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열풍이 불기 시작하기 전인 1990년대에는 우리 같은 재일 한국인들이 일본 사람들에게 한국 농식품도 선물하고, 먹여도 보고 발로 뛰면서 밑바닥에서부터 진입 장벽을 낮췄어요. 요즘엔 한국 농식품이 인기가 꽤 많죠. 일본 가게에서 파는 김은 대부분 한국산인 시대가 왔으니 뿌듯합니다.”
김규환 재일한국농식품연합회장

재일한국농식품연합회장이자 일본 도쿄 최대 코리아 타운인 신오쿠보의 상인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김규환 히토시나상사 대표(이하 김 회장)는 지난달 18일 일본 도쿄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1966년생으로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그는 지난 1991년 일본으로 건너가, 31년째 한국 농식품을 일본에 수입하고 있다.

18일 일본 도쿄에서 김규환 재일한국농식품연합회장이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이민아 기자

그는 한·일간 교류가 지금보다 활발하지 않던 1990년대부터 한국 농식품을 일본에 유통했다. 악수를 청하는 두툼한 손에서 타지에서의 풍파를 이겨낸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재일농식품연합회는 한국 농수산식품을 수입하는 32개 업체로 구성된 단체다. 연합회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이베이 재팬과 지난 9월 업무협약(MOU)를 맺기도 했다. 일본 내 K푸드 수출 확대 및 온·오프라인 소비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취지에서다.

aT 뿐 아니라 일본 수출을 활성화하고 싶어하는 한국 지방자치단체도 연합회에 적극 손을 내민다. 경남 밀양시는 지역 농식품을 일본에 더 많이 수출하고자 하는 목표로 지난 4일 연합회와 MOU를 맺기도 했다.

김 회장이 말한 것처럼, 연합회는 재일 한국인들이 ‘밑바닥에서부터’ 다져온 일본 내 판로와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 농식품을 더 많이 알릴 수 있는 효율적인 통로인 셈이다.

그는 “1990년대 초만해도 한국 농식품은 일본에 있는 한국 사람만 먹었다”며 “지금은 한국 농식품 수요가 늘면서 연합회 소속 회원사들의 올해 예상 매출액이 약 1조원에 달할 정도로 시장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동일본대지진 때 혐한 분위기로 고초...한류 열풍으로 분위기 반전

김 회장은 “일본에서 한국 농식품을 한 품목이라도 입점시키려면 2년은 족히 걸렸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간신히 바이어를 찾아가 “한국 음식 한번 맛이라도 봐달라. 정말 맛있다”고 설득하고, 입점시키는 것에 간신히 성공해도 첫 해에는 딱 한개 점포에서만 소량으로 팔 수 있도록 해줬다고 한다.

그는 “130개 점포가 있는 마트 체인인데도 딱 한 점포만 한국 식품을 팔 수 있게 기회를 주더라”며 “1년을 또 기다리고, 팔린 실적을 확인 후 그 다음해부터 입점할 수 있는 점포를 1년마다 10개씩 추가해주는 식으로 일이 진행되곤 했다”고 말했다.

보수적인 일본의 유통 체인에서 한국 농식품을 팔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사업하며 그가 가장 힘들었던 때는 지난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확산됐던 ‘혐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타고 있다’는 식의 근거 없는 혐오 분위기로 인해 한국 식품에 대한 선호가 당시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한국 농식품을 들여오는 동료들의 50% 가까이는 그때 도산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일본의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일본에서 확산하면서 집 안에서 해먹을 수 있는 비상 식량으로 ‘한국 라면’이 널리 인기를 얻었다.

그는 “한류 스타들의 인기가 매우 높아지면서, 한국 음식을 먹는 장면들이 일본 미디어에 많이 노출돼 인기가 배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게 대부분 한국산 김 사용... “RCEP 무역장벽 낮추는 기회 될 것”

김 회장은 “일본의 어느 가게든 김을 팔고 있다면, 그 김은 대부분 한국산일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aT의 농식품수출정보(KATI)에 따르면, 김은 올해 9월 기준 한국 농식품 가운데 수출액 기준 일본으로 가장 많이 수출된 품목 4위(9636만달러·약 1276억원)에 올라있다.

김은 지난 2020년에는 대(對)일 농식품 수출 품목 가운데 3위(1억3291만달러·약 1760억원)까지 올라갔었다. 지난해 5위로 내려가며 다소 주춤했지만 올해 다시 수요가 증가하면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김 회장은 “일본의 김 수입 관련 협회에서 한 해의 수출량을 미리 한국 수산조합들에 주문한다”며 “한국 김을 더 많이 수입해 오고 싶지만, 항상 한국산 김을 사다가 일본에서 팔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물량이 모자라다”고 말했다.

마른 김이나 조미김 뿐 아니라 김으로 만든 과자를 의미하는 김스낵의 인기가 늘면서 매년 한국을 대표하는 ‘효자 상품’으로 꼽히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2월 발효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두고 김 회장은 “한국과 일본의 첫 자유무역협정(FTA)이므로 의미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그는 “RCEP으로 일부 품목의 관세 철폐 뿐 아니라 15개국의 통일된 원산지 규격이 마련되고, 증명과 신고 절차도 간소화된다고 하니 무역 장벽이 한층 낮아지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일본 정부가 자국산을 보호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농수산물 수입에 대한 문턱을 많이 낮추지 않은 점은 아쉬운 점으로 꼽혔다.

김 회장은 “RCEP 식품 분야 협상에서 한국 식품이 단기 관세 철폐 및 삭감 대상에 포함될 수 있도록 계속해 협상해 나가는 한국 정부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제작지원: 2022년 FTA분야 교육홍보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