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GS리테일(007070)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가 출시한 ‘우삼겹 부대찌개’와 ‘트러플크림&깐쇼새우 파스타’가 12일 만에 10만개가 팔리며 간편식 매출 1, 2위를 차지했다. GS25에서 특정 간편식이 단기간에 이렇게 많이 팔린 건 처음이다.
이 제품은 GS리테일이 식품 전문 스타트업 테이스티나인과 함께 기획해 출시했다. 테이스티나인은 설립된 지 7년차로 대중적인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백화점, 홈쇼핑, 이커머스 상품기획자(MD) 사이에선 이미 유명하다. 쿠팡에만 납품하는 반찬 브랜드 ‘오늘 저녁반찬’, 마켓컬리 전용 한식 상품인 ‘신사동 백반’도 테이스티나인이 만들었다.
이 회사는 국내를 넘어 인도네시아 진출을 준비중이다. 해외 파트너사와 손잡고 한식 간편식을 현지에서 생산해 판매할 계획이다. 국내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현지 사정에 맞춰 제품 내용물을 조정하고 수량을 기민하게 바꿀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박막례 할머니 비빔국수 밀키트로 최근 입소문을 탄 또다른 간편식 전문 스타트업 프레시지는 지난 2월 미국, 호주 한인마트로 해외 수출을 시작했다. 미국에 80여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보유한 슈퍼마켓 H마트에선 다양한 한식 밀키트에 대한 반응이 뜨거워 상품 재입고 요청이 줄잇고 있다. 이 회사는 4월에 홍콩으로 수출처를 확대한데 이어 이달엔 베트남, 싱가포르로도 넓혔다. 올해 일본, 대만에도 수출할 계획이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프레시지와 테이스티나인은 또다른 스타트업 마이셰프와 함께 국내 간편식 시장 70%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3사의 합산 매출은 작년 기준 1780억원이다. 프레시지가 1271억원으로 가장 많고 마이셰프가 276억원, 테이스티나인이 233억원 순이다. CJ제일제당(097950)·hy·GS리테일·대상(001680) 등 자체 브랜드를 보유한 대기업의 간편식 매출을 모두 합해도 3사에 못 미친다.
스타트업이 수십년 간 식품을 전문으로 연구해온 대기업, 중견기업을 앞서는 건 간편식 하나에 집중해왔기 때문이다. 마이셰프는 2011년, 테이스티나인은 2014년, 프레시지는 2016년에 설립한 뒤 한식, 양식, 퓨전 등 수백 종류의 간편식을 출시하며 제품을 고도화했다. 그동안 고기, 야채 등 내용물을 고객이 손질해야 했다면 최근 나오는 간편식은 냄비에 넣고 끓이면 되는 수준이다.
대기업에 비해 생산 인프라가 소규모여서 다양한 소량 제품을 빠르게 생산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가령 대기업이 요즘 인기있는 로제 소스와 분모자 당면을 넣은 떡볶이 밀키트를 출시하려 한다면 기획부터 출시까지 최소 3~4개월이 걸리지만, 스타트업 3사는 빠르면 3주, 길어도 두달이면 된다. 지금 소비자들이 어떤 맛, 식재료를 선호하는지 빠르게 분석해 제품을 기획하고 일단 소량 생산해 온라인에서 판매해 고객 반응을 살핀 뒤 생산량을 조정한다.
국내 식품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은 생산공장 규모가 크기 때문에 인력이나 생산 가능 용량(Capacity)을 감안할 때 소량으로 생산하면 남는게 없다”며 “그때 그때 인기있는 식재료나 메뉴를 빨리 파악한 뒤 생산해야 시시각각 변하는 소비자 요구에 맞출 수 있는데 그런 기민함은 스타트업을 따라가기 힘들다”고 전했다.
때문에 간편식 시장에서 대기업과 스타트업은 경쟁사이면서도 협력관계를 맺는다. 대기업이 자체적으로 간편식을 만들면서 동시에 전문 스타트업에 기획·생산을 맡기는 식이다. GS리테일은 자체 간편식 브랜드 심플리쿡을 보유하고 있지만 테이스티나인과 협력해 편의점 도시락을 만들었다. hy는 밀키트 브랜드 잇츠온의 ODM(납품업체가 제품 개발·생산)을 지난 2017년 프레시지에 맡겼다가 현재는 자체 생산하고 있다.
간편식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중이지만 경쟁도 그만큼 치열해지고 있다. 국내 식품사, 프랜차이즈 기업이 너도나도 뛰어들고 오픈마켓과 소셜미디어(SNS) 등으로 제품을 파는 1인 기업, 중소기업이 급증하고 있어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식품산업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9년 국내 가정 간편식 시장규모는 전년대비 11.8% 증가한 4조2000억원이고, 오는 2025년까지 연평균 9.2%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스타트업 3사는 각기 다른 성장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프레시지는 3사 가운데 생산 인프라에 가장 큰 돈을 투입한 만큼 밀키트 퍼블리셔(publisher·공급사)로 자리잡겠다는 포부다. 이 회사는 작년 4월부터 경기도 용인에 2만6000m²(약 8000평) 규모의 간편식 전문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식품 대기업이나 온·오프라인 유통 채널 뿐 아니라 밀키트 생산, 유통에 어려움을 겪는 1~2인 기업이나 중소기업을 고객사로 끌어들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밀키트 시장이 성장할 수록 회사 매출도 증가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다.
테이스티나인은 편의점, 코스트코 등 일반 소비자와의 접점을 더욱 확대하고 자사몰을 통한 소비자 직접 판매(D2C)도 늘릴 예정이다. 생산보다는 제품 기획에 힘을 주고 자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마이셰프는 삼성전자와 협업해 특정 조리기기 전용 밀키트를 정기구독할 수 있는 상품을 내놓는 등 차별화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