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전 11시 서울 성동구 성수동 무신사 스토어.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매장 안에는 이미 수십 명의 쇼핑객이 오가고 있었다. 상당수는 외국인들로 옷부터 신발, 모자 등을 천천히 둘러봤다. 거울 앞에서 손에 들고 있던 치마를 몸에 대보다가 직원에게 피팅룸 위치를 묻기도 했다. 한쪽에서 모여 있던 일본인 관광객 무리는 스마트폰으로 매장에서 판매 중인 제품 가격을 일본 현지 온라인 가격과 비교해 보고 있었다.

이날 무신사 스토어를 비롯해 성수동의 주요 패션 브랜드 매장에는 대체로 한국인보다 외국인 비율이 높았다. 매장 안팎 안내문에는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 일본어, 중국어가 함께 적혀 있었다. 알리페이, 위챗페이 등 해외 결제 시스템 관련 큐알(QR) 코드나 여권을 제시하면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SHOW PASSPORT & GET 00% OFF)는 문구도 자주 눈에 띄었다.

지난 5일 오전 11시 서울 성동구 성수동 무신사 스토어 성수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상품을 둘러보고 있다. /권유정 기자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에서 K패션(한국 패션)이 주목받으면서, 서울 명동과 강남뿐 아니라 성수동, 한남동까지 외국인 필수 방문 코스가 됐다. 실제 무신사 스토어 성수, 홍대는 외국인 매출 비율이 60~70%를 차지한다. 무신사의 제조 유통 일원화 의류(SPA) 브랜드 무신사 스탠다드 매장은 명동(55%), 한남(44%), 성수(42%) 순으로 외국인 매출 비율이 높다.

국내 패션 브랜드가 지닌 독특한 브랜드 아이덴티티(BI), 디자인, 품질 경쟁력이 한국 문화 콘텐츠, 국내 유명 아이돌, 인플루언서 효과 등과 맞물리며 외국인들 관심을 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중국·동남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 시장으로 영향력을 넓히는 브랜드도 늘고 있다. 무신사 등 일부 업체는 해외 사업 확대에 힘입어 상장 준비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한국국제문화교류원이 28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 해외한류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문화 콘텐츠를 접한 뒤 1년 이내 한국 패션 제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외국인 비율은 66.2%로 집계됐다. 한국 패션에 호감을 느낀 이유로는 '디자인과 스타일이 좋아서'(42.1%), '품질이 우수해서'(30.8%) 등이 꼽혔다.

◇ 성장 공식 된 외국인, 해외 확장 이어 IPO로

올해 코스피 입성을 추진 중인 무신사는 지난달 14일 중국 상하이에 첫 해외 매장인 '무신사 스탠다드 상하이 화이하이 백성점'을 열었다. 올해 상반기 중 난징둥루, 쉬자후이, 항저우 등 3개 지역에 추가 출점할 계획이다. 무신사는 2030년까지 중국 내 매장을 100개 이상으로 늘리고, 글로벌 매출을 3조원까지 키운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무신사의 해외 매출은 약 200억원으로 추정된다.

꽃 그래픽으로 잘 알려진 브랜드 마르디 메크르디를 운영하는 피스피스스튜디오는 지난달 코스닥시장본부에 상장예비심사 신청서를 접수했다. 일본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뒤 중화권 사업을 직영 체제로 전환했다. 태국·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와 미국 아마존으로 진출 범위를 넓혔다.

대담 발표 자료에 올라온 마르디 메크르디의 상징인 '꽃 그래픽.' /민영빈 기자

대명화학그룹 계열사 하고하우스가 2021년 인수한 마뗑킴의 경우 일본과 중화권을 넘어 미국, 유럽 진출에 시동을 걸고 있다. 간결하고 시크한 디자인으로 온라인상에서 소수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팔리던 브랜드는 하고하우스 투자를 계기로 국내외에서 본격적으로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지난해 초 마뗑킴은 글로벌 패션 브랜드 코치와 협업했다. 한정판으로 제작된 코치 마뗑킴 컬렉션은 다국적 멤버로 구성된 걸그룹 캣츠아이가 광고 캠페인에 나서며 화제가 됐다. 비슷한 시기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즌2' 광고, 대한항공 기내 광고 등도 진행했다.

해외 인지도가 높아지며 글로벌 브랜드와 손잡은 국내 패션 브랜드는 마뗑킴만은 아니다. 2014년 설립돼 현재는 60개 국가에서 판매 중인 패션 브랜드 아더에러는 글로벌 SPA 브랜드 자라, 컨버스, 뱅앤올룹슨, 메종키츠네 등과 협업 컬렉션을 선보였다. 자라와 협업은 이른바 '자더에러'로 불리며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아더에러의 경우 국내보다 해외에서 유명 편집숍과 팝업스토어를 통해 먼저 주목받았다. 장르나 성별 경계가 없는 젠더리스 디자인, 특유의 테트리스 로고가 글로벌 팬덤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매장마다 다른 콘셉트를 적용해, 다양한 설치물과 함께 제품을 진열한다는 점도 호응을 얻었다.

지난 5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성수동 마뗑킴 매장에 외국어로 신규 매장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권유정 기자

◇ 의류 넘어 잡화·기능성 웨어도 존재감

국내 아이웨어(안경), 가방, 모자 등 잡화를 찾는 외국인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의류와 달리 계절과 체형, 트렌드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데다 가격 대비 디자인 경쟁력이 높다는 점에서 글로벌 진출에 유리하다는 평가다.

블랙핑크 제니가 착용한 선글라스로 유명해진 젠틀몬스터(아이아이컴바인드)는 연 매출 1조원 돌파를 앞두고 있고, 전체 매출의 약 40%가 해외에서 발생한다. 후발 주자 블루엘리펀트는 저렴한 가격과 오프라인 매장을 앞세워 입소문을 탔고, 해외 시장 공략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블루엘리펀트 매출은 2022년 약 10억원에서 2024년에는 약 300억원으로 증가했다.

2018년 출범 후 4년 만에 매출 200억원을 달성한 국내 가방 브랜드 스탠드오일은 일본, 대만, 태국 등 해외 고객 비율이 절반을 웃돈다. 10만원대 가격에 감각적인 디자인과 품질로 호평받았다. 소셜미디어(SNS)에서 인기 아이돌과 인플루언서가 착용한 볼캡으로 유명해진 이미스는 연 매출 1000억원 달성을 앞두고 있다.

인디 브랜드가 해외에서 입지를 넓히는 사이, 대기업 패션사들은 골프웨어와 아웃도어 등 프리미엄 기능성 카테고리를 앞세워 글로벌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코오롱FnC)는 지포어(G/FORE)와 코오롱스포츠를 통해 아시아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 중이며, F&F는 MLB와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으로 중국과 동남아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작년 1~9월 기준 방한 외국인의 전체 관광 지출 중 쇼핑이 차지하는 비율은 51%를 차지했다. 이 기간 패션 소비는 약 23.4% 증가했다. 액세서리(33.0%↑), 스포츠웨어(32.8%↑), 스포츠용품(33.4%↑) 등이 증가세를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