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형마트 라면 매대에 진라면이 진열되어 있다. /연합뉴스

“오뚜기가 만만해요?”

라면값 인상 결정을 내린 오뚜기에 비판 목소리를 낸 소비자단체에 ‘오뚜기 팬덤'이 우르르 몰려가 단체의 홈페이지 ‘소비자 목소리' 게시판을 점령하는 일이 발생했다.

2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오뚜기(007310)는 다음달 1일부터 진라면 등 주요 라면의 가격을 최대 12.6% 인상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오뚜기는 “최근 밀가루, 팜유와 같은 식품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등의 상승으로 불가피하게 가격을 올릴 수 밖에 없었다”면서 “설비 투자 및 인원 충원 등을 통해 보다 좋은 품질의 상품을 개발하고 생산하겠다”고 했다.

오뚜기의 라면 가격 인상 결정 발표에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성명서를 내고 라면의 원재료인 소맥분 및 팜유의 가격은 2012년부터 2019년까지 하락 추세였다면서 “원재료 가격이 올라갈 때는 제품 가격을 올려 소비자에게 인상분 부담을 전가하고, 원재료 가격이 내려갈 때에는 기업의 이익으로 흡수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이어 “오뚜기의 재무제표를 보면 매출은 2012년 1조6525억원에서 2020년 2조3052억원으로 39.5% 오르고, 동 기간 영업이익은 957억원에서 1552억원으로 62.2% 올랐다”면서 “특히 코로나로 집밥 등 가공식품 소비량이 늘어 2019년 대비 2020년의 매출액은 9.3%, 영업이익은 23.1% 증가했으며, 영업이익률은 6.7%로 최근 9년 중 가장 높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민의 대표 식품을 제조하는 기업답게 사회적 책임을 지고 이번 가격 인상을 재검토하기를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이 성명은 언론 등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해당 내용은 원재료 가격 비교와 기업의 실적을 근거로 지적을 한 것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소비자 목소리' 게시판을 채운 오뚜기 팬덤의 비난 게시글.

그러자 오뚜기 팬덤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해당 단체 홈페이지에 대거 몰려들었다. 이들은 ‘갓뚜기' ‘오뚜기만세' 등의 익명으로 ‘오뚜기가 13년 만에 라면 값을 올렸는데 이를 지적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농심(004370)의 사주를 받은 것이냐’는 식으로 매도하는 비난 글도 적잖다.

팬덤이 작성한 게시글은 100건이 넘는다. 이 단체 홈페이지 ‘소비자 목소리’ 공간 1페이지부터 10페이지까지가 모두 오뚜기 비판에 대한 성토글로 채워졌다. 오뚜기에 대한 성명 발표 전까지 올 한해 동안 소비자 목소리 게시판에 올라온 게시글은 7건에 불과했다.

단체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소비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기업의 가격 인상 동향을 모니터링하고 의견을 냈는데, 이를 특정 기업을 옹호한다고 보는 게 부당하다는 것이다. 소비자단체협의회는 오뚜기의 라면 가격 인상 전 CJ제일제당(097950)이 스팸 등 육가공 제품의 가격 인상 결정을 내렸을 때에도 “가격 인상 근거의 타당성을 확인해야 한다”며 비판 성명을 낸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단체 행동에 소비자단체가 외부 압력으로 느끼고,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오뚜기의 라면 가격 인상을 신호탄으로 다른 회사들도 제품 가격을 올려 식탁 물가가 급상승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았다”면서 “이런 시점에 이 단체의 성명서를 통해 소비자 의견이 잘 전달됐고, 도미노 가격 인상을 막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농심도 내심 가격 인상을 고민하고 있었을 텐데, 이 성명서 때문에 가격 인상 결정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더 커졌을 것”이라면서 “근거 없이 소비자단체를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소비자 권익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오뚜기는 난감한 표정이다. 오뚜기 관계자는 “해당 단체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면서 “이번 일로 인해 해당 단체와 갈등을 빚는 것으로 비쳐질까 걱정된다”고 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소비자 운동을 전개하는 단체들의 연합 조직이다. 한국소비자연맹, 소비자시민모임, 한국소비자교육원, 한국YMCA, 한국YWCA, 소비자교육중앙회 등 11개 회원 단체와 전국 188개 지역 단체를 회원 단체로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