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업 오너 10명 중 2명은 미국 뉴욕에서 유학 생활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경영 일선에 나서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2000년대 초반 출생자) 유통 리더 중 상당수가 ‘뉴욕파’ 출신이었다.
9일 조선비즈가 국내 주요 유통기업 오너 일가 102명의 출신 학교를 조사한 결과, 64명이 외국 대학에서 학부나 대학원 생활을 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34%에 이르는 22명이 미국 뉴욕주(州)에서 수학한 것으로 확인됐다.
◇ 유통업계 오너 102명 중 22명이 ‘뉴욕파’...10명이 컬럼비아 출신
유통기업 오너 일가의 출신 학교 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컬럼비아(Columbia)대다. 뉴욕시 유일의 아이비리그(미 북동부에 있는 8개의 명문 사립대학) 대학인 컬럼비아대는 뉴욕의 중심지인 맨해튼에 위치한다.
이 때문에 컬럼비아대는 캠퍼스 생활과 함께 뉴욕에서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최고의 장점으로 꼽힌다. 컬럼비아대 학생증을 소지하고 있으면 뉴욕 시내 박물관과 미술관 무료 입장이 가능할 정도다.
유통기업인 중에서는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롯데 회장이 일본 소재 대학에서 학사 과정을 밟은 후, 미국으로 넘어가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5년 롯데그룹의 ‘뉴욕 팰리스 호텔’ 인수는 뉴욕 유학 시절 이 호텔을 눈여겨 봤던 신동빈 회장의 특별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신동빈 회장의 장남인 유열씨(1986년생·일본명 시게미쓰 사토시)도 일본 게이오대를 나온 뒤,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했다. 이를 두고 컬럼비아대에서 운영하는 ‘동문 자녀 입학 특례 제도’를 활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와 관련 조선비즈는 컬럼비아대에 입학 절차 및 기부금 입학 제도 운영 등에 대해 문의했으나 학교 측이 답변을 거부했다.
범롯데가로 분류되는 농심의 3세인 신상열(1993년생) 상무도 컬럼비아대 출신이다. 신 상무는 학창 시절 한인학생회(KISAC) 일원으로 활동하는 등 대외활동을 적극적으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녀인 이경후 CJ ENM 브랜드전략실장(부사장급·1985년생)과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전략기획1담당(상무급·1990년생)도 컬럼비아대 출신이다.
이경후 실장은 컬럼비아대 불문학과를, 이선호 담당은 동대학 금융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이경후 실장의 남편인 정종환 CJ미주본사 대표(부사장급·1980년생)도 컬럼비아대 출신이다. 정 부사장은 컬럼비아대 기술경영학 학사와 경영과학 석사를 수료했다.
삼양식품 전인장 전 회장의 장남인 전병우(1994년생) 이사도 컬럼비아대를 나왔다. 전공은 철학이다. 전 이사는 전 회장이 횡령 혐의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2019년 해외사업본부 부장으로 입사했다. 그는 입사 1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정교선 현대백화점 부회장의 아내인 허승원씨(1975년생)는 컬럼비아대 치과대학을 나왔다. 허씨는 자동차부품 전문기업인 대원강업 허재철 회장의 장녀다. 정교선 부회장은 뉴욕주 가든시티에 위치한 아델파이(Adelphi)대를 나왔다.
신세계 정재은 명예회장도 컬럼비아대에서 전기공학 학사와 산업공학 석사를 수료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뉴욕 인근 프로비던스에 소재한 브라운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정용진 부회장의 장남인 해찬씨(1998년생)는 뉴욕주 이타카시에 소재한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했다. 이웅열 코오롱 회장의 장남인 이규호 부사장(1984년생)도 코넬대 호텔경영학과 출신이다.
◇ 코넬·뉴욕대 출신도 다수...글로벌 금융사 인턴십 등 경험 장점
1865년 설립된 코넬(Cornell)대는 아이비리그 대학 중 출발이 가장 늦지만 전문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호텔경영학과와 바이오 관련 학과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호텔업계에서 코넬대 호텔경영학과 동문들을 ‘코넬 마피아’라고 부를 정도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과 두 딸인 민정(1991년생)·호정(1996년생)씨도 코넬대 출신이다. 서 회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코넬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민정씨는 코넬대 경제학 학사와 경영학 석사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식품기업 오너 일가 중에선 뉴욕(Newyork)대 출신이 많다. 오리온 담철곤 회장의 장녀인 담경선 오리온재단 이사(1985년생)와 담서원 오리온 수석부장(1989년생)이 뉴욕대를 졸업했다.
오뚜기 함영준 회장의 장녀인 함연지(1992년생)씨도 뉴욕대에서 연기학을 전공했다.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장녀인 임세령(1977년생) 부회장은 뉴욕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크라운해태 윤영달 회장의 장남인 윤석빈 크라운해태홀딩스 대표이사는 뉴욕 소재 명문 사립 미술대학인 프랫(Pratt)대를 졸업했다.
뉴욕 소재 대학은 미국 내에서도 학비와 생활비 등 경비가 많이 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컬럼비아대의 2022년 기준 학부과정 등록금은 6만3530 달러다.
원·달러 환율이 1270원을 넘어선 6일 현재 기준 우리 돈 8080만원 이상을 등록금에만 써야 하는 셈이다. 학부 4년이면 3억2000만원이 든다.
일반 유학생들은 경비 부담 때문에 뉴욕 소재 대학을 기피하기도 하지만, 경제적 지원만 보장된다면 뉴욕에서 다양한 활동을 병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컬럼비아대는 뉴욕 소재 글로벌 금융 기업과 인턴십 협약을 맺고 학생들에게 다양한 사회 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 유학원 관계자는 “뉴욕 소재 대학은 학비와 기초 생활비가 타 지역보다 많이 소요되지만 기업 오너 일가에겐 큰 문제가 안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트렌드 변화가 가장 빠른 뉴욕 생활과 글로벌 금융·컨설팅 회사에서의 인턴십 경험은 기업인에게 좋은 경험”이라며 “이 과정에서 쌓이는 인적 네트워크도 향후 자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놀거리가 많은 뉴욕의 특색으로 인해 자칫하면 필요한 경험을 쌓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학원 관계자는 “학생들의 유학지 선택 시 부모의 의사가 많이 반영되는데, 자녀에게 오히려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뉴욕 유학을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파티 등을 통해 마약·마리화나 등 향정신성 물질에 빠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많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