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069960)그룹 패션 계열사 한섬(020000)이 길었던 부진의 터널에서 벗어나 실적 개선을 꾀하고 있다. 한섬은 2023년 2분기부터 2025년 3분기까지 10개 분기 연속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전년 동기 대비 감소했지만, 지난해 4분기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최근 백화점을 중심으로 패션 소비 심리가 회복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과년차 재고(출시 1년 이상 경과 상품) 부담도 완화되면서 업황 역시 점차 개선되는 분위기다.

1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한섬은 지난해 4분기 매출 4637억원, 영업이익 272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6.4%, 영업이익은 30.1% 늘어난 수치다. 한섬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증가한 것은 지난 2023년 1분기 이후 11개 분기만이다.

그래픽=손민균

한섬은 그간 패션 소비 둔화와 재고 부담이 겹치며 부진한 실적 흐름을 이어왔다. 고금리와 물가 상승으로 소비 심리가 위축된 가운데, 겨울철 이상 고온 등 날씨 변수까지 겹치며 계절성 의류 판매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탓이다.

재고 부담 확대도 수익성을 크게 압박했다. 한섬의 재고자산은 2023년 말 6105억원에서 2024년 말 6243억원으로 늘었고, 지난해 3분기에는 6797억원까지 늘었다. 통상 패션 기업은 판매 속도가 둔화되면 재고가 빠르게 쌓이고, 시즌이 지나면 이를 할인 판매로 소진해야 하는 구조다. 한섬은 2023년 이후 과년차 재고가 늘어나면서 아울렛 판매와 할인 프로모션 비율이 확대됐고, 이익 하락으로 이어졌다.

다만 한섬은 지난해 4분기 이월 상품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8% 늘어나는 등 큰 폭의 재고 소진을 이뤄냈고, 올해부터 관련 부담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정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섬은 지난해 4분기 과년차 재고를 모두 소진했다"며 "매출과 마진이 크게 개선되는 시기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소비 심리 회복과 함께 백화점 패션 매출이 점진적으로 살아나고 있는 흐름도 감지된다. 한섬은 타임(TIME), 마인(MINE), 시스템(SYSTEM), SJSJ 등 주요 브랜드를 백화점 채널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올해 1월 국내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상품군 가운데 여성 정장 관련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21.1% 증가했다. 여성 캐주얼 의류와 남성 의류도 각각 17%, 11.6% 늘었다. 정부의 증시 부양 정책 등으로 소비 여력이 커진 고객들이 백화점 등 고가 의류 중심 채널에서 소비를 본격적으로 늘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지난 9일(현지 시각) 프랑스 리슐리외 국립도서관에서 열린 '타임(TIME) 2026 F/W 프레젠테이션에서 모델들이 런웨이를 마치고 피날레 무대를 장식하고 있는 모습. /한섬 제공

한섬은 국내외에서 브랜드 경쟁력 강화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한섬을 대표하는 여성 패션 브랜드 타임(TIME)은 최근 국내 기성복 브랜드 중 처음으로 여성 파리패션위크 공식 캘린더에 등재됐다. 파리 패션위크는 런던·밀라노·뉴욕과 더불어 권위 있는 패션쇼 중 하나로 꼽힌다.

한섬은 파리패션위크 등재를 위해 지난 2020년 타임사업부 내 '글로벌 컬렉션' 전용 디자인실을 별도로 신설했다. 2024년부터는 파리패션위크 기간 해외 바이어들과 패션 전문가들에게 제품을 선보이는 '오프 캘린더'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등 수년간 물밑 작업을 이어 왔다.

그간 국내와 유럽에서만 패션쇼를 진행해 온 한섬은 지난해 9월 태국 방콕에서 시스템·시스템옴므 브랜드 패션쇼를 진행하며 동남아 시장 진출도 타진하고 있다. 태국 유통 기업들과 홀세일(도매) 계약을 추진하는 한편, 태국 내 팝업 스토어(임시 매장)나 정식 매장 개점 등을 통해 고객 접점을 늘려 나간다는 계획이다.

한섬은 지난달 서울 대치동에도 복합 플래그십 공간 '더한섬하우스 서울점'을 조성했다. 이곳은 한섬 주력 브랜드를 한데 모아 쇼룸과 전시, 브랜드 경험 공간을 결합한 복합 매장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첫 30일 동안의 매출액이 목표치 대비 120%를 달성하는 등 상권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백화점 채널을 중심으로 패션 소비가 회복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며 "한섬처럼 백화점 여성복 브랜드 비율이 높은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실적 개선 효과를 빠르게 체감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