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대일(對日) 수출 효자 상품으로 꼽혔던 막걸리가 일본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국내 주류업계에서 일제강점기 이후 현대 막걸리 역사는 크게 3시기로 구분한다. ‘막걸리 1.0′은 값싼 밀 막걸리의 시대다. 질이 낮은 외국산 밀가루로 빚고 아스파탐 같은 인공 감미료로 맛을 보완했던 시기다. ‘막걸리 2.0′은 짧지만 폭발적인 부흥기였다. 2009년 막걸리가 일본에서 웰빙 식품으로 잘 팔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에서도 관심이 되살아났지만, 유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국내에서는 2020년 들어 좋은 재료를 이용해 제대로 담근 1만원대 이상 ‘프리미엄 막걸리’가 등장하면서 ‘막걸리 3.0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최대 수출 시장이던 일본에서 국산 막걸리 입지는 막걸리 2.0 시대에서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 이때와 비교해 수출량이 80% 가까이 줄었다. 원조 한국산 막걸리가 빠진 자리는 일본 브랜드가 일본 현지에서 일본 쌀로 만든 맛코리(マッコリ)가 차지했다. 일부 일본 브랜드는 ‘맛코리’라는 일본 이름으로 해외 수출까지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김치가 기무치(キムチ)와 종주국 여부를 두고 국제사회에서 지리한 싸움을 했던 것처럼 막걸리도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28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식품수출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으로 수출한 막걸리 물량은 8140톤(t)으로 10년 전 2012년에 비하면 3분의 1 이하로 줄었다. ‘막걸리 르네상스’로 불렸던 2011년에 비하면 21% 수준밖에 안 된다.

그나마도 지난해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이 끝나갈 분위기를 보이고, 일본 내 한국 음식점들이 인기를 끈 덕분에 2015년 이후 7년 만에 기록한 가장 좋은 기록이다. 일본 엔화 환율이 100엔당 1200원 가까이 뛰었던 2020년 무렵에는 2011년 대비 16% 선까지 수출 물량이 줄었다.

그래픽=손민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관계자는 “현지에서 시장조사를 해보면 환율 같은 환경에 문제가 있다기보다, 일본 소비자 취향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한 쪽에 가깝다”며 “막걸리에 대한 국제 규격이 없다 보니 여러 한국 기업이 술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바나나나 땅콩, 알밤 같은 부재료들을 바꿔 넣으면서 그때그때 유행 따라가기에 바빴다”고 평가했다.

술은 음식처럼 각 나라가 가진 문화적 소산(所産)이다. 우리나라 문화재청도 이 점을 인정해 주요 술 제조법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해 관리한다. 현재 술과 관련한 무형문화재는 모두 32건이다. 2021년 문화재청은 ‘막걸리 빚기’가 “역사성과 학술성, 대표성, 사회문화적 가치가 높다”며 국가무형문화재로 정했다.

글로벌 주류 시장을 포함한 국제 사회에서 막걸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술’이라는 인식이 확고하다. 하지만 아직 법적으로 확실한 신뢰를 구축하진 못했다. 막걸리가 제품 정의와 재료, 숙성 방식과 맛 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려면 국제식품규격(CODEX)을 획득하는 편이 가장 확실하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식품연구원은 지난 2016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주도했던 한식세계화 일환으로 막걸리 CODEX 지정을 추진했지만, 정권 교체 이후 진행 소식이 뚝 끊겼다. 우리나라 전통 식품 중 국제식품 규격을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경우는 김치뿐이다. 김치는 2001년 일본 기무치를 누르고 CODEX 지정을 받았다.

일본에도 막걸리와 비슷한 탁주가 있다. 청주를 걸러내기 직전 상태인 니고리자케(濁り酒)다. 이 술은 알코올 도수가 14~16도 정도로 막걸리에 비해 독하다. 이 때문에 한창 일본 시장에서 부드러운 우리나라 막걸리가 인기를 끌 때도 좀처럼 이 흐름에 올라타지 못했다.

하지만 니고리자케를 만들던 양조장들 가운데 일부가 일본 소비자 취향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이들이 일본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자 지난 10년 동안 이들을 뒤따르는 지역 양조장이 급증했다. 일부는 한국으로 원정 수련까지 오면서 관련 기술 습득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현재 일본 내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 라쿠텐에서 인기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는 제품들을 보면 절반 이상이 일본산 ‘맛코리’다. 가격이 병당 1000엔(약 1만원)을 넘어가는 프리미엄 막걸리 시장으로 제한하면 이 차이는 더 두드러진다. 키누사라, 요시쿠보주조 ‘토끼의 춤’처럼 병당 1만원을 웃도는 프리미엄 막걸리 시장 인기 제품은 전부 일본산 누룩과 일본산 쌀을 이용해 일본인이 만든 맛코리다.

키누사라를 만든 야마모토 코지는 국순당 공장이 자리 잡은 횡성에서 3년 동안 머물면서 관련 기술을 터득한 지한파(知韓派)다. 요시쿠보주조 역시 11대째 술을 빚는 유서 깊은 양조가다. 이들은 전통 기법을 맛코리 양조에 접목하거나, 유리병에 넣어 고급술 전문점에서 유통하는 식으로 경쟁력을 확보했다. 하마치주조에서 만든 거북이 맛코리는 태국 시장에 진출했다. 아시아 베스트 바 1위에 꼽힌 홍콩 ‘코아’에서는 칵테일 베이스(기주)로 아리가양조에서 만든 ‘안개의 꽃’ 맛코리를 사용했다.

그래픽=손민균

반면, 국순당(043650)과 대한주조, 포천이동, 부산생탁 같은 우리나라 기업들은 병당 5000~6000원 안팎인 저가 막걸리 시장에서 분투하는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막걸리가 5000원이라면 비싼 값이지만, 일본 시장에서 팔리는 이 가격대 막걸리는 우리나라에서 1병당 1000원대 후반에서 2000원대 초반에 팔리는 제품과 포장까지 똑같은 경우가 많다. 다만 물류비와 유통비가 붙어 일본 시장에서 3배 가까운 가격에 팔린다.

그나마 최근에는 이 병당 500~600엔(5000~6000원) 시장마저 일본산 저가 맛코리 공세에 흔들리고 있다. 일본 회사 도니 맛코리가 만드는 ‘본가 나마 맛코리’는 도쿄 인근 치바현 양조장에서 일본산 쌀로 빚은 생막걸리다. 일본 현지에서 빚어 신선함을 유지하면서, 가격을 낮췄다. 효모가 살아있는 생막걸리임에도 가격은 우리나라 막걸리 3분의 2 정도인 350엔(약 3500원)대다.

우리나라 생(生)막걸리는 냉장 유통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이전보다 수출은 수월해졌지만, 공급가격과 일본 내 콜드체인(저온 수송체계) 확보 문제로 시장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점을 겨냥한 현지 기업들이 속속 나오면서 우리나라서 만든 원조 막걸리는 고가와 저가 어느 시장에서도 이렇다 할 존재감을 드러내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주류 관련 칼럼리스트 오다지마 히로유키(小田嶋 博之)는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한류(韓流)로 한국 막걸리가 인기를 얻었던 시기가 2010년 초반이니, 이때 한국 막걸리를 처음 마셨던 소비자가 20살이라고 해도 이제 30살이 넘었을 것”이라며 “그때 막 시장에 발을 들인 엔트리(entry)급 소비자들이 경제력과 취향을 갖추면서 막걸리에 있어 종주국이나 ‘원조’ 개념보다 술 자체 품질이 구매를 결정하는 주된 요소로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일본에서 젊은 소비자들에게 과일이나 곡식을 넣은 한국산 막걸리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들도 장기적으로 보면 막걸리 본래 맛에서 벗어난 제품에 금방 싫증을 내지 않을까 싶다”며 “인공 감미료를 빼고 요구르트와 같은 신맛, 쌀 본래의 맛을 양조장 고유 누룩으로 살린 제품들이 한국에도 많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