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소주’ 참이슬을 보유한 하이트진로(000080)가 오는 23일 출고가 82.2원 인상을 발표한 18일 오전 11시, 서울 관악구에 있는 한 먹자골목 상인들은 술렁였다. 삼겹살집을 운영하는 박모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매출이 떨어졌다”면서 “소주 출고가가 오르면 따라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씨의 가게에서 약 50m 떨어진 곳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연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소주 출고가 인상에 대한 댓글 반응을 보고 있었다”면서 “이제 음식점에서 소주 1병에 6000원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은데 6000원까진 아니라도 5500원으로 올리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했다.

◇ 식당 소주 값 5000~6000원대…소맥 1만원 이상

‘소맥(소주+맥주) 1만1000원’ 시대가 현실로 다가왔다. 3년 전인 2019년 4월 국내 맥주 업계 1위 오비맥주의 맥주(카스) 출고가 인상으로 ‘식당 맥주=5000원’ 공식이 굳어진 가운데 소주 업계 1위 하이트진로가 소주 출고가 인상에 나섰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병당 4000~5000원 하는 소주 가격은 5000~6000원이 될 전망이다.

서울 시내 한 음식점 입간판에 소주와 맥주가 각 5000원으로 책정돼 있다. /배동주 기자

이날 하이트진로는 오는 23일부터 소주 제품의 출고 가격을 7.9% 인상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참이슬 후레쉬’, ‘참이슬 오리지널’ 360㎖ 병 출고 가격을 기존 1081.2원에서 1163.4원으로 82.2원 올리기로 했다. 참이슬 후레쉬’, ‘참이슬 오리지널’ 페트병류 제품에도 7.9% 인상이 동일 적용되고, ‘진로’도 오른다.

하이트진로는 “원가 상승 등 가격 인상 요인이 발생해 소비자 부담을 최소화하는 선의 인상률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소비자 부담은 최소 500원에서 1000원으로 뛸 전망이다. 주류는 제조업체의 출고가 인상이 도매업체의 납품 단가 인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주류법상 주류 생산업체는 유통 면허를 갖지 못한다.

업계에서는 소주 출고가가 80원 넘게 오르면 실제 식당에 납품되는 단가는 200~300원가량 뛰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식당은 여기에 다시 매장 임차료, 인건비 상승 등 인상 요인을 덧붙인다. 조선비즈가 이날 먹자골목 식당 10곳을 조사한 결과 모든 음식점에서 ‘결국에는 소주 가격을 인상하게 될 것 같다’고 응답했다.

서울 서초구에서 실내포차를 운영하는 장모씨는 “출고가가 오르면 곧장 소주 구매 비용이 올라간다. 특히 제조사의 7.9% 출고가 인상은 우리에게 10% 넘는 인상으로 돌아온다”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로 장사할 수 있는 시간은 줄었고 인건비마저 계속 오르는 데 소주 가격을 올리지 않고 버틸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 소맥 1만2000원 될 수도…오비맥주도 인상 초읽기

소주 가격 인상은 참이슬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소주의 원료인 주정 값이 지난 4일 이미 7.8% 오르면서 전방위 인상이 예정됐기 때문이다. 대한주정판매는 과세 주정은 200리터들이 한 드럼의 가격이 종전 36만3743원에서 39만1527원으로 7.6%, 미납세 및 면세 주정은 한 드럼이 35만1203원에서 37만8987원으로 7.8% 올렸다.

대한주정판매는 진로발효 등 10개 국내 주정 제조회사가 지분을 참여해 만든 주정 판매 전담 회사다. 업체들이 제조한 주정을 일괄적으로 사들인 뒤, 각 소주 제조업체에 판매한다. 소주회사들은 대한주정판매에서 산 주정에 물과 감미료를 추가해 희석식 소주를 만든다. 여기에 소주병 취급 수수료 소주 병뚜껑 가격까지 올랐다.

‘처음처럼’으로 유명한 소주 업계 2위 롯데칠성(005300)음료는 하이트진로에 이은 가격 인상 수순에 들었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소주 가격 인상 요인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현재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이밖에 무학, 보해양조, 대선주조 등 소주 업체들 역시 가격 상향 조정을 예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주, 맥주 등 다양한 술을 마시는 사람들. /조선DB

식당에서 먹는 소맥 가격이 1만원을 훌쩍 넘어 1만2000원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소주 가격 5000~6000원이 예정된 속에서 오는 4월부터는 맥주에 붙는 세금이 ℓ(리터)당 855.2원으로 작년보다 20.8원 오르기 때문이다. 맥주 제조업체가 세금을 출고가에 반영하는 것만으로 식당에서 파는 맥주 가격은 현재 5000원선에서 6000원선이 될 수 있다.

실제 오비맥주가 카스 가격을 56원 올려 출고가를 1157원에서 1203원으로 조정했던 2019년 4월 식당 맥주 가격이 일제히 오른 바 있다. 출고가 56원에 도매 마진 44원이 붙으며 병당 100원이 오르면서다. 약 3년이 지난 현재 오비맥주는 “세금에 보리값, 알루미늄 등 원재료비가 올라 가격 인상 압박이 커진 상태”라고 밝혔다.

◇ 정부 물가 관리에 기습 발표…대선 전 도미노 인상 전망

하이트진로의 이번 가격 인상은 기습적이다. 기존에는 최소 한달 전 가격 인상을 예고한 이후 가격을 올려 왔지만, 이번엔 1주일도 앞두지 않은 채 발표했다. 정부가 최근 물가 인상으로 인한 소비자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만큼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하자 빠르게 가격을 인상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소비자 부담은 계속 커질 전망”이라면서 “소주 회사는 대부분의 원자재 가격이 올라 출고가 인상을 미룰 수 없고, 식당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은 이번 소주 출고 가격 인상에 인건비 상승 등 비용을 함께 반영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달 대선 이전 줄줄이 가격이 오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