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BTS 등 한류 열풍에 힘 입어 한국 농식품이 전세계 무대에서 기량을 뽐내고 있다. 일본에선 한국식 소주와 파프리카가, 미국에선 젓갈을 사용한 진짜 한국 김치가, 프랑스에서는 배와 새송이 버섯, 대만에서는 고랭지배추가 현지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CPTPP),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같은 ‘거대 자유무역협정(메가 FTA)’은 국가간의 교역을 활발히 해 K푸드의 영토를 더욱 확장할 것이란 기대감을 지피고 있다. 조선비즈는 K푸드에 열광하는 전세계 주요 현장을 직접 찾아 FTA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외국으로 수출되는 한국 파프리카의 99.5%는 일본으로 간다. 일본 내에서 유통되는 파프리카 가운데 82.37%는 한국산이다. 파프리카는 일본에 수입되는 한국 신선농산물의 간판이다. - 김진호 농협인터내셔날 대표

지난달 18일 일본 도쿄 대표 쇼핑몰 긴자식스 안에 위치한 편의점 ‘로손(Lawson)’.

이 곳에 들어서자 각종 과일향이 가미된 한국 소주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국 소주는 일본에 방영된 한국 드라마의 인기를 등에 업고 일본 주요 편의점과 마트에 입점돼 있다.

김경현 CJ푸드 재팬 마케팅부장은 “일본 주요 편의점에서 한국 소주가 냉장 매대에 진열돼 있는데, 냉장 매대는 잘 팔려야 진열할 수 있는 자리인데 이는 충격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래픽=손민균

조선비즈가 지난달 13~18일 일본 현지에서 만난 농식품 수출 기업인들은 한국 농산물과 식품, 주류가 일본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점을 고무적으로 평가했다. 불과 수 년전만 해도 ‘혐한’ 분위기 탓에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판도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 식품의 인기에 더해, 장기적으로 관세를 낮춰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올해 발효된 것을 또 하나의 호재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국의 대(對) 일본 수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RCEP, 전세계 15개국 가입한 ‘메가 FTA’...관세, 10~20년 간 단계적 축소·철폐

한국과 일본 간의 첫 번째 자유무역협정(FTA)인 RCEP은 한국, 중국, 일본 및 아세안(ASEAN),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 국가가 참여하는 ‘메가 FTA’다.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2월 1일 발효됐다.

코트라(KOTRA)에 따르면, 이 지역의 GDP 총합은 전 세계의 약 30%에 달한다. 한국무역협회 도쿄 지부에 따르면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는 RCEP 가입 15개국 중 한국이 3위 수혜국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RCEP 발효 시 역내 국가의 총 무역액은 420억달러 정도 늘어나고, 우리나라의 역내 무역액은 약 70억달러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일본(200억 달러)이나 중국(110억달러)의 증가분에는 못 미치지만, 상당한 수준이다.

일본에 수출된 국산 파프리카./농촌진흥청 제공

한국 정부도 RCEP으로 농식품 수출에 있어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농식품부는 “우리나라 수출 유망 품목 중 소주, 막걸리, 청주, 배, 버섯류 등이 개방됐다”며 “일본은 우리나라 주요 농산물 수출 시장이기 때문에 우리 농식품 수출에 좋은 기회 요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랜 기간 일본에서 한국 식품을 유통하며 현지 사정에 잔뼈가 굵은 김규환 재일한국농식품연합회장은 “관세가 오랜 기간에 걸쳐 철폐되는 만큼,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효과를 체감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겠으나 RCEP 체결은 한국과 일본의 교역이 활발해 진다는 차원에서 기쁜 소식”이라고 말했다.

◇일본 현지 전문가들 “한국 농산물, 해외서 품질 경쟁력 충분해 졌다”

일본 현지에서 농산물을 유통하고 있는 기업인들은 한국 농산물의 품질이 향상된 만큼 가격 경쟁력을 갖춘다면 산업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일본에 한국산 파프리카와 김치를 수출, 유통하는 김진호 농협인터내셔널 대표는 “RCEP의 핵심은 관세를 점진적으로 내려 10년 후에는 0%까지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한국과 일본의 교역이 늘면서 단일 품목 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으로 수입되는 한국산 파프리카는 3%, 복숭아나 자두 등 과일류는 6%의 관세가 붙는다.

김 대표는 “채소류 뿐 아니라 과일류의 경우 RCEP으로 인해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의 농가 수준이 많이 향상돼 일본에서도 과일 품질로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 됐기 때문에 RCEP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품질 경쟁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 사례로 올해 처음으로 일본에 들여온 한국산 천도복숭아를 들었다.

그는 “시험적으로 소량으로 들여온 천도복숭아를 한인마트와 통신 판매 업체에 소개했는데 통신 판매 업체 단계에서 발주 물량이 모두 소진돼 한인마트에는 공급도 하지 못했다”며 “생각보다도 훨씬 한국 농식품의 가능성이 크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일본 편의점에 다른 주류들과 함께 진열돼 있는 국산 소주. 한국 소주는 최근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도쿄=이민아 기자

장서경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일본지역본부장 겸 도쿄지사장은 소주, 막걸리 등 한국 주류가 RCEP의 수혜를 볼 것으로 전망했다.

장 본부장은 “일본에서 인기가 높은 국산 소주와 막걸리에 대한 관세가 20년에 걸쳐 축소된다”며 “최근 한국 드라마에 소주가 자주 등장하면서 인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도쿄에서 가장 큰 할인잡화점인 ‘메가돈키’에 한국 소주가 진열돼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경현 부장도 RCEP이 촉발할 관세 인하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현재 한국에서 수입해 오는 만두의 관세가 21%, 김의 관세가 25%”라며 “관세가 내려가면 사업에 무척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작지원: 2022년 FTA분야 교육홍보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