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38년간 푸르밀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자식들을 키웠는데 회사가 사업 접는다는 것도 기사 보고 알았습니다" (60대 푸르밀 대리점주 A씨)
범롯데가(家) 유제품 전문기업 푸르밀이 지난 17일 본사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사업 종료 및 정리 해고를 통지한 가운데, 대리점과 거래처 등 관계자들도 피해를 보게 됐다.
푸르밀은 검은콩이 들어있는 우유, 가나 초코우유, 바나나킥 우유, 비피더스 등 유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푸르밀 관계자에 따르면 푸르밀과 타 우유를 같이 취급하는 대리점은 500여 개에 달한다.
18일 제주에서 푸르밀 대리점을 운영하는 60대 A씨는 "대리점주들에게는 푸르밀이 사업을 접는다는 이야기를 전달하지도 않았다"며 "우리는 푸르밀 제품만 취급하는 데 나 뿐만 아니라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도 다 실직자가 되라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또 다른 40대 푸르밀 대리점주 B씨는 "10년 정도 푸르밀에서 직원으로 있다가 지난해부터 대리점을 열고 운영 중이었다"며 "마지막 도전이라는 생각으로 본사와 계약을 맺고 365일 새벽 6시부터 나와 일을 했는데,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셈"이라고 말했다.
전남에서 푸르밀 대리점을 20년 넘게 운영했다는 점주 C씨도 "푸르밀 측에서 따로 입장 전달은 받은 바 없고 다음달에 사업을 종료하는 것도 신문을 보고 알았다"며 "거래처에는 다음 달까지만 팔아달라고 사정하고 있는데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할지 막막하다"고 한숨지었다.
이처럼 관계사들도 난처한 상황에 처한 가운데 푸르밀 직원들은 오너가의 일방적인 해고 통보에도 불구하고 거래처 재고 파악 및 피해를 조사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푸르밀 관계자는 "해고 통보를 받은 직원들에게 뒷수습까지 하고 나가라고 한 셈"이라며 "오너일가가 법인 재산으로 소유한 건물과 땅만 처분해도 이 정도까지 상황이 악화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푸르밀 본사 직원은 "공장과 영업 인력까지 포함해 직원들이 350여 명 정도인데, 이렇게 무책임하게 직원들을 내보내도 되는 건지 의문"이라면서 "푸르밀 제품에 애착을 가진 직원들이 원유계약·납품 계약을 맺고 있는 관계사들의 피해를 줄이려고 노력하지만 정작 오너일가는 손을 놓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17일 직장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지금까지 푸르밀 제품을 사랑해주셨던 분들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올리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은 푸르밀 재직자는 현 상황의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앞서 글 작성자는 "첫 직장인 푸르밀에서 좋아하는 제품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의미"였다며 회사는 사라지지만 소비자에게 감사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다만 이 작성자도 회사의 일방적인 해고 통보는 아쉽다는 입장이다. 작성자는 조선비즈에게 "직원들 모두 각자도생해야 하는 상황이고 위로금과 같은 대책도 전혀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푸르밀은 롯데그룹 계열사로 있던 롯데우유를 모태로 한 기업으로, 2007년 독립해 2년 뒤 사명을 바꿔 운영 중이던 회사다.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의 넷째 동생인 신준호 회장이 오너가로 있는 회사다.
푸르밀은 2세 경영에 나서면서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신 회장의 차남인 신동환 대표가 2018년 공동 대표에 오르면서다. 2017년 15억 흑자를 내던 푸르밀의 영업이익은 2018년 15억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전환했다. 이후 89억원(2019년), 113억원(2020년), 124억원(2021년)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기조를 이어갔다.
푸르밀 측은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4년 이상 매출 감소와 적자가 누적되어 내부 자구 노력으로 회사 자산의 담보 제공 등 특단의 대책을 찾아보았지만 현재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부득이하게 사업을 종료하게 되었다"며 "근로기준법에 따라 당초 50일 전까지 해고 통보를 해야하나 불가피한 사정에 따라 정리 해고를 결정하게 됐다"고 전했다.
박성우 노무사는 "푸르밀 측의 정리해고 절차가 위법한 것은 맞지만, 처벌 대상은 아니기 때문에 직원의 입장에서는 노조와 같은 집단 행동을 통해 사측과 협의를 하거나 대안을 마련하라고 제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