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6시(뉴욕 현지시각), 미국 뉴욕의 심장 타임스퀘어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맨해튼 32번가 초입은 불금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한인타운이라고도 불리는 32번가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이겨낸 미국 최대 백화점 체인 메이시스(MACY’S)를 비롯해 각종 쇼핑몰과 호텔, 식당이 즐비한 번화가와 맞닿아 있어 워낙 유동인구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10~20대들이 새롭게 유입되고 있다.
동양인 유학생이 코로나19로 떠나간 빈 자리에 K문화에 열광하는 미국 MZ세대(밀레니얼+Z세대·1981~2010년생)가 몰려들며 한류 놀이터로 재정의 되고 있다.
BBQ K타운점에 들어서자 황금올리브치킨, 양념치킨, 허니갈릭치킨 등 포장된 상품을 가져갈 수 있는 그랩앤고(Grab and go·제품을 집어서 가져가는 것) 매대 앞에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1층 안쪽 공간에는 구입한 치킨을 바로 먹을 수 있는 테이블에서 혼자 온 10대가 친구와 스마트폰으로 영상통화를 하면서 치킨을 먹거나 2~4인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들이 가장 많이 먹는 메뉴는 ‘허니갈릭치킨과 쌀밥’. 제법 능숙한 젓가락질로 치킨과 쌀밥을 번갈아 먹는 모습이 신선하면서도 친숙하게 느껴졌다.
간장 소스로 달콤한 맛을 낸 허니갈릭치킨과 쌀밥의 궁합을 좋아하는 현지인들이 많아 K타운점에서 일종의 시그니처 메뉴가 됐다. K타운점 구글 리뷰에도 ‘치킨과 밥을 함께 먹으라’는 추천 글이 많다.
◇ 한국 대학가 연상케 하는 인테리어…치킨+과일소주 인기
한국 치킨을 맛보는 것을 넘어 서울 감성을 느끼고 싶은 1020세대가 찾는 곳은 따로 있다. K타운점 지하다.
계단을 내려가자 아이돌 블랙핑크가 최근 발매한 곡 핑크 베놈(PINK VENOM)이 흘러나왔고 살짝 어두운 조명에 갈색 벽지, 그 위를 덮은 소주 광고 포스터 같은 것들이 한국 대학가 맥주집을 연상케 했다.
테이블을 가득 채운 이들은 인종도 나잇대도 다양했다. 어린아이들과 함께 온 대가족부터 친구들끼리 온 현지 20대들, 회식중인 30대 동양인 직장인들, 백발의 노년 부부까지 한국 치킨 매장에선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치킨 메뉴는 황금올리브 후라이드 치킨, 매운 양념치킨과 허니갈릭, 소이갈릭, 치즐링 한마리와 반마리, 순살과 날개 등으로 한국과 큰 차이는 없었다. 가격도 한마리에 18.5달러(2만6000원)로 환율 상승을 고려하면 한국과 비슷하다.
테이블 위에 치킨 만큼이나 초록색 소주병이 자주 보였다. 대부분이 과일소주였다. K타운점에서는 소주와 맥주를 처음부터 섞어서 판매하는 소맥 메뉴도 있는데, 현지인들은 과일소주를 많이 찾는다고 한다. 칵테일과 비슷해 젊은층이 친숙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K타운점을 이미 여러번 찾았다는 20대 셋에게 미국 치킨과 BBQ 치킨의 차이가 뭐냐고 묻자 단칼에 ‘맛(flavor)’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K팝을 좋아한다는 재클린은 “이렇게 달콤한 맛이 나는 치킨은 미국에 없다”며 “무엇보다 이곳에 오면 한국 문화를 경험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 BBQ K타운점은 매일이 불금…日 매출 4만弗
BBQ는 2006년 미국에 진출한 뒤 현재 캐나다, 일본, 대만, 독일,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57개국에 500여개 매장을 두고 있다. 해외 사업 매출은 2020년 585억원에서 작년 1178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해외 사업 중심축인 미국에서 K타운점은 매출을 책임지는 핵심 점포다. 하루 매출이 평균 4만달러(5300만원)에 이른다. 단순 계산하면 한달 16억원 매출이 나오는 셈이다. 치킨을 튀기는 기계가 꺼질 새가 없을 정도다.
2017년 문을 연 뒤 2019년까지 성장 가도를 달리던 중에 코로나19가 닥쳤다. 유학생들이 자국으로 돌아가면서 위기를 맞았지만 배우 손예진, 현빈 주연 드라마 ‘사랑의불시착’이 넷플릭스에서 방영되며 모객 효과를 톡톡히 했다.
사랑의불시착에선 주·조연 배우들이 한국 치킨을 먹는 장면이 여러차례 자연스럽게 나온다. 이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BBQ는 그리스, 파나마 등에서도 러브콜을 받아 1호점을 준비하고 있다.
K타운점의 콘셉트는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서울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한국 BBQ와 치킨 맛을 동일하게 유지하고 사이드 메뉴로 떡볶이, 로제떡볶이, 찜닭, 김치볶음밥, 부대짬뽕탕 등 K푸드를 내놓는다.
한국식 섞어먹는 주류 문화에 관심을 갖는 현지 고객들을 위해 소주에 사이다, 메로나를 섞은 ‘메로나 소주’, 크랜베리주스와 소주를 섞은 ‘소주 칵테일’ 등 한정 메뉴를 수시로 내놓고 틱톡과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홍보한다.
이강인 BBQ 전략마케팅 팀장은 “좋은 원재료를 써서 맛있는 치킨을 만드는 것 만큼 문화 마케팅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류가 유행하면서 유학생들 사이에서 한국 문화가 주류로 떠올랐고 한인타운의 고객이 유학생에서 현지인으로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