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 작업자에 의해, 현장을 위해 탄생한 워크웨어(작업복).”
최근 국내 유수 제조업체들이 작업복이나 유니폼 제작을 맡기고 있는 의류 브랜드가 있습니다. 방염복 등 안전에 특화된 워크웨어 브랜드 ‘아커드’입니다. 작업복 최초로 정장에나 쓰일 법한 비스포크(맞춤형) 개념을 도입해 업계에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브랜드를 만든 회사가 부산 철강 제조사 ‘대한제강’이라는 것입니다. 대한제강은 국내 업계 3위 철강 회사입니다. 왜 1954년 부산 국제시장 작은 고물노점상에서 시작한 유력 철강 회사가 서울 을지로에 5층짜리 플래그십스토어까지 열고 작업복 브랜드를 직접 운영하고 있는 것일까요.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아커드는 대한제강의 신사업 프로젝트로 2022년 11월 출시됐습니다. 당초 이 사업은 철강회사의 고질적인 문제인 산재 사고 위험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습니다.
제철소는 재해 사고가 많은 곳입니다.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KOSHA)에 따르면 올 상반기 철강업계 산업재해를 입은 피해자만 7800명에 달합니다. 연간 기준으로 따지면 1만 명을 크게 웃도는 수치입니다. 1600도 이상의 뜨거운 쇳물을 이용해 철근을 만드는 만큼 뜨거운 쇳물이 옷을 뚫고 피부에 닿으면서 화상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합니다.
이때 한 직원이 ‘작업복’을 통째로 바꾸자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동료들이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보호복 수준을 높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대한제강 오너 3세인 오치훈 대표이사도 이 아이디어를 수용해 전격적인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아커드가 시작된 순간입니다.
대한제강에서 기존 쓰던 통상적 작업복은 과거에 머물러 있어 성능이 형편 없었습니다. 시중에서 사용되는 보호복인 방염복의 상하의 세트 가격은 5만원 내외, 보호 기능은 후처리 방염 코팅이 전부이기에 세탁 이후에는 제 기능을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에 아커드팀은 높은 난연성과 내열성을 가져 소방복에 활용되는 소재인 아라미드를 활용한 방염복을 개발해 지난해 보급했습니다. 이 방염복 보급 후 대한제강 현장에선 화상 사고 발생이 ‘0건’이라고 합니다. 안전 사고 발생률도 대폭 감소했습니다.
이 같은 성과에 올해 경쟁사나 다른 유명 대기업 등에서도 아커드와 계약을 하고 있습니다. 철강, 건설, 제조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직접 디자이너 등을 파견해 실제 현장과 현장 작업자들의 경험을 토대로 옷을 설계합니다. 근로자들 의견을 들어 여러번의 수정 작업을 거치는데, 그야말로 비스포크 작업복입니다.
아커드는 가격과 안전을 타협하지 않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합니다. ‘근로자들의 안전을 위한 브랜드’라는 철학을 지키기 위해서 입니다. 첨단소재와 맞춤형 디자인때문에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는데, 일반복과 비교하면 최대한 마진을 줄여 가격을 낮추고 더 널리 보급하겠다는 방침입니다.
물론 이는 기업의 사회공헌 측면을 강조하는 오 대표의 든든한 뒷받침이 있어서 가능한 얘기입니다. 오 대표는 2014년부터 기업을 이끌고 있는데 일부 신사업 진출은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강화는 강점이라는 것이 안팎의 평가입니다. 아커드는 향후 기업 간 거래(B2B)뿐 아니라 일반 고객 대상으로 의류 판매도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아커드 관계자는 “고객사들 요청으로 브랜드명을 밝히지 못하지만 경쟁사나 유수 대기업과 계약을 한 상태”라며 “가격 때문에 안전을 타협하진 않는다. 일반 의류는 마진율이 통상 굉장히 높지만, 작업복 같은 경우는 그보단 마진을 좀 더 낮추는 한이 있더라로 원칙을 지키려고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