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 상품 ‘포카칩’의 원료인 감자 가격이 국내외에서 치솟으면서 오리온(271560)이 울상이다. 지난해 주요 상품값을 올리면서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이 회사는 올해 감자를 비롯한 주요 원부자재 가격이 오르자 정부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 달 28일 12개 주요 식품 회사와의 ‘물가안정 간담회’를 마치고 나온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비공개 간담회를 마치고 나오는 자리에서 업계의 건의 사항 가운데 하나로 ‘감자 수급’을 언급했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감자를 구입하고 있다./뉴스1

정 장관은 “예컨대 감자는 여러 이유 때문에 사올 수 있는 나라가 제한돼 있다”며 “국내에서 더 생산하고, 해외에서 확보하는 노력을 정부가 해달라는 건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업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는 이승준 오리온 대표의 건의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오리온은 감자를 활용한 제품이 많다. 생산 중인 스낵류 15종 중 5종이 감자를 주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이 중 포카칩·스윙칩·오감자 등 오랜 기간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이 감자를 주 원료로 쓴다. 안정적인 감자 수급이 오리온에 중요한 이유다.

6월~12월 초 정도까지인 국산 감자 수확기를 제외하면 오리온을 비롯한 해태제과, 농심 등은 감자 원료 과자에 호주산, 미국산 감자를 사용한다. 식물방역법에 따라 미국과 호주의 특정 지역에서 재배한 감자로 수입 대상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혹시 모를 각종 병해충의 국내 유입을 막기 위해 정부가 까다롭게 관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후 이상으로 인해 미국과 호주의 감자 가격이 최근 급등했다. 미국 내 감자 농가 마케팅 전문 조직인 ‘포테이토스 USA’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산 감자 1파운드당 가격은 1년 전보다 16.1% 상승한 2.15달러였다.

1달러대였던 1파운드당 미국산 감자 가격이 지난해 급등한 것이다. 미국 내 감자 가격은 2021년 6.2%(1.85달러), 2020년 1.8%(1.74달러), 2019년 1.9%(1.71달러) 등 최근 3년간의 가격 상승률보다 훨씬 높은 변동폭을 나타냈다.

호주산 감자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호주에서 두번째로 큰 슈퍼마켓 체인인 ‘콜스 그룹’은 한번 결제할 때 냉동 감자 튀김을 두 봉지까지만 살 수 있도록 제한을 두기도 했다.

이는 감자 농사 흉작으로 인해 수급에 차질을 빚으며 감자 가공품 생산량이 줄어든 데 따른 것이다. 특히 호주에서 뉴 사우스 웨일즈주와 빅토리아주의 감자 수확량은 지난 해 평균보다 더 습한 겨울과 광범위한 홍수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

오리온 관계자는 “글로벌 기후 변화, 물류 대란 등으로 인해 수입 감자의 가격 상승뿐 아니라 공급 자체가 불안한 상황이며, 수입 국가 다변화를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이 28일 서울 서초구 식품산업협회에서 식품업계 간담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이민아 기자

정 장관이 직접 식품업계 대표들을 불러 “상반기에는 가격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으름장을 놓은 만큼, 원재료인 감자 가격이 올랐다고 제품 가격을 인상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래서 정부에 원가 절감 노력의 일환으로 “해외 수급 다변화”를 요청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해외에서 들여오는 외국산 감자의 공급 확대는 규제로 인해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수급 가능한 미국산, 호주산만 구해다 원재료로 쓰려면 원가가 올라가는데, 이런 원가 인상률을 제품에 그대로 반영할 수도 없는 ‘눈치 보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9년만에 16개 제품의 가격을 평균 15.8% 인상한 오리온은 매출 2조8732억원, 영업이익 4667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게다가 영업이익률은 16.2%를 나타냈는데, 이는 대부분 5%대 영업이익률을 나타내는 식품업계에서 독보적인 실적이다. 주요 제품 가격을 인상하고 중국, 베트남, 러시아에서 매출이 확 늘어난 영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