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장에서 케이(K)뷰티의 인기가 커지는 가운데, 최근 인지도가 급상승한 한국 화장품이 있다. 바로 미국 이커머스 아마존에서 파운데이션 판매 1위를 차지한 티르티르의 ‘마스크 핏 레드 쿠션’이다.

한국 화장품에 대한 미국 내 호감도가 커지는 추세지만, 대부분은 기초 화장품(스킨케어) 제품에 치중된 경향이 있었다. 서양인의 피부에 한국의 색조 화장품이 잘 맞지 않다는 인식 탓이다. 하지만 이 제품은 한국 색조 화장품으로는 처음으로 아마존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유튜브 채널 '미스달시'에 게시된 티르티르 제품 관련 쇼츠 영상. 처음엔 자기 피부색 보다 밝은 색의 제품을 쓰는 영상을 올렸으나, 한 달 후 티르티르 측에서 제공 받은 쿠션을 사용하며 만족하는 모습을 담았다. 해당 쇼츠는 유튜브에서 3151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유튜브 캡처

◇30가지 색 파운데이션에 흑인도 호평

이야기는 319만 명의 구독자를 둔 유튜브 채널 ‘미스달시(MissDarcei)’를 운영하는 흑인 뷰티 크리에이터 달시가 지난 4월 ‘한국 파운데이션 중 가장 어두운 색’이라는 제목과 함께 티르티르의 쿠션 제품을 발라보는 쇼츠(짧은 영상)를 올리면서 시작된다. 당시 달시는 자기 피부보다 밝은색의 제품을 바르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를 본 티르티르 측은 이후 20가지 색상의 쿠션 제품을 그에게 선물했고, 달시가 이를 언박싱(개봉)하는 영상을 올린 후 ‘흑인도 쓸 수 있는 제품’으로 입소문을 탔다. 해당 쇼츠는 13일 현재 3151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 제품은 지난해 처음 출시됐을 때만 해도 한국 소비자에 맞춰 17호, 21호, 23호 3가지 색이 출시됐다. 하지만 올해 2월 9개, 5월 20개로 색을 늘렸고, 이달엔 30가지 색으로 확장됐다.

색상을 늘려가던 때 한국 화장품에 관심을 두던 미국 뷰티 유튜버의 레이더망에 걸린 것이다. 회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시를 한국으로 초청하는 등 후속 마케팅을 이어갔다.

티르티르 관계자는 “전 세계 소비자가 만족할 만한 색조를 제공하기 위해 올 초 틱톡 공식 계정에서 대규모 설문조사를 진행했다”면서 “소비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다양한 피부톤을 아우르는 제품을 제공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지난 12일 기준 아마존 페이스 메이크업 부문 판매 1위에 오른 티르티르 '마스크 핏 레드 쿠션'. /아마존 캡처

◇K뷰티, 미국 진출 위해선 다양성·포용성 갖춰야

전문가들은 K뷰티의 제품력과 소셜미디어(SNS)의 확장성이 결합한 성공 사례라고 평가한다. 티르티르는 2017년 인플루언서이자 사업가인 이유빈 대표가 출범한 브랜드로, 태생부터 SNS에 강점을 지녔다. 2020년부터는 일본과 동남아에 진출했다. 아마존에서 흥행한 레드 쿠션의 경우 지난해 일본에서 1300만 개 이상 판매됐다.

최근에는 조선미녀를 운영하는 구다이글로벌에 인수되며 미국 시장에서도 시너지를 내는 모습이다. 조선미녀는 쌀 추출물로 만든 스킨케어 브랜드로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2019년 1억원이던 연 매출은 지난해 1400억원으로 뛰었다.

레드 쿠션이 미국 소비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충족시켰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화장품은 기능 면에서 우수하다는 평을 받지만, 색상이 제한적이어서 짙은 피부색을 가진 유색인종에게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2017년 미국 팝스타 리한나가 출시한 화장품 ‘펜티 뷰티’가 50가지 색상의 파운데이션을 내놓으며 뷰티업계에 포용성이 화두로 떠올랐지만, 중국 등 동남아 시장을 타깃으로 한 한국 화장품 시장에선 간과돼 왔다.

가수 리한나가 출시한 50가지 색상의 펜티 뷰티 파운데이션. 이 제품이 반향을 일으키면서 미국에선 '펜티 이펙트(효과)'라는 용어가 생겼다. /펜티뷰티

하지만 최근 화장품 업계가 북미 시장을 겨냥하면서 다양성과 포용성이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타깃 확대 측면에서도 다양성은 반드시 고려해야 할 가치다. 미국에서 한국의 선크림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백탁현상(사용 후 하얗게 잔여 감이 남는)이 없어 흑인도 사용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닐슨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흑인 소비자가 뷰티 제품에 쓴 지출액은 80억달러(약 11조120억원)가 넘었다.

젊은 소비자일수록 다양성과 형평성, 포용성을 의미하는 DEI(Diversity·Equity·Inclusion)는 중요하다. ‘잘파세대’를 쓴 황지영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는 “어릴 적부터 디지털 문화 속에서 다양성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체화한 10대가 다른 세대보다 흑인 인권 운동을 더 적극 지지했다”면서 “기업들은 이를 인식하고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