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쓰레기도 처분하지 못해 골머리인데, 쓰레기를 수입해 옷을 만들어 팔 순 없었죠.”
블랙야크는 국내 의류 업체 중 처음으로 버려진 페트병을 재활용해 옷을 만들어 판 브랜드다. 2020년 7월 첫 제품을 출시한 이래 현재까지 3900만 병을 재활용해 패션 상품을 만들었다. 전체 전체 상품 중 40%가량이 블랙야크가 폐페트병을 재활용해 개발한 폴리에스터 원사인 ‘케이-알피이티(k-R-PET)’로 만들어진다.
이전에도 폐페트병으로 만든 옷들은 있었다. 하지만 모두 해외 소재에 의존했다. 쉽게 말해 외국 쓰레기로 만든 원료를 수입해 옷으로 만들었다.
폐페트병으로 옷을 만드는 공정은 ‘분리배출·수거-재활용-원사화-상품화’ 등 4단계로 이뤄진다. 수거한 투명 페트병을 잘게 잘라 플레이크(Flake)로 만든 뒤 세척 후 쌀알 모양의 칩(Chip)으로 만들고, 여기서 원사를 추출해 원단으로 짜 옷을 만든다.
간단해 보이지만, 페트병 수거 과정부터 만만치가 않다. 투명 페트병이 아닌 다른 류의 페트병이 섞이면 좋은 원사를 뽑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업체들이 칩을 수입해 원사를 짜 옷을 만든다.
지난 7일 서울시 서초구 블랙야크 본사에서 만난 김정회 비와이엔블랙야크 뉴라이프 사업부 상무는 블랙야크의 페트병 재활용 의류 공정 전반을 기획한 인물이다. 2019년 뉴 라이프텍스 태스크포스(TF) 팀으로 시작해 현재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했다.
페트병 의류 ‘플러스틱(PLUStIC)’은 블랙야크를 대표하는 정체성이자 경영 철학이 됐다. 올해 블랙야크는 아이유와 손석구를 모델로 내세워 ‘그린야크’ 캠페인을 시작했다. 스타벅스, 코카콜라 등 글로벌 브랜드들의 협업도 이어지고 있다. 다음은 김 상무와 일문일답.
페트병으로 옷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아웃도어 브랜드로서 환경 문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화두였다. 그러다 2015년 미국 포틀랜드 친환경 브랜드(nau)를 인수하면서 사업이 구체화됐다. 나우는 나이키와 파타고니아 등에서 근무하던 이들이 나와 출범한 브랜드로 100% 유기농 면과 재생 폴리에스터로 옷을 만든다. 인수 과정에서 그들의 제품 생산 방식과 연구·개발(R&D) 방식 등에서 영향을 받아 친환경 활동을 고도화하게 됐다.”
국내 최초로 국내산 폐페트병을 재생해 옷을 만들었다.
“폐페트병에서 원사를 추출해 옷을 만드는 곳은 기존에도 있었다. 다만, 원료를 해외에서 수입해 왔다. 일본이나 중국, 대만 쓰레기를 수입해다 거기서 실을 뽑고 제품화 했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들도 그냥 폐기되는데, 재생 원료를 수입해 옷을 만드는 건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에 2019년 나를 포함한 팀원 2명이 TF를 발족해 국내산 페트병을 원사화시키는 체계를 만들었고, 2020년 7월 처음 티셔츠 제품을 출시했다. 현재까지 국내 페트병 3900만 병을 재활용해 제품화 했다.”
그 과정이 힘들진 않았나?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다. 페트병을 수거하는 과정부터 옷을 생산하기 까지 많은 지자체와 파트너들과의 협력이 필요했다. 일부 환경단체는 폐페트병으로 만든 옷을 세탁하면 미세 플라스틱이 발생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 일을 ‘위아낫퍼펙트(WE ARE NOT PERFECT)’ 프로젝트라고 부른다. 완벽하진 않지만, 이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신(新) 재료로 옷을 대량 생산해 만들고 재고로 남기는 비즈니스 방식이 계속될 것이다. 현재 전체 상품의 40%를 재생 소재로 만들었는데, 내년엔 절반 수준으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일반 옷에 비해 고가이진 않나.
“재활용 원사 가격이 일반 원사에 비해 1.7배가량 비싸다. 그렇다고 비싸게 팔 순 없다. 겉보기엔 똑같은 옷인데 ‘친환경 패션이니 20% 비싸게 사주세요’라고 고객에게 손 내밀 순 없다.
제품 가격을 높이기보다 수요를 늘려 가격을 맞추는 방법을 찾고 있다. 예를 들어 유니폼이 필요한 지자체에 좋은 제품과 가격으로 구매를 유도해 수요를 늘려 가격 구조를 안정화 시키는 식이다. 현재까지 경찰청, 국방부, 환경단체 등 40여 곳과 협약해 수요를 확보했다.”
페트병을 제대로 수거하기 위해 기계도 제작했다고 들었다.
“우리의 가장 큰 장애물은 깨끗한 무색 페트병을 모으는 것이다. 가정이나 기업에서 페트병을 깨끗이 모아도 수거 과정을 거치면 다 섞여버린다. 처음엔 이 과정이 제대로 되지 않아 수율이 20% 정도밖에 안됐다. 유색이나 다른 재질의 플라스틱이 섞이면 좋은 섬유를 만들 수 없다. 예컨대 카페에서 쓰는 아이스컵의 경우 유분이 있어서 원사화하면 끊어진다.
배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년6개월에 거쳐 파쇄기를 개발했다. 다 쓴 페트병을 넣으면 바로 갈려서 20분의 1 크기의 플레이크로 축소된다. 이를 수거해 칩을 만들어 원사를 뽑고 옷을 만든다. 대당 1000만원이 넘는 개발비가 들었는데, 해외에서 만든 기계와 비교해 가격이 3분의 1수준이다. 향후 원하는 지자체나 기업들이 수거에 동참할 수 있도록 파쇄기를 빌려 주고 유지·보수 해주는 사업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아웃도어 업계는 2010년대 후반 고점을 지나 하향세에 접어들었다. 고성장을 경험한 회사 입장에선 수익 창출 방안에 더 주력할 거 같은데, 친환경을 앞세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블랙야크가 내년에 창립 50주년을 맞는데, 미래 50주년을 먹여 살릴 동력으로 ‘친환경·윤리적 패션을 우리가 선도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래서 올해 아이유와 함께 ‘그린야크’ 캠페인도 선보였다.
많은 기업들이 친환경·윤리적 제품에 대한 관심이 있지만, 대기업이나 상장기업에선 매출이나 수익에 영향을 주지 않는 친환경 사업은 영속성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블랙야크는 창업주인 강태선 회장부터 산악활동을 하며 환경에 관심이 많아 꾸준한 지원이 가능했다.
회사의 경영 철학이 ‘다르게 싸워라’다. 개선과 혁신해야 한다는 기업 문화가 바탕됐기에 적극적인 지원이 가능했다고 본다.”
친환경 비즈니스의 성공 조건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세계화(globalization), 디지털화(Digitalization) 등 3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본다. 가령, 인공지능(AI) 기술로 상품 기획을 잘해 판매 적중도를 높이는 것도 친환경 경영의 일환이다. 안 팔리면 쓰레기나 마찬가지니까.
다만, 환경 보호 의무가 소비자들에게 강요되어선 안된다. ‘매력적이어서 구매했는데, 알고 보니 친환경이었다’는 식으로 소비자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진정성 있게 꾸준히 지속해야 한다.”
최근 아웃도어 업계의 트렌드는 무엇인가.
“독일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스포츠아웃도어 박람회인 ‘이스포(ISPO)’에 가면 최근 트렌드와 혁신 기술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최근에는 환경 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기술을 지닌 제품에 상을 많이 주는 추세다. 과거의 아웃도어가 인간을 보호했다면, 현재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게 글로벌 트렌드가 되고 있다.”
향후 목표는?
“’그린야크’가 없어지는 것. 2019년 이탈리아 명품 프라다가 재생 나일론 소재를 개발해 ‘리나일론(Re-Nylon)’이라는 라벨을 붙였는데, 지금은 라벨을 붙이지 않는다. 전 상품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그린야크’는 없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브랜드다. 이를 위해 제품은 물론 옷걸이, 블라인드 등 매장 집기까지 재활용 소재로 개발하고 있다. 친환경 상품만을 모은 판매 플랫폼도 구상 중이다.
폐원단을 활용해 옷을 만드는 ‘비욘트 페트(Beyond pet)’ 프로젝트도 곧 시작할 예정이다. 폐페트병 옷을 만드는 것보다 고난이도가 예상되지만, 외면할 수 없다. 국내에서만 1년에 6만5000t(톤)의 원단이 버려진다. 예전엔 재고를 제3국에 구호물자로 보냈지만, 이젠 옷이 남아 돌아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당장 이를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