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생활건강(051900)이 정기 임원 인사 일정보다 두 달 앞선 지난 29일 외부 인사로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했다. 신임 CEO는 로레알, 메디힐, AHC 등 화장품 업계에서 30여 년간 경력을 쌓은 이선주(55) 사장이다. LG생활건강이 외부 전문 경영인을 CEO로 발탁한 것은 2005년 차석용 전 부회장 영입 이후 20년 만이다. 업계에선 LG생활건강이 '원포인트 인사'를 통해 분위기를 쇄신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선주 신임 LG생활건강 사장. /LG생활건강 제공

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LG생활건강은 오는 11월 임시 주총과 이사회를 거쳐 CEO를 교체한다. 화장품과 생활용품, 음료 사업을 하는 LG생활건강은 지난 2분기 주력인 화장품 사업이 20년 만에 적자를 기록하는 등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2020년 12월 160만원대였던 주가도 이날 종가 기준 28만6000원까지 하락했다. 신생 뷰티테크 기업 에이피알(278470)보다 시가총액이 적어졌다. 이에 회사는 해태htb(옛 해태음료) 매각을 추진하는 등 경영 효율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LG생활건강의 올해 2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54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5% 감소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8.8% 줄어든 1조6049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주력인 화장품 매출이 19% 줄고, 영업손실 163억원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화장품 부문이 적자를 낸 건 지난 2004년 4분기 이후 20년 6개월 만이다.

업계에선 화장품 매출의 35%가 면세·방문판매 등 전통 채널에, 중국향 매출의 80%가 더 후 브랜드에 집중되는 등 '구조적 한계'가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LG생활건강은 더 후 브랜드를 앞세워 중국 시장을 공략했으나, 코로나19 이후 럭셔리 뷰티 제품 선호도가 떨어지고 중국 내수 시장이 위축되면서 수요가 줄고 있다.

역시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았던 아모레퍼시픽(090430)이 중국 내 판매처와 브랜드 수를 줄이며 중국 의존도를 20%대로 낮춰 대응한 데 반해, LG생활건강은 작년 기준 중국 매출 비중이 45%로 다른 지역에서 성장동력을 찾지 못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지난 5월 중국 상하이에서 '더 후' 천기단 신제품의 글로벌 출시 행사를 진행한 LG생활건강. 사진은 천기단 글로벌 엠베서더인 중국 배우 리시엔. /LG생활건강 제공

이에 올 3분기 화장품 사업 구조조정을 선언한 LG생활건강은 글로벌 브랜드 경험이 많은 이선주 사장을 영입해 구조조정의 전권을 맡겼다. 이 사장은 로레알코리아 홍보·기업 커뮤니케이션 담당에서 출발해 한국 키엘을 글로벌 매출 2위 국가로 키워 본사 국제사업개발 수석부사장까지 역임했다. 또 엘엔피코스메틱 글로벌전략본부 사장과 유니레버의 자회사인 카버코리아 대표를 거치며 메디힐·AHC의 해외 진출을 담당했다. 지난해에는 테라로사 커피 CEO도 맡았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로레알 출신의 다양한 글로벌 경험과 마케팅 감각을 바탕으로 화장품 사업 혁신과 글로벌 시장 리밸런싱(재조정)을 이끌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화장품 사업 구조조정의 핵심은 비중국 시장 성장동력 확보 및 브랜드 경쟁력 강화다. 앞서 LG생활건강은 북미 진출을 목표로 미국 화장품 브랜드 '에이본' 인수(2019), '피지오겔' 아시아·북미 사업권 확보(2020), '유시몰' 글로벌 사업권 확보(2020), '더크렘샵' 지분 투자(2022) 등을 통해 브랜드 포트폴리오 개선을 시도했다. 그러나 정작 케이(K)뷰티 브랜드의 글로벌 뷰티 수요 확대 추세와는 거리가 먼 실책이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특히 더 후를 이을 차세대 브랜드가 부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 후는 2018년 매출 2조원을 돌파할 만큼 덩치가 커졌지만, 중화권에 한정된 성장세를 보였다. '빌리프·CNP'가 북미·일본에서, 2023년 경영권을 인수한 K뷰티 브랜드 '힌스'가 일본에서 호응을 얻고 있으나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상황이다. 이에 K뷰티 브랜드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글로벌향 브랜드를 다양하게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6월 LG생활건강이 선보인 'LG 프라엘 수퍼폼 갈바닉 부스터'. /LG생활건강 제공

LG전자(066570)로부터 양수한 뷰티 디바이스 브랜드 'LG 프라엘'과 화장품 사업의 시너지 창출 여부도 관심사다. 2021년 에이피알이 출시한 '메디큐브'가 뷰티 기기와 함께 사용하는 화장품 반복 구매를 유도해 업계 선두가 된 데 반해, 2017년 출시한 LG프라엘은 가전제품의 관점에서 뷰티기기를 판매해 성장이 제한됐다는 평가가 많다.

성장세가 떨어진 생활용품과 음료 사업의 수익성 개선도 과제다. 음료사업 구조조정에 착수한 LG생활건강은 '봉봉', '코코팜' 등을 제조하는 자회사 해태htb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업계의 평가는 보수적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쇄신할 시기를 놓친 감이 있다"면서 "최근 화장품 시장은 과거의 영업 방식이 아니라 고도의 브랜딩 전략이 들어가야 한다. 근본적인 기업 구조를 개선하기까지 상당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정지윤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1분기 이후 생활용품과 음료 부문의 수익성 개선, 화장품 부문 채널 재정비 결과 확인 시 유의미한 주가 반등이 가능할 전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