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부터 배달 라이더의 고용보험 가입을 의무화 하자 업계 안팎에선 “배달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소득 노출을 꺼리는 배달 라이더들이 정부의 감시망이 닿지 않는 지역 중소 사업체로 이탈하거나 아예 다른 직종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아 배달 기사가 부족해지고 이들의 몸값이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이런 우려가 과도하게 부풀려진 것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고용보험은 실직한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재취업을 대비하기 위한 사회보험으로, 회사는 매달 보수의 일정액을 고용보험료로 납부한다.

2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는 ‘전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의 일환으로 지난 7월 보험설계사, 택배기사 등 12개 직종의 특수고용형태근로(특고) 종사자의 고용보험 가입을 의무화 한 데 이어 내년 1월에는 그 대상을 퀵서비스 기사(배달 라이더 포함), 대리운전 기사로 확대한다. 이때 근무시간과 소득 등을 고려한 피보험자격 신고, 보험료 원천공제 의무를 노무 중개 플랫폼(바로고, 생각대로, 메쉬코리아 등)이 지도록 했다.

19일 점심시간 서울 종로구 관철동 젊음의거리 식당가에서 라이더들이 배달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올해 플랫폼을 통해 배달·배송·운전에 몸담은 종사자 수는 66만명으로 추정된다. 전체 취업자의 2.6%에 달하지만 고용보험 의무 가입대상이 아니었다. 고용보험 자격이 있는지 파악하려면 소득 신고가 필수적인데, 배달 라이더를 직접 고용하는 지역 배달대행 지사들이 대부분 영세해 사실상 정부의 감시망 밖에 있었다. 라이더가 타인 명의로 계약하거나 소득을 적게 신고해도 잡아낼 방법이 없었다.

내년부터는 지역 배달대행 지사들에 배달을 위한 모바일용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플랫폼 회사들이 라이더의 근무시간, 소득 등 보험료 정산에 필요한 정보를 정부에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한다. 배달 라이더를 직접 고용하지는 않았지만 이 프로그램에 근무 정보가 집적되는 만큼 신뢰도가 높다고 정부가 판단한 것이다. 다만 프로그램에 입력된 내용과 실제 근무 내용이 일치하는지는 지역 배달대행 지사들이 맡아야 한다.

플랫폼 회사들은 고용보험 의무가입이 배달 라이더 이탈을 부추길 것이라고 우려한다. 배달 라이더 중 일부는 공무원 등 겸업이 금지된 직종에 종사하거나 기초생활수급자, 신용불량자 등 소득 노출을 꺼리는 사람들이어서 고용보험에 가입하기 위해 정부에 소득 자료를 넘기느니 차라리 다른 회사로 이직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업계는 배달 라이더 구인난이 내년에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본다.

배달대행업체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팽배한 것은 정부가 전국에 배달대행업체가 정확히 몇개가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규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배달대행업은 관청에 신고나 등록을 해야 하는 업종이 아니다. 현재 정부는 60~70개 정도를 파악한 상태이지만 업계에선 100개가 넘는다고 보고 있다. 그중에서도 매출 기준으로 상위 5개사인 바로고, 생각대로, 만나플러스, 메쉬코리아, 스파이더가 정부의 감시 집중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11월 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인도에서 배달 오토바이들이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달대행업체의 한 관계자는 “단건배달이 유행하면서 이제는 라이더와 지사가 갑(甲)이고 플랫폼은 을(乙)이 됐다”며 “고용노동부가 플랫폼 프로그램과 연동하는 내부 시스템을 개발하기 전까지는 지사가 라이더의 근무 상황을 액셀로 정리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라이더를 많이 보유한 곳에선 업무 부담이 너무 크다고 불만을 쏟아낸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보수 합산액이 일정금액 이상인 사람에 한정해서 고용보험 의무 가입을 추진하는 만큼 라이더가 대규모로 이탈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전업이 아닌 경우 이 기준에 미달해 의무가입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또 플랫폼은 사실상 배달대행지사가 건넨 자료를 정부에 전달하는 역할만 할 뿐 관리감독 책임까지는 없기 때문에 타인 명의 계약이 철저히 규제 되는 것은 아니다.

배민, 요기요 등이 배달 라이더 공급 부족에 대비해 단건배달이 필요없는 서비스에 대해선 묶음배달을 권장하는 식으로 사업모델을 유연하게 재조정할 수도 있다. 라이더 부족으로 인한 배달료 인상은 소비자의 반감을 사 이들 업체들에게도 큰 타격이 되기 때문이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배달 라이더 고용보험 의무 가입을 둘러싼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개별 플랫폼을 일일이 접촉하고 있다. 고용부 전국민고용보험추진단의 한 관계자는 “지역에서 소소하게 전화로 일을 중개하는 소규모 업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배달대행업체를 정부에서 파악하고 있다”며 “앞서 고용보험 가입이 의무화된 보험설계사 등은 보험업법과 같은 기존 법에 종사자의 정의 등이 명시돼 있지만 플랫폼 종사자는 그런 게 없다보니 우려가 큰 것 같다.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고용보험 가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