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한 캐쥬얼 브랜드 시티브리즈는 패션 플랫폼 무신사와 W컨셉 판매 순위 1위를 기록했다. 이 브랜드를 운영하는 이스트엔드의 총 누적 거래액은 약 800억원이다.
요즘 MZ세대(1980~2020년대생)한테 인기있는 ‘디자이너브랜드’가 밟는 성공 공식을 구축했다는 평가다.
올해는 중국을 시작으로 일본과 대만 등 해외 진출도 본격화한다. 투자 혹한기에도 이스트엔드는 시리즈A와 B를 거쳐 현재까지 15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받았다. 패션 플랫폼 운영사를 제외한 브랜드 운영사로서 최고액으로 꼽힌다.
이스트엔드는 지난 2016년 설립 후 시티브리즈, 아티드, 로즐리, 후머 등 6개 자체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주력 브랜드인 시티브리즈는 오프라인 진출에서도 큰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스트엔드의 누적 거래액은 2023년 기준 800억원을 돌파했으며, 연간 90% 이상의 성장세를 이어 가고 있다.
이스트엔드가 시작부터 탄탄대로만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결혼식 등 행사가 중단되면서 ‘하객룩’ 이미지였던 로즐리가 큰 타격을 입었다. 초창기 야심차게 인수했던 다른 브랜드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위기를 넘기는 비결은 ‘좋은 옷을 싸게 판다’는 본질에 있었다. 상품 품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연구·개발(R&D)에 공격적으로 투자했고, 품질을 위해 이윤을 줄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부족한 자금은 투자자들에게 성장 가능성을 피력해 마련했다.
성과는 특허로 나타났다. 이스트엔드가 그동안 확보한 특허만 6개에 달한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스마트 생산 시스템 특허와 의류에 이미지를 프린팅하는 프린터 등 기술 특허 등이다. 울 케이블 니트 집업 가디건 등은 디자인 특허도 냈다.
원단과 품질에 집중하자 편하고, 관리가 쉽지만 예쁜 옷을 찾는 2~30대들의 구매 수요가 몰렸다. 시티브리즈의 케이블니트 집업과 링클프리 셔츠는 온라인에서 20만장이 넘게 팔린 든든한 ‘캐시카우’다. 통상 한 제품이 3만장만 넘게 팔려도 인기 제품으로 보는데 20만장은 메가히트로 여겨진다.
작년에는 팝업스토어를 기점으로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시티브리즈의 첫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앞으로 20개까지 매장을 늘릴 계획이다.
지난 22일 서울 성동구 이스트엔드 본사에서 만난 김동진(39) 이스트엔드 대표는 “올해 중국뿐 아니라 일본과 대만 등 다양한 국가에도 유통업체 협력을 통해 오프라인 매장으로 진출할 것”이라면서 “내년 코넥스 상장 후 3년 후 코스닥 이전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대표와의 일문일답.
─패션 브랜드 사업에 뛰어든 계기는.
“패션플랫폼 업체가 만든 시장에서 주류가 되는 것이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판단했다. 창업을 결심한 시기가 2016년 말인데, 패션업이 다른 사업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다. 직접 M&A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패션 브랜드들을 인수한 경험이 있었다.
당시 무신사나 W컨셉 등 업체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디자이너브랜드 수요가 점차 늘기 시작한 때였다. 아마 그 3~4년전에만 창업을 했어도 패션 플랫폼 업체를 만들려고 했겠지만, 이미 시점이 늦었다고 봤다. 대신 패션 플랫폼이 만든 시장에서 성공을 하자고 생각했다. 또 대중 문화적으로도 트렌드의 모멘텀이 옷으로 갈 거라고 생각했다. 드라마나 영화, K팝 등 K콘텐츠가 인기를 끌면 다음은 당연히 K패션으로 인기가 흐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신사 등이 등장하면서 과거와는 의류 시장 지형이 변했다.
“과거에는 중견 의류기업이 브랜드 하나를 만들면 백화점 유통망을 뚫고, 2~3년간 자본을 투자해 마케팅을 하면 시장에서 자리잡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무신사나 W컨셉, 29cm 등 온라인 시장이 파이를 독점하고 있다. 오프라인 유통에 비해 기회가 훨씬 늘었다. 과거에 비해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더 좋아진 것이다. 오프라인은 매장이 한정되지만 온라인은 한번 진출하면 유지해주는 것은 문제가 안된다.“
─디자이너브랜드 시장이 포화라는 진단도 나온다. 신규 스타트업들에게 조언한다면.
“브랜드는 세일즈와 히스토리로 구축된다. 꾸준히 버텨야 한다. 시장이 물론 너무 빠르게 성숙해 포화한 상태다. 하지만 대체는 언제나 가능하다. 트렌드는 바뀌고 새로운 브랜드는 얼마든지 진출할 수 있다.
시작 단계에서는 핵심 아이템만을 선정해서 박리다매로 고객한테 특정 제품을 알려 인지도를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흔히 디자이너브랜드 하는 친구들은 시작할때 모든 아이템을 상의,하의,카테고리 다 만들어서 진출하는데, 막상 그 중 팔리는 아이템은 10%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티브리즈가 7년을 지속해서, 이제 브랜드 인지도가 생기고 오프라인 매장을 낼 수 있다. 제품군을 줄이고, 온라인에 입점할 수준으로만 갖춰서 오래 끈기있게 판매를 해야한다. 최소 2년은 매시즌 아이템을 판매할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의 특색있는 고품질 제품으로 시장에서 버티면 살 길이 열린다.”
─이스트엔드도 위기를 겪었다.
“초창기엔 자체 개발한 시티브리즈 외에도 5억원 규모 이하의 디자이너브랜드들을 인수해서 키웠는데, 주인이 없는 브랜드에 온전히 신경을 기울일 수 없어서 위기 대응이 어려웠다. 설립 이후 승승장구하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점차 직접 가진 브랜드를 더 키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선택과 집중을 해 잘되는 브랜드의 품질을 더 높이고, 노력하자는 방향성을 잡았다.”
─시티브리즈의 성공 비결은.
“고품질의 옷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한다. 결국 본질이다. 시티브리즈는 20대 후반이 타깃인데 세탁기에 넣어도, 그냥 빨아도 관리가 되고 예쁜 옷을 만드는 식이다. 가격도 저렴하고, 관리도 쉬운데, 스타일리쉬한 옷이다.
처음에는 미용사들을 타깃팅했다. 하루종일 매장에서 입고 있어도 예쁘고 편한 옷을 만들려고 했고, 이때 만든 케이블 집업 니트가 히트를 치면서 품질 개발에 더 힘을 썼다.
20만장 넘게 팔린 링클프리 셔츠도 셔츠는 일반적으로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되는 옷들이 많은데 바쁜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이 매주 세탁소에 옷을 맡기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최대한 구김이 덜가고, 세탁기에 돌려도 괜찮은 특수 원단을 사용했다. "
─올해에는 해외 진출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중국에는 왕훙 라이브 커머스로 진출했고 지난달 매출만 4억원에 달한다. 본토 직접 진출은 너무 위험성이 커서 왕홍을 통해 판매를 계속 확대할 예정이다. 일본과 대만도 유통회사와 협업을 통해 현지 백화점 등에 팝업스토어와 매장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최종 논의 단계다.”
─K패션 사업자로서 활동하며 아쉬운 점은.
“K패션은 콘텐츠와 다르게 자금조달과 펀드문화가 비활성화 되어있다. 정부 지원도 전무한 상황이다. 성공 가능성이 보장되지 않아도 영화나 드라마에는 정부가 조건없이 쏟아붓는 지원이 K패션에는 없다. 현재 이미 마뗑킴 등 성공한 디자이너 브랜드 몇개가 시장을 독식해 새로운 브랜드가 성장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성숙해버렸다.
무신사가 시작하고 더현대가 주도했던 K패션 생태계가 더이상 발전이 어렵다는 진단이 나온다. 성장 활로가 막혔는데 이럴때 정부가 자금지원 등 활로를 열어줘야 한다. 내수만 60조원에 달하는 시장이고 해외로 뻗어나가면 그 규모가 얼마나 될지 가늠도 안되는 큰 시장인데 왜 키우지 않는지 아이러니하다.”
─이스트엔드 다음 목표는.
“스포츠애슬래틱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일차적 목표다. 성별을 가리지않고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애슬레저 룩을 만들 계획이다. 이미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들의 이미지가 고루해진 상황이라 충분히 승산이 있다. 룰루레몬도 레깅스 뿐만 아니라 남성 운동복 등으로 시장을 성공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투자 측면에서는 코넥스 상장 전에 시리즈C 투자를 최소 100억원 이상 규모로 유치하는 것이 목표다.”
◇김동진 대표는
▲미국 퍼듀대 산업경영·운용경영학 복수전공 ▲LG전자 마케팅팀 근무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근무 ▲글로벌 전략컨설팅펌 ADL 근무 ▲2016년 이스트엔드 창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