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사업 다각화’의 시대입니다. 기업들마다 미래 먹거리를 겨냥해 주 사업 외 다른 분야로 활로를 모색하는 것이 대세가 된 요즘, 유통업계가 너도나도 뛰어드는 분야가 있습니다. 화장품 사업입니다.
화장품이 뷰티 기업의 전유물에서 벗어난 건 이미 오래 전입니다. 정수기 제조업체부터 대형마트, 의류 회사, 제약바이오 기업, 유명 연예인과 뷰티 인플루언서까지 최근 몇 년 간 화장품 브랜드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소비 연령층이 유아동에서 고령층까지 확대되고 기능성, 비건(Vegan), 남성 전용 등 수요도 다양해졌기 때문입니다. 시장성은 높으면서 제조자개발생산(ODM)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등을 통한 산업 생태계도 발달해 진입 장벽이 낮아진 것이지요.
반면 살아남기는 더 어려워졌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국내외 트렌드를 좇으며 수익도 내야 합니다. 화장품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면 대기업 브랜드라도 결코 녹록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여럿 있습니다.
유통공룡 신세계그룹이 운영하는 이마트(139480)는 작년 말 색조화장품 스톤브릭(Stone Brick) 사업을 완전히 중단했습니다. 2019년 첫 선을 보인 당시 ‘정용진 화장품’으로 불릴 만큼 야심차게 내놓은 브랜드였지요.
알록달록한 디자인에 ‘퍼스널 컬러’를 무료로 진단해주는 홍대 스톤브릭 매장은 젊은층에서도 한동안 화제가 됐습니다. 그러나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에 따라 2년 만에 손을 뗐습니다.
이보다 앞서 자연주의 콘셉트로 내놓은 이마트 자체 브랜드(PB) ‘센텐스’ 매장도 전부 문을 닫았습니다. 현재 이마트몰에서 판매 중인 센텐스 제품은 ‘듀얼 코튼 패드’라는 이름의 화장솜 뿐입니다.
유통 강자 롯데도 일찍이 고배를 마셨습니다. 롯데백화점은 2018년 PB화장품 엘앤코스(el&cos) 사업을 접었습니다. 자사 화장품 편집숍 라 코스메띠끄와 연계해 대대적으로 키우겠다고 밝힌 지 2년 만입니다.
시장에서는 화장품 사업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데 무리하게 브랜드를 출시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당시 롯데백화점 측도 기대와 달리 시장 반응이 좋지 않았다며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백기를 들었습니다.
패션 기업인 코오롱FnC 역시 자체 화장품 브랜드 라이크와이즈(Likewise) 운영을 올해 1월 중단했습니다. 2020년 9월 PB화장품을 론칭해 뷰티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뚜렷한 성과가 나지 않았던 것이지요.
코로나19 장기화와 시장 경쟁 가열 속에 ‘선택과 집중’이라는 결론을 내린 겁니다. 결국 1년 만인 지난해 홈페이지에 운영 중단 공고를 냈습니다. “화장품 사업을 너무 쉽게 봤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상황이 이런 만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뷰티 사업 진출 소식은 한층 주목을 받습니다.
이 사장이 이끄는 호텔신라(008770)가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로레알, 사모펀드 앵커에쿼티파트너스(앵커PE)와 화장품 합작법인 ‘로시안(Loshian)’ 설립 계약을 맺은 겁니다.
3사는 지난 21일 로레알의 화장품 분야 전문성, 호텔신라의 강력한 판매 채널, 앵커PE의 자본력과 경영 노하우를 결합해 ‘비싸고 고급스러운’ 화장품을 내놓겠다고 했습니다.
각 사가 비슷한 수준의 지분을 보유한다는 것 외에 브랜드 이름과 주력 상품 등은 미정입니다. 이부진 사장이 합작법인 방식으로 화장품 사업에 진출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화장품 업계에서는 구체적 상품을 내놓기 전까지는 파괴력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옵니다. 단순히 브랜드 출시만으로 영향력을 얻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국내 시장은 백화점 중심의 수입 명품 화장품, 헬스앤뷰티(H&B) 스토어 중심의 가성비 상품으로 양분돼 있고 사업자도 워낙 많기 때문이지요. 아예 해외 시장을 집중 공략할 거란 전망도 적지 않습니다.
‘이부진의 로시안’이 잔혹한 화장품 시장에서 날개를 달 지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