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푸드 재팬(Japan·일본)의 사무실은 일본 지하철 신바시역에서 나와서 6분 정도 걸으면 나타난다. 신호등 너머 전광판에는 아이돌 가수들이 춤을 추는 영상들이 재생되고 있었다. 같은 건물의 벽면에는 ‘비비고’ 브랜드의 홍보 모델인 배우 박서준이 젓가락으로 김치를 집어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CJ제일제당의 일본 법인인 CJ푸드 재팬의 매출액은 매년 두자릿수로 늘어, 5년 간 5배 이상 증가했다. 성장이 정체된 일본 시장에서 거둔 흔치 않은 실적이다. CJ푸드 재팬의 올해 예상 매출액은 약 4000억원에 달한다. CJ제일제당(097950)에 따르면 일본 매출은 올해 2분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16% 늘었다.
이처럼 급성장하고 있는 CJ푸드 재팬은 과일발효초 ‘미초’와 비비고 만두’를 업고 K푸드 돌풍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미초는 ‘품절 대란’을 일으키며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보이면 일단 사야하는” 제품으로까지 입소문이 나기까지 한 ‘대박’ 제품이다.
일본 내에서 K푸드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CJ푸드 재팬의 김경현 마케팅담당 부장을 지난달 17일 일본 도쿄 CJ재팬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앞서 ‘혐한’ 분위기가 팽배했던 지난 2012~2017년에 일본에서 업무를 하다 한국에 복귀했고, 올해 다시 일본 법인에 파견됐다.
김 부장은 한국에 대한, 그리고 한국 식품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매우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한국 제품을 일본에서 팔 때 고유명사로서 한국 이름을 그대로 쓰는 문화가 일본에 자리잡고 있다”며 “한국 이름을 쓰는 것이 오히려 쿨한(멋진)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달라진 K푸드의 위상을 느낄 수 있었던 일화가 있나.
“일본에서 회사 소개를 할 때 몇년 전만 해도 30분은 족히 걸렸다. ‘CJ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설탕을 만들었던 회사인데, 냉동식품도 하고 만두는 점유율 1위이고’ 등등의 여러 정보를 줘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는 회사 설명이 단 5분이면 끝난다. 먼저 바이어 측에서 연락이 오기도 한다. ‘이온몰’과 같은 일본 슈퍼에서 비비고 제품이 진열돼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다른 회사 이야기지만, 한국 소주 약진도 놀랍다.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한국 소주가 양주나 와인 코너 같은 실온 매대가 아니라 냉장 매대에 진열돼 있더라. 냉장 매대는 회전율이 매우 높아야, 즉 잘 팔려야 진열할 수 있는 자리인데 이는 충격적인 변화다.”
-한식을 대하는 분위기도 과거와 비교해 많이 다른 것 같다.
“2012~2017년에 일본에 파견돼 일했었는데 당시엔 ‘혐한’ 분위기가 강했다. 올해 여름에 다시 돌아와서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러져서 매우 놀랐다. 우리는 한류를 2003년 1차, 2010년 2차, 2016년 3차, 2020년 4차 이렇게 분류한다.
3차 한류 때까지는 연예인의 인기로 한정돼 있었지만, 4차부터는 음식으로 확산된 게 인상 깊다. ‘주꾸미’가 요즘 신오쿠보를 중심으로 인기인데, 유행할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던 메뉴다. 일부 이자카야 업체들이 한국식 술집으로 꾸미고 있을 정도다.”
-식음료 한류가 확산한 계기는 뭘까.
“넷플릭스의 영향이 커 보인다. 10위권 안에 계속 한국 콘텐츠가 있고, 한국에서 인기있는 콘텐츠가 일본에서 실시간으로 유행한다.
-일본 최대 한인타운이자 K푸드 확산의 중심지인 신오쿠보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나.
“한국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는 점이 과거와는 다르다. 신오쿠보에서 ‘꽈배기’가 요즘 인기인데, 예전에는 꽈배기를 팔 때 상인들이 ‘한국식 도너츠’라고 이름 붙여 팔았다. 요즘엔 그냥 ‘꽈배기’라는 한국어 고유명사로 부른다. 일본 10·20대는 그게 더 ‘쿨한(멋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다.”
-매출이 예전과 비교해 얼마나 증가했나.
“5년 전과 비교하면 다섯배, 10년 전과 비교하면 10배 늘었다. 올해 기준 예상 매출이 4000억원인데, 2019년에 1000억원이 채 안 되던 것에 비하면 급속한 성장이다.
일본에는 두자릿수로 성장하는 기업이 거의 없는데, 비교하면 굉장한 성과다. 최근엔 비비고가 성장을 이끌고 있지만, 이전에는 ‘미초’의 판매량이 크게 늘면서 해마다 20~30%씩 성장할 수 있었다.
영업이익은 흑자를 내고 있다. 적자를 내지 않고 성장하며 현지에서 더 발전하기 위해 재투자 하고 있다. 현지 지상파 방송에 연예인 박서준씨가 나오는 광고를 집행했다. 한국 회사가 일본 내에서 방송 광고를 내는 것 자체가 큰 투자라고 생각한다. "
-위협 요인도 있을 것 같다.
“일본 내 주요 식품 업체들이 한국 음식의 유행을 이용하려 하는 상황이다. 시장이 커지는 것은 좋지만,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경쟁이 심해지는 과정에서 질 나쁜 제품, 즉 한식의 맛을 제대로 담지 못한 제품들을 소비자들이 맛본 후 한식 전체에 대한 안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미초와 비비고의 인기 비결은.
“공통점은 한국 음식에 대해 일본 내에서 갖고 있는 ‘건강함’이라는 이미지 덕을 봤다. 한국 사람들에 대해 예쁘다, 건강하다, 활기가 좋다는 이미지가 제품의 인기에 도움이 됐다. 미초는 이처럼 건강에 도움된다는 인식에다, 술, 우유 등에 섞어먹으면 맛있어 다용도로 쓸 수 있다는 점도 인기 원인으로 작용했다.
비비고 만두는 한국 시장에서 검증된 대표 메뉴들을 들여오면서 ‘한국에서 인기 있는 제품’이라는 인식을 그대로 일본 시장에 전할 수 있었다. 큼직한 건더기가 눈에 보이고, 두부와 당면이 들어있는 것이 새롭고 건강한 음식이라는 인식을 줬던 것 같다.
또 사내맞선 등 미디어에서 비비고가 노출됐고, CJ ENM의 케이콘(KCON)에서 꾸준하게 부스를 열고 K팝 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점도 소비자들에게 인정받는 저변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일본에서 비비고 만두를 ‘교자’라는 이름으로 팔다가, 지난해 11월 한국식 이름인 ‘만두’로 바꿨다. 그 배경은?
“작년에 그래서 박서준이 ‘왕만두 알고 있어?’라는 광고를 했다. 박서준은 일본에서 꾸준히 있기있는 드라마의 주연이었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 ‘쌈마이웨이’ ‘이태원클라쓰’ 등으로 인지도가 올라간 배우를 통해 광고를 했다.
한국 단어를 고유명사 그대로 쓰는 문화가 일본에 정착되고 있다. 우리가 파스타를 ‘이탈리아 국수’라고 번역하지 않듯이. 일본에서도 삼계탕은 삼계탕으로, 비빔밥은 ‘비빔바’로 부른다. ‘사내맞선’이라는 드라마에서도 ‘교자’ 대신 ‘만두’라는 이름으로 수출하자는 내용이 나오는데, 우리 회사의 이런 전략이 드라마 스토리라인에도 반영된 것 같다.”
-K팝, K드라마 등이 한국 음식 인기 확산에 어느정도의 영향을 줬나.
“개별 메뉴보다는 한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나 호감도가 올라가는 것에 영향을 줬다. 좋아하는 사람이 먹는 것을 따라먹는 식이다. 가령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게 되면, 유튜브에서 한국 음식 먹방을 보는 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Z세대가 호캉스를 가서 한국 음식과 술을 사서 사진 찍고 소셜미디어(SNS)에 올리는 게 유행하기도 했다.”
-코로나19는 일본에서 CJ에 기회였나, 위기였나.
“기회였다. 한국을 체험해보고 싶지만 한국에 여행을 못간다든지, 한식 레스토랑에 못간다든지 하는 이유로 한국 기분을 집에서 내는 것이다. 관심과 동기는 있지만 해결되지 못한 호기심을 식품을 통해 체험해본다는 느낌을 준 것으로 보인다.”
-미초, 비비고 만두 외에 CJ가 일본 내 매출 동력으로 새롭게 추진하고 있는 상품은.
“안에 쌀 크런치를 넣고, 바깥은 김으로 싼 김스낵을 집중적으로 판매해보고자 한다.”
-올해부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발효됐다. 한국과 일본은 한중일 FTA를 추진하다 무산되기도 했지만, RCEP으로 다시한번 무역 장벽이 낮아지는 기회가 생겼다. RCEP은 한국과 일본의 교역에 있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만두의 관세가 21%, 김의 관세가 25%다. 관세가 내려가면 사업에 무척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앞으로 일본 시장에서 바라는 점은.
“한식이 일본 내에서 ‘별미’가 아니라 가정식 중 하나가 되는 것. 중식의 경우 마파두부 등은 거의 일본 가정식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아직 한식은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