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화장품·의류 수출기업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의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및 제조자개발생산(ODM) 업체의 경우 매출 개선세가 뚜렷할 전망이다.

반면, 미국 수출이 늘고 있는 케이(K)뷰티 브랜드들은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 영향으로 수입 원료 및 물류비용이 증가함에 따라 이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올리브영의 세일(올영세일)이 시작된 지난달 1일 서울 올리브영 명동점에서 외국인 관광객들과 쇼핑객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뉴스1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세실업(105630)은 작년 4분기 매출이 두 자릿수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의류업체 갭(GAP) 등을 고객사로 둔 이 회사는 지난해 4분기 수주 물량이 증가한 데다 원·달러 환율이 전년 대비 6% 상승(원화 가치 6% 하락)하면서 매출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감소세가 전망된다. 유정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마진이 적은 마트 바이어 비중이 높아지고, 고객사들의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따른 관세 부과 우려로 OEM 업계가 수주 단가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원가율 상승이 지속되고 있다”며 “고환율의 우호적 상황에서도 영업이익률은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했다.

영원무역(111770)도 작년 4분기 OEM 부문 매출이 달러화 기준 전년 대비 5%가량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회사는 노스페이스, 룰루레몬, 아크테릭스 등 아웃도어·스포츠 브랜드를 주 고객으로 두고 있다. 아디다스의 생산 파트너사인 화승엔터프라이즈(241590)도 실적 호조가 전망된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이 회사는 아디다스의 스테디셀러인 ‘삼바’ 등의 생산량이 늘면서 작년 4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26%, 영업이익은 270%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통상 의류 OEM·ODM 업체는 주문부터 선적까지 3~6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원부자재 구입 당시 환율보다 제품 출하 시기 환율이 높아지면 그만큼 혜택을 입게 된다. 업계에 따르면 영원무역은 미국 매출 비중이 41%, 한세실업은 8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수출이 늘고 있는 화장품 관련 업체들도 환율 상승의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지난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4년 12월 및 연간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화장품 수출액은 102억달러를 기록하며 역대 처음으로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특히 미국에서 한국 화장품 인기가 높아지면서 프랑스를 누르고 미국 시장 내 화장품 점유율 1위 자리를 꿰찼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올해 K뷰티 수출액이 전년 대비 3~10%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관련 기업들의 수혜가 예상된다. 박은정 하나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10% 상승할 때 주요 화장품 기업의 연결 영업이익은 기존 추정치 대비 평균 3% 오르는 효과가 기대된다”면서 씨앤씨인터내셔널(352480), 실리콘투(257720), 아모레퍼시픽(090430) 등 국내에서 제조 후 직수출하는 기업이 유리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해외 기업을 주요 고객사로 둔 의류 OEM·ODM 업체와 달리 화장품은 주로 국내 브랜드사를 주 고객으로 두고 있어 환율에 따른 영향이 적을 거란 분석도 나온다. 대형 화장품 ODM 업체 관계자는 “고객사 대부분이 국내 업체들이라 고환율에 따른 영향을 체감하지 못한다”면서 “화장품 원료로 수입해 쓰는 글리세린과 코코넛 오일(팜유) 등도 대량 비축해 두었기에 당장 사업 운영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소 OEM 기업의 경우 원부자재와 물류비용 상승으로 인해 수익성이 줄어들 거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등 현지 법인이 있는 브랜드사의 경우 환율 상승으로 매출 증가와 함께 비용 부담도 커진다는 의미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지난 9월 발표한 ‘중소기업 환율 리스크 분석 연구’에 따르면 제조 중소기업의 영업이익 측면에서 환차손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최대 25% 수준에 달했다. 또 원·달러 환율이 1% 상승하면 환차손은 0.36%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장품 OEM·ODM 업계 관계자는 “최근 해외에서 K뷰티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인지도가 낮은 인디 브랜드들이 가성비를 앞세워 해외에 진출하는 추세인데, 고환율이 장기화하면 상황이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최근 내수 화장품들이 가격을 올렸듯, 어떤 식으로든 소비자 가격에 전가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