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많은 위스키를 꼽으라면 이구동성으로 스코틀랜드에서 만든 위스키 ‘맥캘란’을 꼽습니다.

맥캘란은 2019년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 ‘파인앤드레어 1926년’ 60년산이 150만파운드(약 25억원)에 팔려 세계 최고가 위스키 기록을 세울만큼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습니다.

맥캘란을 소유한 영국 에드링턴그룹은 거래 실적이나 시장 규모 같은 여러 요소를 고려해 매번 국가 별로 배정하는 맥캘란 양을 조정합니다. 어느 나라에서든 수요가 넘치기 때문에 우리나라 시장에서 아무리 인기가 많다 해도, 애초에 배정하는 물량이 넉넉치 않습니다.

이 때문에 주요 주류 판매점들은 맥캘란이 새로 들어오면 단골 소비자에게 서둘러 알람을 보냅니다.

6일 서울 이마트 용산점에서 시민들이 매장 개장 시간에 맞춰 위스키를 구매하고 있다. /뉴스1

가령 ‘위스키 성지(聖地)’로 통하는 서울 시내 한 대형 마트에 지난주 맥캘란 18년 셰리 오크 제품이 들어왔습니다.

이 제품은 맥캘란 위스키 여러 제품들 가운데서도 대중적으로 가장 선호도가 높은 제품입니다.

증류 직후 위스키 원액은 보드카처럼 무색투명하고, 보리향이 짙게 납니다. 알코올 도수도 약 70%로 그냥 마시기에는 너무 높습니다. 이 원액을 참나무통(오크)에서 여러해 숙성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아는 위스키의 다양하고 깊은 풍미가 생깁니다.

특히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유난히 스페인 남부에서 만드는 와인 ‘셰리’를 넣어뒀던 참나무통에서 숙성한 위스키를 선호합니다. 산화 숙성을 하는 셰리 특성 상 묵직한 견과류 향이 나무에 배어들고, 건포도와 카라멜 향에서 오는 달큰함이 부드러운 목넘김을 주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도 잘 팔리는 브랜드 맥캘란에 한국인이 좋아하는 셰리 숙성까지 마쳤다니 시중에서 얼마나 인기가 많을지 예상이 됩니다.

하지만 이 제품을 낱병으로 사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일반 소비자가 찾는 주요 주류 판매점은 물론, 도매상을 통해 위스키를 구매하는 바(Bar) 사장님까지 거의 모든 판매 채널에서 이 제품은 묶음 판매만 합니다.

지난 16일 한 대형 주류 전문점은 ‘맥캘란 18년 셰리 오크와 옐로우 로즈 라이, 네이키드 몰트’ 이렇게 3병을 묶어 67만3000원에 판다고 내세웠습니다.

옐로우 로즈 라이와 네이키드 몰트는 시장에서 악성(惡性) 재고로 통합니다. 언제든지 쉽게 살 수 있는 비(非)인기 상품들입니다.

그렇다고 딱히 가격이 싸지도 않습니다. 각각 실제 판매가를 기준으로 9만원대, 7만원대 후반을 웃돕니다. 67만3000원 가운데 50만원은 맥캘란 몫이라고 쳐도, 나머지 16만~17만원을 사고 싶지 않아도 살 수 밖에 없는 이들 상품에 들여야 하는 셈이죠.

한 주류판매점의 맥캘란 18년 셰리 오크 한정 판매 광고.

국내에 맥캘란을 수입하는 디엔피스피리츠(DnP Spirits)가 국내에 들여오는 제품 중에는 하이랜드 파크(Highland Park), 글렌로시스(Glenrothes), 페이머스 그라우즈(Famouse Grouse) 처럼 국내 시장에서 이미 입지를 굳힌 다른 인기 위스키도 많습니다.

다만 이런 제품들은 끼워팔기 상품으로 묶이는 법이 없습니다. 구하기 힘든 맥캘란을 맛이라도 보고 싶은 소비자라면 울며 겨자먹기로 인지도가 떨어지는 위스키를 십수만원 이상 줘가며 같이 사야만 한다고 한탄합니다.

이 회사 제품을 취급하는 한 주류 판매점은 디엔피스피리츠는 맥캘란 셰리 오크 18년 6병, 클래식컷 2022년산 2병, 맥캘란 12년 12병을 파는 조건으로 소매점에 미국 위스키 옐로우로즈 24병과 휘슬피그 24병을 강제로 끼워 팔았다고 주장합니다. 맥캘란 스무병을 사려면 미국 위스키 48병을 같이 사야 하는 구조라는 말입니다.

디엔피스피리츠 측에 사실 관계 여부를 문의해보려 했지만, 디엔피스피리츠와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은 명백히 끼워팔기를 금지합니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45조(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 항목을 보면 ‘부당하게 경쟁자의 고객을 자기와 거래하도록 강제하는 행위’를 불공정거래행위로 정했습니다.

공정거래법 피해자들에 대한 법률 상담을 지원하는 법무법인 바른미래 이영석 변호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끼워팔기 불법성을 판단할 때는 보통 경쟁제한성 여부를 따진다”며 “간단히 말해 위스키 끼워팔기가 소비자 선택권을 강제적으로 침해했거나, 주류업계 공정한 경쟁에 방해가 됐을 경우 처벌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불공정거래행위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닙니다.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만큼 중대한 범죄행위입니다.

현재 소규모 주류 판매업자들은 이런 주류수입사 ‘끼워팔기’ 갑질 사례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사례들이 충분히 모이면 이들은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 사안을 고발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모처럼 물이 들어온 위스키 시장에서 노를 저어 보려는 수입사로선 지금 상황이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수입 주류 수입사들은 ‘허니버터칩도, 포켓몬 빵도 다들 끼워팔기 했는데 왜 유독 위스키만 가지고 이러느냐’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빠르게 달궈진 쇠는 빨리 식는다고 합니다. 허니버터칩도, 포켓몬 빵도 그 열기가 계속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국내 소비자들은 억울하다는 수입사와 못 살겠다는 주류 판매점 사이에서 원하지 않는 제품에 마지 못해 지갑을 열고 있습니다.

모처럼 달궈진 국내 위스키 시장이 오래도록 성장하려면 수입사도, 판매점도 소비자 선택권은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