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곳에서 일하지만 비가 오면 희비가 갈립니다. 태양광 발전을 담당하는 부서는 울고 빗물저장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환호하는 식이죠.” (전덕희 아모레퍼시픽 안전환경지원팀 과장)
27일 찾은 경기도 오산 아모레 뷰티파크. 설화수, 헤라, 라네즈 등 아모레퍼시픽(090430)의 주요 제품을 만드는 통합생산기지인 이곳 안전환경지원팀 사무실에는 특별한 달력이 걸려 있다. 바로 일기예보 현황판이다. 비가 올 확률이 높은 날에는 구름 이미지가 표시돼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강수 여부는 화장품 소비 심리를 좌우하는 경제 여건 변화 만큼 중요하다. 옥상과 주차장 등에 설치한 태양광 설비를 통해 생산 공정에 필요한 전력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작년 말 기준 전체 전력 사용량의 8.4%, 올해 말 14.2%를 자체 설비로 얻을 수 있다.
요즘처럼 대낮에 해가 쨍쨍하면 태양광을 통한 에너지 수급이 원활하다. 경기도 오산의 평균 태양광 발전 시간은 하루 3.5시간인데, 26일에는 5시간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날 평균 낮 기온이 31~35도로 구름 한점 없이 해가 쨍쨍했던 덕분이다.
그런데 이런 날씨가 되면 부쩍 초조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안전환경지원팀 소속이지만 빗물저장소를 관리하는 이들이다.
뷰티파크는 연간 6000~1만톤 정도의 빗물을 저장해 조경, 작업복 세탁 등에 사용하고 있다. 전체 공정에 필요한 용수 사용량의 30% 정도다.
이창진 아모레퍼시픽 안전환경지원팀 부장은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맞지 않으면 상당히 피곤하다”며 “비가 오지 않아 공정에 쓸 빗물저장분이 없는 경우 폐수를 고도 처리해 사용한다”고 말했다.
고도 처리된 폐수는 육안으로 볼 때 수돗물과 같았고 냄새도 나지 않았다.
뷰티파크는 지난 2012년 아모레퍼시픽이 수원, 김천 생산시설과 5개 물류센터를 한 곳에 통합해 만든 생산기지다.
대지면적만 축구장 30여개에 해당하는 22만4400㎡(6만8000평)에 달한다. 연간 제품 1억6000만개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이곳에 스킨케어센터, 메이크업센터, 토탈프로덕트센터, 지원센터, 물류센터 등 제품을 만들고 배송하는 시설은 물론 아모레퍼시픽 역사를 소개하는 아카이브, 체험형 공간 아모레팩토리, 원료식물원이 위치해 있다.
올해는 뷰티파크 개관 10주년이면서 화장품 업계 최초로 RE100을 달성한 의미있는 해다. RE100은 기업이 필요한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자체 태양광 설비와 전력 사용량 감축과 더불어 제3자 전력구매계약(PPA·전기공급사업자와 전기구매가 필요한 기업이 직접 전력을 거래하는 계약) 등을 통해 모든 제품을 재생에너지로 생산할 수 있게 됐다.
뷰티파크는 애초 자연과 공존하는 공간을 테마로 만들어 졌다. RE100 달성으로 친환경 경영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이곳은 산업단지 내에 위치해 있지만 여느 공장과 달리 연구소나 식물원를 연상케 했다. 들어가자마자 잘 조경된 나무와 잔디가 펼쳐지고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페퍼민트, 장미, 수국 등이 피어있는 원료식물원이 있다.
설화수의 원료인 인삼, 감초, 작약을 비롯해 1480여종의 식물을 조경사가 직접 관리한다.
뷰티파크 내부로 들어가니 공간 자체는 온통 하얀색이었으나 조명이 다소 어둡다는 느낌이 들었다. 곳곳에 자연채광을 받을 수 있도록 건물을 설계해 낮에는 불필요한 조명은 꺼둔다고 한다.
뷰티파크가 준공될 때는 대부분 형광등이었으나 이제는 100% 발광다이오드(LED)로 교체해 전력 사용량을 줄이고 있다.
곳곳에서 예술작품을 볼 수 있는 것도 뷰티파크 만의 특징이다. 대표 작품은 로비에 전시된 백남준 씨의 거북선이다.
미술품에 애착이 큰 서경배 회장이 ‘아시아의 미를 널리 알리고 최고의 제품으로 전세계 고객들과 소통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설치했다.
태양광 설비가 설치된 옥상에 올라가니 밑에 자갈이 빼곡하게 깔려있는 게 눈에 띄었다. 빗물을 효과적으로 모으려는 목적이다.
이창진 부장은 “자갈은 물을 여과(濾過)하고 비가 많이 왔을 때 보관 후 탱크로 유입시키면서 열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스킨케어센터엔 설화수의 인기 제품인 윤조에센스 생산이 한창이었다. 자동화가 많이 이뤄져 생산라인 1대당 작업자가 2명 정도에 불과했으나 여전히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현장 한 관계자는 “화장품을 만드는 것은 라면을 끓이는 것과 비슷해서 정확하게 만드는 법을 지켜야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오는 만큼 기계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소비자의 요구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어 제품을 용기에 담을 때 뚜껑과 몸통에 새겨진 로고가 같은 방향을 향하도록 해달라는 등 마케터 요구도 세분화돼 사람 손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은 뷰티파크를 지역 명소로 만들기 위해 체험공간인 아모레 팩토리와 아카이브를 운영중이다.
5월에 문 연 아모레 팩토리에선 30일 이내에 생산된 이른바 신선 화장품을 써볼 수 있고 아모레퍼시픽의 역사와 생산 공정을 볼 수 있다. 아카이브는 그동안 생산한 제품과 기계 설비, 광고·홍보 사료, 직원들의 유니폼 등 8만여 건의 사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