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기엔 물장사만한 게 없다'는 말이 있다. 생수·음료·커피 등 물이 들어가는 사업을 통칭해 물(水)장사라고 하지만, 본래는 술 사업을 낮춰 부르는 말이었다.

규제 산업이라 외부 변수가 있긴 하지만 사업 자체만 보면 현금 회수가 빨라 안정적이고, 수익성도 좋다는 세간의 인식이 반영된 말이다.

이러한 선입견을 깨고 혁신에 나선 회사가 있다. 소주 시장의 압도적 지배자이자 맥주 시장 양강 중 하나로, 국내 주류 산업의 공룡으로 평가받는 하이트진로(000080) 이야기다. 이 회사가 최근 스타트업 발굴에 열을 올리고 있어 그 배경이 궁금해 졌다.

허재균 서영이앤티 대표이사 겸 하이트진로 신사업개발 담당 상무. /윤희훈 기자

하이트진로는 2018년 스타트업 컴퍼니빌더 더벤처스와 투자 계약을 체결하며 스타트업 발굴 및 육성 사업을 시작했다. 2019년 10월에는 중소벤처기업부 산하기관인 한국벤처투자가 운영하는 엔젤투자 매칭펀드를 신청할 수 있는 엔젤투자자로 선정됐다. 한국엔젤투자협회가 하이트진로를 추천했다.

2020년 5월 가정간편식 판매 플랫폼인 '아빠컴퍼니'를 시작으로 2년 동안 11개 스타트업의 엔젤투자자로 나섰다. 플랫폼 스타트업부터, 리빙테크, 게임회사, 스마트팜, 기업용 소프트웨어 개발, 피트니스회원권 플랫폼, 지적재산(IP) 커머스 등 투자 업종도 다양하다.

하이트진로는 현재 서초동 본사 건물에 스타트업 전용 공유 오피스 '뉴블록'(New Block)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팅(성장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투자 성과도 나오기 시작했다. 2020년 8월 투자한 신선식품 유통 플랫폼 '식탁이 있는 삶'은 투자 이후 현재 회사의 기업가치가 1.5배 이상 성장했다.

지분만 투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장성이 주목되는 회사는 인수·합병(M&A)까지 추진중이다. 그룹 지주사인 하이트진로홀딩스(000140)의 2대 주주인 서영이앤티는 지난달 푸드테크 스타트업인 '놀이터컴퍼니'를 인수했다.

조선비즈는 지난 4일 서울 서초동 본사에서 하이트진로의 신사업 개발을 총괄하는 허재균 상무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스타트업 투자는 신사업 개발 부서의 핵심 사업이다. 그는 서영이앤티 대표이사도 겸직중이다. 다음은 허 상무와의 일문일답.

허재균 서영이앤티 대표이사 겸 하이트진로 신사업개발 담당 상무가 4일 서울 서초동 하이트진로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주류회사의 스타트업 투자는 생소하다.

"국내 주류 산업의 현황을 돌아보면 사실 인기 주종의 변화는 있지만, 산업의 규모 자체는 변화가 없다. 시장 참여자가 많진 않지만, 시장 점유율을 빼앗기 위한 경쟁이 그 어떤 산업보다 치열하다. 이러한 치열함 때문에 그동안은 외부로 눈을 돌리는 게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급격하게 이뤄지는 4차 산업의 발전을 보면서, 회사가 정체되선 안된다는 위기 의식이 커졌다.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 판단했고, 성장성이 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결심하게 됐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다양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가장 인상적인 회사는.

"2020년 8월 투자를 결정한 '식탁이 있는 삶'이라는 식선식품 유통 플랫폼을 꼽을 수 있다. 이 회사는 퍼밀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퍼밀은 산지 직거래로 상품성있는 식품을 발굴하고, 스토리를 더해 소비자에게 알리는 플랫폼 업체다. 재작년 투자 이후 현재 이 회사의 기업가치는 1.5배 이상 성장했다.

스마트팜 스타트업 '퍼밋'도 애착이 가는 회사다. 스마트팜 산업이 가파르게 성장하고있는 것에 주목하고 투자를 결정했다. 최근엔 후속 투자까지 성공적으로 유치하는 등, 사업을 계속 키우고 있다."

투자 대상 선정 기준이 궁금하다.

"투자 대상을 고를 때, 100에 70은 우리 회사와 시너지가 있을만한, 나머지 30은 전혀 관계가 없더라도 성장성을 중심으로 투자를 결정한다. 하지만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순 없다. 우리의 핵심 사업인 술은 결국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만드는 도구다. 우리가 투자한 스타트업이 안착한다면 향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할 것이라 생각한다."

스마트팜 스타트업 퍼밋의 스마트팜 시설. /하이트진로 제공

최근 서영이앤티가 놀이터컴퍼니를 인수했다.

"놀이터컴퍼니는 자체브랜드(PB) 식품 제조 업체로 업계에서 뜨는 회사 중 하나다. 쿠팡에서 판매하는 '코인 육수'가 대표적인 상품이다. 트렌드를 분석해 상당히 빠르게 상품을 출시하는 '원스톱 퍼블리싱 서비스' 업체로, 종합식품회사를 지향하는 서영이앤티와 시너지가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투자할 스타트업을 찾다 이 회사를 발견했고, 아예 인수하는 방향으로 투자 계획을 확대한 사례다. 현재 쿠팡 등 50곳의 유통사와 협력하고 있다. "

투자여부 확정시 최종적으로 무엇을 고려하나.

"시장성을 우선적으로 본다. 스타트업이 도전하는 시장이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 혹은 성숙한 시장이라면 차별화 요소로 사업성을 보여줄 수 있을지 따진다. 다만 이런 부분은 서류 검토 과정에서 평가하게 되고, 최종적으로는 창업자의 애티튜드(태도)를 보게 된다. 창업자가 자기 사업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또 확신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사업을 잘 모르고, 확신이 없는 창업자는 프레젠테이션(PT)도 잘 못한다. PT를 못하면 다른 투자자를 모집하는 것도 힘들다."

투자가 실패할 수도 있는데.

"전문 투자사가 아니라 보수적인 것은 사실이다. 다만, 스타트업 투자의 필요성과 이에 따른 위험감수(리스크 테이킹)에 대해선 꽤 오랜기간 실무진과 경영진이 모두 학습을 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공식 지침과 투자 과정을 시스템화 했다. 이러한 시스템 아래에서 이뤄진 스타트업 투자에 대해선 성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내부에서 폄훼하거나 위축시키지 말자는 공감대가 조성돼 있다."

올해 눈여겨 보는 업종은.

"최근 메타버스가 화두다. 메타버스 세상에서 형성되는 인간 관계가 향후 주류 소비 패턴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관심 있게 보고 있다. 또 소비 패턴 변화가 크더라도 인간이 섭취하는 식품의 본질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괜찮은 푸드테크 업체나 플랫폼 업체를 발굴하는 데 주력하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