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돌연 사업 중단을 선언한 유업체 푸르밀이 법인을 청산하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은 절세 효과를 노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푸르밀 창업주 신준호 전 회장, 신동환 대표 등 오너일가는 사업 종료를 선언함으로서 기존 직원들을 내보낸 뒤 부동산을 매각하고 신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수백억원대의 세금을 아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신준호 프루밀 회장(왼쪽)과 신동환 프루밀 대표이사. /조선DB

2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푸르밀은 직원들에게 다음달 말 기존 사업을 종료하고 400여명에 달하는 전 직원을 정리해고 하겠다고 공지하면서 법인 해산·청산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통상 전 직원을 내보내야 할 정도로 경영여건과 재무상황이 악화돼 기존 사업을 계속 영위할 의사가 없는 회사는 상법상 해산·청산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해산·청산은 주주에게 잔여재산을 분배하고 법인격을 소멸시키는 절차다.

푸르밀, 83억원 규모 청산 법인세 회피

푸르밀은 법인을 그대로 둠으로서 청산 법인세를 회피할 수 있다. 청산 법인세는 해산되는 기업의 남은 자산에 부과하는 세금을 말한다.

법인세는 각 사업연도 소득에 대해 부과 돼 푸르밀처럼 매년 적자를 내는 회사는 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법인 청산 시점에는 잔여재산에서 자기자본을 제외한 청산소득에 대해 세금을 내야 한다.

푸르밀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재무제표를 토대로 단순계산해 보면 작년 말 기준 377억원의 청산소득이 발생했고, 법인세율 22%를 적용하면, 이 회사는 83억원의 청산 법인세를 내야 한다.

유가공업서 누적된 결손금, 신사업 진출 때 세금 공제 가능

법인을 유지해야 사업경쟁력이 떨어진 유가공업에서 손을 떼고 신규 사업을 할 때 법인세를 줄일 수 있다.

세법상 영업적자로 누적된 이월결손금은 최장 15년 간 공제받을 수 있다. 당초 10년이었으나 2020년 세법개정에 따라 15년으로 늘었다.

푸르밀은 신동환 대표가 취임한 2018년부터 작년까지 4년 연속 누적 341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작년 말 기준 이월결손금은 394억원이다.

지분 90%를 보유한 신준호 전 회장 오너일가가 사업종료 후 보유한 서울 양평동 본사 부지 등을 개발해 이익을 내더라도 결손금이 없어질 때까지 세금을 공제 받을 수 있다.

푸르밀은 이연법인세 자산을 150억원으로 계상해 재무제표에 반영했다. 이연법인세 자산은 기업회계로 계산한 법인세가 세무회계로 계산한 법인세보다 작을 때 그 차액이다.

이 차액은 앞으로 국세청에 납부할 세금에서 공제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산으로 본다. 회사가 미래에 충분한 수익이 발생한다는 전망이 있을 때만 자산으로 반영한다.

작년 한해 동안에만 124억원에 달하는 영업적자를 낸 푸르밀이 올해 이후 수익을 낼 것이라고 판단한 건 보유 부동산 처분 가능성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서울·전주·대구·부산에 부동산 보유...법인으로 거래해야 세율 낮아

법인으로서 보유한 부동산을 거래해야 낮은 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푸르밀은 서울 문래동 본사 부지를 비롯해 전주·대구 공장과 부산 해운대 지점 토지·건물을 보유하고 있다. 회사에서 반영한 공시지가는 472억원이나 실거래가 기준으로는 1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고소득 프리랜서나 연예인이 법인을 만들어 부동산 투자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은데, 개인일 때보다 대출 한도가 높고 양도세 부담도 줄기 때문이다.

개인은 과세표준 10억원을 초과하면 최고세율 45%를 적용 받지만 법인은 과세표준이 3000억원을 초과해야 25%를 부과 받는다. 과세 표준 2억 초과 200억 이하는 20%, 200억 초과 3000억 이하는 22%다.

국내 한 세무컨설팅 회사 대표는 “자산 매각에 걸림돌이 되는 직원들을 다 털어내고 회사 지분이나 보유 부동산을 외부에 넘기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노동조합이 있으면 업종을 전환하거나 신규 사업을 추진하기 힘들지 않나. 정리해고한 뒤 빈 땅에 건물을 올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