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와인 생산량 세계 4위의 와인 대국이다. 50개주 전역에서 와인을 생산할 만큼 와인 산업이 발전했다. 고가·저가 와인은 물론, 와인 제조·숙성에서의 다양한 실험까지 성행하고 있다. 1976년 ‘파리의 심판’을 계기로 미국이 모방이 아닌 다양화로 생산 초점을 돌리면서다.

파리의 심판은 미국 와인의 우수성을 알아본 영국의 한 와인 평론가가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 지역의 와인과 프랑스의 명품 와인을 두고 연 블라인드 테이스팅이었다. 당시 미국 와인은 프랑스 보르도산 레드 와인과 부르고뉴산 화이트 와인을 모두 누르고 1위에 선정됐다.

그래픽=이은현

미국 와인은 파리의 심판 이후 빠르게 분화했다. 미국만의 고가·고급 와인 생산에 주력하는 한편 1만원대 저렴한 가격에도 높은 품질을 낼 수 있는 데일리 와인으로도 생산을 늘렸다. 그러면서 새로운 숙성 방식으로 와인의 맛을 높이거나 새로운 향을 더하는 실험을 계속했다.

델리카토 ‘1924 버번 배럴 에이지드 카베르네 소비뇽’은 미국의 와인 다양성 실험의 대표적인 결과물로 꼽힌다. 버번 배럴 에이즈드라는 이름 그대로 버번위스키 숙성에 사용했던 오크통을 그대로 가져와 ‘카베르네 소비뇽’(포도 품종) 레드 와인에 위스키의 풍미를 더했다.

버번위스키는 대표적인 미국 위스키다. 다만 버번이란 이름을 쓰기 위해선 몇 가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미국에서 만들어져야 하고 최소 51% 이상의 옥수수를 증류에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내부를 불에 그을린 새 오크통만을 써야 한다. 재사용 시 버번이 아니다.

델리카토는 버번위스키 오크통을 가져다 와인 숙성에 썼다. 한번 사용된 버번위스키 오크통은 버번위스키를 숙성하기 위한 목적으로는 재활용할 수가 없다는 점에 착안했다. 버번위스키 오크통은 일반적으로 스카치위스키, 스타우트 맥주 등의 숙성 오크 통으로 사용돼 왔다.

‘1924 버번 배럴 에이지드 카베르네 소비뇽’에 붙은 숫자 1924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출신 인델리카토 가문이 델리카토 와이너리를 설립한 해다. 술의 제조, 판매는 물론 소유마저 금지됐던 금주법(1920~1933년) 시기 와인을 버번위스키 숙성에 쓴 오크통에 숨겼던 역사를 담은 것이다.

델리카토 ‘1924 버번 배럴 에이지드 카베르네 소비뇽’. /레뱅드매일 제공

1924 버번 배럴 에이지드 카베르네 소비뇽은 캘리포니아 로다이(Lodi)에서 난 카베르네 소비뇽 중 과육이 단단하고 품질이 좋은 것을 선별해 만든다. 로다이는 나파 밸리, 소노마 밸리에 비해 인지도는 낮지만, 캘리포니아 포도 생산의 24%를 차지하는 주요 생산지로 꼽힌다.

카베르네 소비뇽은 78%다. 여기에 로다이산 ‘쁘띠 시라’(14%), ‘말백’(6%) 등을 더한 뒤 포도 주스와 껍질을 함께 두고 효모를 첨가해 발효한다. 이후 침용을 거친 와인을 프렌치 오크 배럴에 9개월 숙성한다. 버번 오크통 숙성은 가장 마지막 과정으로 2개월 숙성 후 병입한다.

짙은 루비색의 1924 버번 배럴 에이지드 카베르네 소비뇽은 레드 와인에 달콤하고 오크 향이 진한 버번위스키를 한 숟가락 더한 풍미를 냈다. 카베르네 소비뇽 레드 와인이 갖는 과일향에 더해진 위스키의 캐러멜 향이 인상적이었다. 무겁진 않았지만, 입안은 제법 텁텁해졌다.

이 와인은 새롭고 독특한 와인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최근 주목받고 있다. 2022 대한민국 주류대상 ‘레드 와인 신대륙-6만원 이상 10만원 미만’ 부문 대상을 받았다. 국내에선 레뱅드매일이 수입·판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