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낙농 생산자에 유리한 우유값 결정 구조를 바꾸기로 하면서 낙농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국내 우유 소비는 저출산과 코로나발(發) 급식 우유 감소로 줄어드는데 우유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2026년 관세 폐지로 저렴한 수입 우유와의 경쟁이 예상되는 가운데, 낙농업계가 시장 원칙과 어긋나는 가격 구조를 유지한다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17일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국내 흰우유 1인당 소비량은 2018년 27킬로그램(kg)에서 지난해 26.3킬로그램으로 줄었다. 1991년 24.6킬로그램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반면 원유(原乳·우유 원재료) 값은 올해 8월 리터(L)당 926원에서 947원으로 21원 올랐다. 기업은 원유 기본 가격에 품질 등을 고려해 가격(인센티브)을 정한 뒤 구입한다. 서울우유, 남양우유, 빙그레(005180) 등도 원유 가격 인상분을 반영해 연달아 제품 값을 올렸다.
우유 가격은 2013년 도입된 원유 가격 연동제에 따라 결정된다. 수요·공급 법칙이 적용되는 대신 생산비(통계청 우유 생산 가격)가 오르면 원유 가격이 오르는 구조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2011년 구제역 파동으로 농가들이 젖소를 (땅에) 묻고 시중에 유통되는 우유가 줄어들자 생산을 늘리기 위해 낙농 생산자에게 유리한 가격 구조가 결정됐다”고 했다.
가격 결정권은 낙농진흥회가 갖고 있다. 낙농진흥회 이사회는 생산자 단체 추천 7명, 유가공협회 추천 4명, 낙농진흥회장·정부·학계 전문가·소비자 단체 각 1명씩으로 구성된다. 15명 중 7명이 생산자 측이라 이들에게 유리하게 가격이 결정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재적이사 3분의 2 이상이 출석해야 개의할 수 있어 생산자 측 전원이 불참하면 개의하기 어렵다.
농림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14일 ‘제4차 낙농 산업 발전 위원회’를 열고 원유가격연동제 대신 용도별 차등 가격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흰우유에 쓰이는 음용유(186만8000톤)는 리터당 1100원에, 치즈를 만드는 가공유(30만7000톤)는 이보다 저렴한 900원에 기업이 구매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유기업들은 지난해 기준 원유와 품질 인센티브 등을 포함해 리터당 1083원에 음용유와 가공유를 구입했다. 농림부 관계자는 “원유 용도를 구분해 가격을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라며 “주요 국가 대부분이 용도별 차등 가격제를 도입했다”고 했다.
정부는 내려간 가공유 값을 보전하기 위해 우유 쿼터(생산량 할당)를 기존 204만9000톤에서 217만5000톤(음용유+가공유)으로 늘리기로 했다. 정부는 농가 수익이 7799억원에서 7881억원으로 1% 증가할 것으로 추산한다. 우유 쿼터는 정상 가격으로 받을 수 있는 우유 수량으로 쿼터가 1톤이면 1톤까지 1100원을 받고 초과분은 리터당 100원(10%)을 받는 식이다. 쿼터가 늘어난 만큼 농가가 제 값을 받을 수 있는 우유가 늘어난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정부는 우유 기업에도 가공유 보조금을 리터당 100~200원 지급할 계획이다. 가공유 값을 900원으로 내려도 리터당 400원 수준인 해외와 비교하면 비싸기 때문이다.
낙농진흥회 이사회 구조도 개편하기로 했다. 현재 각 1명씩인 소비자와 전문가 측 이사를 늘리고 이사회 개의 조건을 완화해 낙농 업계가 불참해도 이사회가 열릴 수 있게 한다는 취지다.
낙농업계는 강하게 반발한다. 이승호 낙농육우협회 회장은 “생산자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으면 정부, 국회, 청와대에 투쟁할 것”이라고 했다. 낙농진흥회는 2015년 9월 원유 과잉 생산으로 생산량을 감축하기 위한 협의가 추진되자 이에 반대해 협의를 무산시킨 바 있다. 올해 8월과 12월 초에도 용도별 차등 가격제 도입에 반대해 이사회에 불참했다.
유업계 1위인 서울우유가 생산자 입장에 있어 우유가격 개편에 미온적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서울우유는 1937년 낙농인 21명이 모여 협동조합으로 시작한 회사다. 이 회사에서 나온 이익을 생산자들이 배당으로 가져가는 구조다. 서울우유 관계자는 “(제도 개편을) 지켜보고 있다”면서 “낙농가에서 (가공유) 가격 하락에 대해 우려하는 것 같다”고 했다. 우유 업계 관계자는 “서울 우유는 생산자 입장일 수밖에 없다”면서 “국내 우유 1위 기업이 (기업) 의견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해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임근생 매일유업 생산본부장(상무)은 “낙농진흥회 이사회는 생산자 측 7명, 유업계 측 4명인데 개편되는 경우 생산자와 수요자 동수 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재연 남양유업 세종공장장(상무)은 “용도별 차등 가격제와 낙농진흥회 개편과 관련해 큰 틀에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우유 업계는 2026년부터 유럽·미국 등 우유에 무관세가 적용돼 저렴한 수입 우유가 몰려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 캐나다의 원유 가격은 리터당 각각 470원, 490원, 659원 수준이다. 젖소를 목초지에서 방목하는 유럽 등의 사육 방식이 국내 사육 방식보다 생산비가 덜 들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우유 자급률이 48%까지 떨어졌는데 5년 뒤 관세가 없어지면 수입 우유가 대거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며 “무조건 생산자 의견만 주장하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했다.
지인배 동국대 식품산업관리학과 교수는 “낙농가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반대만 하고 있어 아쉽다”며 “특정 단체 의견보다 전반적인 의견을 반영할 수 있게 한 낙농진흥회 의사 결정 체계 개편에 동의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