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민간 단체급식 시장에 대기업 비중이 높다는 언론 지적이 있는 만큼 시장 과점 여부와 실태를 점검한 뒤 개선방안을 마련하라.” (2017년 9월 5일,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

문재인 정부 출범 두달 뒤인 2017년 9월 5일,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따로 불러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단체급식 과점’을 지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 급식업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대기업 계열 급식업체들은 주요 수입원 중 하나인 공공기관 구내식당 수주가 이명박 정부 때 막혔다가, 박근혜 정부가 2017년부터 2019년 말까지 한시 허용하기로 하면서 신규 수주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상황이었다.

이 전 총리의 발언 이후 진행된 정부세종청사 1단계 이전부처(공정위, 기획재정부, 국무조정실 등) 구내식당 관리사업자 입찰 참여 열기는 예상대로 저조했다. 대기업 가운데 CJ프레시웨이(051500)가 유일하게 도전장을 냈으나 풀무원(017810)이 지분 100%를 보유한 급식업체 풀무원푸드앤컬처가 수주했다.

그래픽=박길우

풀무원푸드앤컬처는 이미 정부세종청사 3단계 이전부처(국세청, 국민안전처 등) 급식사업을 맡고 있었는데, 1단계 이전부처까지 맡게 되자 급식업계에선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한 급식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일감을 몰아준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가 ‘대기업은 공공기관, 자사 단체급식에서 빠져라’라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최대 수혜기업으로 풀무원이 급부상 했다. 풀무원은 더불어민주당 5선을 지낸 원혜영 전 의원이 1981년 창업한 이후 경영에서 손을 뗐다가 지난 3월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린 회사다.

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현 정부가 대기업 계열사의 단체급식 과점 상황에 우려를 표한 2017년 이후 주요 대기업의 단체급식 신규 입찰에서 풀무원푸드앤컬처가 상위 사업자인 삼성웰스토리·아워홈·현대그린푸드·CJ프레시웨이를 제치고 수주한 사례가 급증했다.

2017년 말 LG그룹이 건립한 국내 최대 융·복합 연구개발단지(R&D) LG사이언스파크 구내식당 2개 운영권을 수주했고 같은해 넥슨코리아, 아모레퍼시픽 용산본사 구내식당 운영권 계약을 따냈다. 2019년에는 현대자동차그룹 영남 연수원과 기아차의 경기도 용인 연수원 기아 비전스퀘어 식음료 운영권도 수주했다.

지난 4월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삼성·현대차(005380)·LG(003550)·CJ(001040)·현대중공업·신세계(004170)·LS(006260)·현대백화점(069960) 8개 대기업과 ‘단체급식 일감 개방 선포식’을 가진 이후 이런 흐름은 더욱 가속화 되고 있다. 이날 기업들이 “구내식당 일감을 외부업체에 개방하겠다”고 선언하자 공정위가 기업을 압박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공정위는 “기업들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삼성그룹이 진행한 외부 급식업체 경쟁입찰 5건 가운데 △삼성전자 기흥기숙사 △삼성메디슨 홍천공장 △삼성전기 3곳의 운영권을 풀무원푸드앤컬처가 따냈다. 신세계는 2018년 영등포 타임스퀘어점에 이어 오는 8월 개관을 앞둔 대구 엑스포점 식당 운영을 풀무원에 맡기기로 했다.

현대차·LS·현대중공업·CJ·현대백화점은 지금 업체와 계약기간이 끝나는데로 공개입찰을 진행할 예정이다. NH투자증권은 지난달 24일 보고서에서 “풀무원푸드앤컬처는 대기업 직원 위탁급식 일감개방에 따른 수혜를 입을 것”이라며 “현재 단체급식시장 점유율이 5.1%로 상위 5개사(80%)에 비해 높지 않으며, 브랜드 파워나 제품력은 인정 받고 있어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분석했다.

급식업계에선 이런 상황이 이미 예견된 결과라고 지적한다. 대기업 구내식당의 경우 한번에 1000명 이상분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오랜 식품 제조·관리 노하우가 있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 유리하다. 식품 안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중소기업은 대처하기가 어렵고, 급식 운영 사업자가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변경되면 고용승계 과정에서 직원들 처우가 안좋아져 퇴사하는 사례도 많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수의계약으로 못 컸던 회사가 공정한 경쟁을 통해 인정 받고 있는 것”이라며 “계열사 물량만 안정적으로 수주한 회사들은 이른바 뒷배가 있었던 것인데, 평평한 운동장에서 싸우라는 것이다. 다만 앞으로 지역 중소기업에 단체급식을 맡기는 사례도 나올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풀무원이 더불어민주당 중진인 원혜영 전 의원이 만든 회사라는 점에 주목한다. 원 전 의원은 1981년 부친인 고(故) 원경선 씨 농장에서 나온 농산물을 판매하기 위해 서울 압구정에 풀무원 무공해 농산물 직판장을 열었고 이듬해 풀무원효소식품을 설립했다. 1992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고교 친구인 남승우 전 풀무원 대표에게 경영권을 넘겼다가 지난 3월 사외이사로 복귀했다.

풀무원은 정부의 일감 개방 덕분에 회사가 성장했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풀무원 측은 “그동안 단체급식을 안정적으로 운영해온 노하우가 인정 받은 것”이라며 “입찰에 공정하게 참여해 얻은 성과”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