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 기계로 한 번 깎아낸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원석(좌), 최종 가공을 마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우) /김가연 기자

“다이아몬드 원석을 만들어 연마·세공까지 전 과정을 이곳에서 한 번에 진행할 수 있어요. 2021년 12월 31일에 양산에 성공하고는 ‘아, 이제 됐다’ 싶었죠.”(강형석 KDT다이아몬드 대표)

5일 오전 10시에 찾은 서울 종로구 KDT다이아몬드 건물. 이 건물 한 쪽에 마련된 10평짜리 실험실에서는 매달 200캐럿의 랩그로운(Laboratory Grown)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란 실험실에서 키워진 다이아몬드를 뜻한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라고 하면 ‘인조 다이아몬드’나 ‘싸구려 큐빅’을 떠올릴 사람도 있겠지만 이것들과는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와 광산에서 캔 천연 다이아몬드는 화학적·물리적·광학적으로 100% 동일하기 때문이다. 눈으로는 천연 다이아몬드와 구별할 수 없고 전문가도 형광 장비를 통해서만 발광하는 색의 차이를 통해 구별할 수 있을 정도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양산에 지난 5년간 집중해온 강성혁 대표는 “천연 다이아몬드는 고드름,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냉동실에서 얼린 각얼음인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KDT다이아몬드 실험실에 있는 챔버. 사각형 모양의 시드를 이 안에 넣어 다이아몬드 원석으로 키우는 기계다./김가연 기자

◇ “500시간이면 다이아몬드 원석이 ‘뚝딱’

실험실에 들어서자 다이아몬드가 될 시드(씨앗)를 원석으로 만들어주는 챔버 두 대가 놓여 있었다. 시드는 손톱보다 작은 가로 7mm·세로 7mm 사각형 모양이다.

이 챔버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제작의 기술력이 집약된 기계로 시드를 챔버 안에 넣고 400~500시간 가동시키면 다이아몬드 원석이 된다. 화학기상증착(CVD) 기술이 이용되는데 시드를 기계에 넣은 뒤 수소를 주입하면 순수 탄소 입자만 분리돼 나오는 원리다. 이 과정에서 챔버 안의 온도가 1000도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옆에 설치된 탱크에서 물을 끌어와 열을 식혀주는 과정을 거친다.

이 기술은 송오성 서울시립대 신소재학과 교수팀과 산학협력을 통해 탄생했다. 강 대표는 6년 전 유럽에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고 한국에 돌아와 2019년부터 산학협력을 통해 2년간 연구 끝에 2021년 국내 최초·세계 8번째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개발에 성공했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도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시장에 관심을 두고 있다. 지난해 LVMH의 태그호이어도 까레라 시계에 랩그로운 11캐럿을 넣은 제품을 출시했다. LVMH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생산 업체에만 9000만달러(약 1200억원)를 투자했고 해당 시계는 약 5억원에 판매했다.

강 대표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사업에 뛰어들고 싶어하는 다른 국내 기업들이 최소한의 기술력을 다 갖추려면 적어도 7~8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며 “KDT다이아몬드도 다이아몬드를 전문적으로 다뤄온 회사였지만 처음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개발할 때 실험실에서 수도 없이 밤을 새며 연구했다”고 말했다.

KDT다이아몬드 연마실에 있는 3D프린터. 원석으로 가공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의 모양을 3D로 구현해 보여준다./김가연 기자

◇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로 만들기까지 하루면 충분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원석이 연마실로 이동하면 인도 출신 연마사에 의해 반짝이는 보석용 다이아몬드로 가공된다. 연마사가 다이아몬드 하나를 완성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하루. 원석을 나석으로 하루 만에 만들 수 있는 까닭은 3D프린터와 레이저 기계 덕분이다.

3D프린터에 원석을 고정해 넣으면 구현 가능한 디자인을 3D형태로 컴퓨터가 생성해서 보여준다. 원석의 몇 퍼센트를 살릴 수 있는지 수치도 함께 제시된다. 일반적으로 가로 7mm·세로 7mm 원석을 깎아 둥근 형태의 다이아몬드로 만들면 원석의 약 35%를 살려 2~3캐럿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다.

3D프린터에서 원하는 디자인을 고른 뒤 레이저 기계에 원석을 넣으면 완성품의 70~80% 수준으로 원석이 깎여 나온다. 둥근 모양, 물방울 모양 등 다이아몬드의 아웃라인이 완성되는 것이다.

KDT다이아몬드 연마실에서 다이아몬드를 가공 중인 연마사. 디스크판을 이용해 다이아몬드 면을 깎아내고 있다. /김가연 기자

이제부터 숙련된 연마사들이 디스크판에 원석을 놓고 하나의 면을 57개의 면으로 깎아 반짝거리는 형태로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 0.1캐럿에도 가격이 40%씩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천연 다이아몬드의 경우 아무리 숙련된 연마사라고 하더라도 화려한 모양을 위해 과감한 커팅을 하기란 어렵다.

강 대표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경우 가격적인 면에서 부담이 덜하기 때문에 과감한 커팅을 해 더 화려하고 예쁜 모양이 나온다”며 “미적인 측면, 금전적인 측면 모두에서 고객들이 선호해 이미 회사 매출의 80%를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차지하고 있고 앞으로는 비중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매장에 전시된 천연 다이아몬드 1.56캐럿의 가격은 약 5400만원,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1.13캐럿은 380만원이었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천연 다이아몬드보다 10배 가량 저렴했다.

◇ 인도 공장에서 연간 10만 캐럿 생산 목표

KDT다이아몬드 연마실에는 30년 경력의 인도인 연마사가 다이아몬드를 가공하고 있었다. 인도는 다이아몬드가 최초로 발견된 나라로 현재 전 세계 다이아몬드의 95%를 세공한다. 다이아몬드와 관련해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다이아몬드 연마·세공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지금은 인도인 연마사를 한국에 모셔왔지만 내년 3월부터는 인도에서 아예 공장을 가동할 계획이다. 강 대표는 “인도 수랏시에 공장을 설립하고 있다”면서 “내년 3월 공장이 가동되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생산을 위해 약 150명의 현지 연마사를 둘 예정”이라고 했다.

150명의 연마사를 확보하기 위해 현지에 있는 회사를 인수하거나 현지 회사와 계약을 맺을 계획도 있다. 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이 된다면 첫 해 3만5000캐럿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연간 10만 캐럿 생산을 장기 목표로 삼고 있다.

물량을 전부 소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보였다. 강 대표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어 인도 공장을 가동한 후에는 해외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며 “또 국내 시장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올해 초만해도 비수도권에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수요는 미미했지만 최근에는 비수도권 고객들까지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이랜드그룹에서 지난 8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전문 브랜드 ‘더그레이스 런던’ 팝업스토어를 열었을 당시 2시간 만에 1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