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오산에 터를 잡은 오산양조장은 인구 23만명인 오산시의 유일한 양조장이다. 2016년말에 생겼으니 아직 신생 양조장이다. 2018년에 ‘오산막걸리’, ‘오매백주’ 2종의 무감미료 막걸리를 처음 출시한 후 증류주 ‘독산’, 그리고 2021년에 프리미엄막걸리 ‘하얀까마귀’를 새로 냈다. 오산양조장이 전국에 1000곳이 넘는 양조장과 다른 사실은 ‘젊다’는 점뿐 아니다. 다른 양조장과는 드물게 마을기업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마을기업? 마을기업은 지역공동체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 운영하는 사회적기업의 하나다. 그래서, 오산양조장 설립의 첫번째 목적은 ‘좋은 술 만들어 돈 많이 벌자(매출을 크게 올리자)’가 아니다. ‘오산 지역쌀로 오산을 대표하는 술을 빚어 지역사회인 오산시를 알리자’가 오산양조장의 가장 큰 목적이다.

오산양조장 오서윤 이사가 제품들을 설명하고 있다. 현재 오산양조장은 막걸리 3종, 증류주 2종, 요리술 2종을 생산하고 있다. /박순욱 기자

오산양조장 제품들은 모두 오산과 관련된 이름을 쓰고 있다. 오산막걸리는 아예 지역사회명을 그대로 쓰고 있다. 병 라벨에는 ‘오산 대표 막걸리’란 글도 적혀 있다. 오산을 대표할 만큼 자부심이 있다는 얘기도 되지만, ‘오산을 알리는 막걸리’란 의미도 담고 있다.

‘오매백주’는 오산을 대표하는 새 까마귀(오)와 오산의 꽃 매화(매)에서 글자를 따와 이름을 지었다. 가장 최근에 나온 ‘하얀까마귀’ 역시 오산의 새 까마귀와 관련 있다. ‘검은 까마귀가 막걸리를 많이 마셔 하얀 까마귀가 됐다’는 스토리텔링을 만들고 여기서 이름이 비롯됐다.

증류주 ‘독산’ 역시 오산을 대표하는 유적지 ‘독산성 세마대지’에서 가져왔다. 임진왜란 당시 이곳을 지키고 있던 권율 장군이 꾀를 내서 왜군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오는 곳이다. 그러나, 독, 산 이런 글자는 술, 식품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상품명 승인을 받는데 애를 먹었다. 결국 국민신문고에 호소한 끝에 사용 승인을 받아냈다. 심지어 증류주 독산은 알코올 도수까지 오산과 관련 있다. 독산은 2종이 있는데, 이중 53도 제품은 ‘53′이 오산과 발음이 비슷하다고 해서, 30도 제품은 2019년이 ‘오산시 승격 30주년’이라고 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제품명 전체를 지역사회와 관련해서 지은 사례는 오산양조장 말고는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오산양조장이 시에서 운영하는 양조장은 절대 아니다. 뜻을 같이 하는 지역주민 여럿이 십시일반 출자해서, 공동 운영도 하는 사회적 경제기업이다.

지역사회를 알리기 위해 만든 공익 목적의 양조장인 만큼 무리해서, 제품을 많이 팔려고 홍보하지도 않는다. 오산양조장은 돈을 들여 인터넷에 제품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지도 않고, 각종 단체에서 주는 상도 비용 부담이 있는 경우는 고민없이 사양한다. 마을기업답게 ‘느리게 그리고 오래 가자’는 생각에서다.

그렇다면 오산양조장이 만드는 술은? 양조장 설립 2년만인 2018년 후반에 나온 오산막걸리(6도)와 오매백주(12도)는 밑술과 한번의 덧담금으로 만든 이양주다. 물, 밀누룩, 지역쌀인 세마쌀로 빚는다. 아스파탐 같은 인공감미료는 일체 넣지 않았다. 감미료를 넣지 않은 술은 자연의 단맛을 내기 위해 감미료 막걸리보다는 쌀 함유량이 많다. 그래도 오산양조장 제품은 착하다. 6도 오산막걸리는 4000원(500ml), 12도 오매백주(500ml)는 7500원이다. 삼양주 하얀까마귀는 850ml에 1만원이다. 물론, 2000원 미만인 서울장수막걸리에 비해서는 비싼 가격이지만, 무감미료 막걸리 중에서는 단연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하지만, 지역의 일부 어르신들로부터 “술값도 비싸고 장수막걸리에 비해 싱겁다(덜 달다)”는 불평은 여전히 듣고 있다. 덜 단 이유는 감미료를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산양조장 직원이 하얀까마귀 막걸리 병입작업을 하고 있다. 감미료를 전혀 넣지 않고, 두번 덧담금하는 삼양주 제품으로, 850ml에 1만원이다. /박순욱 기자

그럼, 술맛은 어떨까? 가격이 저렴한 만큼 품질도 저렴할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지역사회를 대표할 만큼 술 품질이 뛰어나다. 가장 낮은 도수 제품인 6도 오산막걸리는 진한 쌀의 풍미와 구수한 누룩향, 곡물향이 풍부하다. 탄산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12도 오매백주는 물을 덜 탄 만큼 걸쭉하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무게감, 바디감이 묵직하다. 높은 도수 만큼이나 단맛도 더 강하게 느껴진다. 오산막걸리와 오매백주 두 제품은 이양주다. 물을 덜 타고 더 탄 차이가 있을뿐 같은 술로 만든다.

8도 하얀까마귀는 밑술, 그리고 두번의 덧술로 완성된 삼양주다. 앞서 나온 2종의 막걸리보다 담금을 한번 더 한 만큼, 도수는 오매백주(12도)보다 낮지만, 단맛 정도는 오매백주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탄산은 오산막걸리, 오매백주와 비슷하게 거의 없고 산미도 강하지 않다. 용량은 850ml로 술 양이 훨씬 많다.

마을기업 오산양조장 밑그림을 그리고, 현재 술 생산 책임을 지고 있는 오산양조장 오서윤 이사를 최근 인터뷰했다. 오 이사는 전통주 교육기관에서 술 양조를 배우다가, ‘내가 살고 있는 오산시를 알리는 방안의 하나로 양조장을 운영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10쪽 분량의 기획서를 만들어 무작정 오산시를 찾아갔다. 다행히 오산시가, 오 이사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던 오산식품 김유훈 대표를 연결해줘, 마을기업 오산양조장이 세상에 나오게 됐다. 그래서 양조장 부지를 제공한 김유훈 대표가 양조장 대표를 맡고 술 생산 책임자 오서윤씨는 이사 직함으로 일하게 됐다. 그밖에 8명의 출자자도 마을기업 설립비용을 보탰다.

오산양조장의 체험교실 내부 전경.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술 빚기 등의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곳이다. /박순욱 기자

-양조장을 마을기업으로 운영하기로 한 이유는?

“오산양조장은 오산시 중앙동 오색시장 끝자락에 있다. 오일장인 전통시장과 접해 있어, 지역주민들이 서로 소통하는 사랑방 역할을 양조장이 했으면 했다. 그러려면 한 개인이 운영하는 상업양조장으로는 어렵고, 뜻을 같이 하는 지역주민들이 공동운영하는 형태의 양조장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만드는 전통주가 지역주민들이 소통하는 매개체로 활용하기를 바란 것이다.”

-마을기업 양조장은 드물다.

“김유훈 대표는 대를 이어 식자재 유통기업을 양조장 자리에서 해왔다. 마침 오산시가 도시환경개선 사업을 진행해, 김 대표는 오산유통 자리에 새 사업 구상을 하던 차에 나와 만났다. 둘이는 금방 뜻을 같이 했다. ‘돈 열심히 벌자’가 아니라, ‘오산 위해 일해보자’가 첫번째 목적이었다. 하지만, 둘만으로는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뜻을 같이하는 지역주민 몇분을 주주로 모셔와 마을기업을 탄생시켰다. ‘돈 벌어서 배당금 줄게’ 이런 얘기는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다. 전부 현직으로 일하고 있는 분들이라서 ‘은퇴 후에는, 양조장에 일하게 해주겠다’고 꼬셨다. 2000만원씩 출자했다.”

-마을기업 형태로 양조장 운영하는데 어려움은? 혹은 이점은?

“제한된 자금으로 양조장을 운영하다보니, 돈 집행에 우선순위가 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면에서 별 고민이 없다. 마을기업이기 때문에 기준이 항상 확실하다. 가령, 우리는 돈을 지출할 때 ‘지역상생’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 가급적 돈 집행이 지역사회를 넘어서지 않도록 한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지역쌀로만 술을 빚고, 외부에 광고, 마케팅비용 지출에는 소극적이다. 어느 단체에서 ‘상을 줄테니 돈을 좀 내라’고 하거나, ‘유명 프로그램에 PPL(특정 기업의 협찬을 대가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해당 기업의 상품이나 브랜드 이미지를 소도구로 끼워넣는 광고기법) 넣어줄게’ 하는 제안은 고민없이 사양한다. 매출확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술을 출시하기 전에 요리술을 먼저 제품화했다.

“오산막걸리와 오매백주는 2018년 10월에 나왔고, 그전에 요리술은 그해 4월에 미리 나왔다. 전문가 조언을 받은 결과다. 양조장 설립 후 거의 2년이 지나서야 막걸리 제품이 첫 출시됐는데, 그 전에 양조장 운영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대중적인 제품인 요리술을 먼저 내놓게 됐다. 요리술은 기존 대기업에서 만드는 제품보다 당도는 훨씬 낮게 했다. 인공 감미료를 전혀 넣지 않은 최고급 요리술이라고 자부한다. 양조장에서 만드는 제품이라, 알코올 도수를 14도로 했는데, 이 정도의 알코올은 잡내 제거에 아주 효과적이다. 시중에 요리술이 많은데, 알코올 도수가 있는 제품은 거의 없다. 양조장이 아니면 요리술에 알코올을 넣을 수 없는 까닭이다. 선물로도 잘 나가고, 실수요로도 재구매 비율이 높아 효자 역할을 한다.”

오산양조장의 프리미엄막걸리 하얀까마귀의 캐릭터 상품. 굿즈로 판매도 된다. /박순욱 기자

-하얀까마귀 술을 새로 내면서 같은 이름의 굿즈(캐릭터 상품)를 만든 이유가 있나?

“오산막걸리, 오매백주, 독산은 술 분위기가 다소 차분하다. 오산시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심플하게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후속 제품인 하얀까마귀를 출시할 즈음에는 이미 코로나가 창궐했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톡톡 튀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오산의 새’ 까마귀를 활용한 캐릭터(하얀까마귀)를 만들고 그 캐릭터를 새 술 이름, 라벨 디자인에도 활용했다. 현재 막걸리 중 하얀까마귀 비중이 가장 높다. 굿즈 판매도 꽤 된다.”

-김유훈 대표와의 역할 분담은?

“오산 토박이인 김 대표는 술 납품, 그리고 회계 일을 맡고 있다. 술 양조는 김 대표도 같이 하지만, 양조 전체 책임은 내가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