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장식된 잔으로 새벽까지 와인을 마시자!
심장을 한없이 뛰게 하는 사랑을 위해 축배를 들자!
이 잔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사랑의 키스에 이 잔을 바치자!
주세페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와인은 수없이 많은 사랑 이야기에 등장한다. 때로는 사랑의 묘약으로, 이따금 사랑을 깨뜨리고 연적(戀敵)을 해치는 도구로 쓰인다.

와인과 얽힌 사랑 이야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 마지막 파라오였던 클레오파트라 여왕과 로마 황제 줄리어스 시저(율리우스 카이사르) 이야기다.

익히 알려진 이 두 인물 사이에서 와인은 시저의 진심을 전하는 꽃다발 역할을 했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시저는 기원전 47년 클레오파트라 여왕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궁전으로 와인이 담긴 가죽포대를 전달했다. 로마에서 알렉산드리아는 3900킬로미터(km)가 떨어져 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보다 10배 이상 멀다.

이미 지중해 패권을 손에 쥔 시저였지만, 내륙 도시 로마에서 이집트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까지 와인을 나르는 길은 멀고 험했다.

당시 소아시아로 불렸던 터키까지 육로로 3000킬로미터 이상을 이동한 다음에야 배에 와인을 실을 수 있었다. 포도품종학(Ampelography)을 기반으로 고대 포도주 풍습과 전통을 연구하는 고고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그때 가죽포대에 담긴 와인을 현재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 일대에서 자라는 브라케토(Brachetto) 품종 포도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 적포도 품종은 껍질이 두껍고 과육이 많아 달콤한 레드와인을 만들기 좋다. 지금에야 달콤한 와인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지만, 로마시대에는 ‘얼마나 더 달콤한가’ 여부가 좋은 와인을 가르는 척도였다. 완성된 와인에 꿀이나 맥아즙, 허브까지 첨가해 당도를 높이고 부패를 막았다.

브라케토 품종 포도 향을 화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장미와 카네이션을 추출했을 때 나오는 페닐에탄올 성분이 다량으로 들어있다. 여기에 들장미 향을 내뿜는 제라니올 성분이 무르익을 수록 농축된다.

입에서는 달콤함을, 코로는 장미 향을 느낄 수 있는 브라케토 와인은 자연스럽게 사랑을 불렀다. 로마 귀족들은 이 와인에 강한 최음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로마시대 문학 작품을 보면 ‘갈리아 키살피나(Gallia Cisalpina) 지역 와인은 향기가 좋고 달아서 공화정 원로들이 제일 좋아했다’는 문장이 수차례 등장한다. 갈리아 키살피나 지역이 오늘날 토리노와 밀라노, 파르마를 아우르는 지역이다.

로마 귀족들은 이 중에서도 특히 이탈리아 아퀴(acqui) 지역에서 브라케토로 만든 와인에 ‘비눔 아쿠엔세(vinum acquense)’라는 이름을 붙여 더 높게 평가했다. 당대 최고 권력자였던 시저라면 클레오파트라 여왕에게 사랑을 갈구하기 위해 분명 이 와인을 골랐을 것이라고 역사가들은 추측한다.

그래픽=이은현

시저와 클레오파트라 모두 비극적으로 생을 끝냈고, 로마제국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2000년 전에 비눔 아쿠엔세를 만들던 아퀴 마을에서는 여전히 같은 포도 품종으로 와인을 만든다.

이탈리아에서는 아퀴 마을에서 브라케토로 만든 와인을 브라케토 다퀴(Brachetto d’Acqui)라고 부른다. 로마시대에는 공화정 원로나 이집트 여왕 정도 되야 즐길 수 있는 고급 와인이었던 이 술은 이제 누구나 즐길 만큼 대중적이고 저렴한 와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브라케토 다퀴는 다른 품종을 섞지 않고 브라케토 포도로만 만든다. 아퀴 마을은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산기슭에 자리해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를 지닌다. 겨울은 매우 춥고, 여름은 덥다.

해발고도는 높지 않지만, 일교차가 커 더운 낮에는 포도 알맹이가 안에 당분을 축적하고, 서늘한 밤에는 진한 향기를 품는다. 토양 또한 석회암과 모래가 많아 포도에 섬세한 맛을 더한다. 그 덕에 여전히 이 지역에서 자란 브라케토는 섬세하면서도 진한 향에 달콤함까지 갖추고 있다.

브라케토는 레드와인 품종이지만, 그 특유의 달콤한 포도향을 살리기 위해 양조 과정에서 기포를 만든다. 기포 강도에 따라 프리잔테(Frizzante)와 스푸만테(Spumante)로 나뉜다.

두 와인은 와인 병 겉면에 써있는 글씨로 구분할 수 있지만, 코르크로도 알 수 있다. 프리잔테는 기포가 약하고 부드러워 일반 코르크 마개를 사용한다.

반면 스푸만테는 기포가 상대적으로 강해 샴페인같은 버섯 모양 코르크를 써야 한다. 프리잔테와 스푸만테 모두 샴페인처럼 거품을 강하게 뿜어내지는 않지만, 입 안에서 잔잔하게 혀를 쏘는 느낌을 준다. 작고 끊임없이 솟아 오르는 거품이 장미와 딸기 향을 화사하게 실고 오다 한 순간에 파도처럼 사라지면서 청량감을 남긴다.

사랑을 맛으로 표현한다면 아무래도 달콤함이 가장 가깝다. 수많은 와인이 격전을 벌이는 이탈리아에서 브라케토 다퀴는 일년에 두 번 정도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연인끼리 달콤한 사랑을 표현하는 크리스마스와 발렌타인데이다.

브라케토 다퀴는 알코올 도수가 5~6%로 낮아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이라도 편하게 마실 수 있다. 청량음료 같은 단 맛은 케이크나 과일, 초콜릿과 잘 맞는다. 입 안에 남은 느끼함이나 알싸함을 기포가 씻어주기 때문에 치킨같은 튀긴 음식이나 매운 양념을 더한 음식과 마셔도 좋다.

아랄디카 브라케토 다퀴 프리잔테 돌체는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협동조합 아랄디카에서 브라케토로 만든 기포가 약한 레드와인이다. 이 와인은 아퀴 지역에서도 해발고도가 높은 알토 몬페라토 언덕에서 자란 브라케토 포도로 만들었다.

해발 고도가 높을수록 햇빛을 듬뿍 받은 질 좋은 포도가 자라기 때문에 이 언덕은 인근 농부들 사이에서 ‘향기로운 언덕(aromatic hills)’이라 불린다. 아랄디카 브라케토 다퀴 프리잔테 돌체는 2022 대한민국주류대상에서 3만~6만 구대륙 레드와인 부문 대상을 받았다. 국내 수입사는 나라셀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