 단백질 영양식, 해외 진출 등 생존을 위한 경영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
분유 기술을 활용한 건강기능식품 사업에 나서거나 해외 사업을 강화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매일유업은 2018년 출시한 단백질 보충제 셀렉스의 매출이 늘자 2021년 법인을 새로 내고 연구개발(R&D), 마케팅, 판매 등 사업부를 분리했다.
남양유업은 해외사업에 집중하는 것으로 타개책을 삼았다. 2019년 이후로 꾸준히 분유 매출액이 하락하다가 지난해 다시 오른 것은 중국과 대만, 캄보디아, 베트남 등지의 매출이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남양유업의 분유 매출은 1926억원을 기록했다.
남양유업에 따르면 분유의 중국 매출은 전년 대비 20%, 대만은 130%, 캄보디아는 50% 늘었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대만엔 2019년에 처음으로 진출했는데 아직 현지에서 판매하는 한국분유는 남양유업이 유일하다 보니 반응이 좋은 편”이라면서 “캄보디아나 베트남은 한류 영향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