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복지단은 군 마트(PX) 입찰에 나서는 업체들에 출품 제품들의 시장 가격을 오프라인 매장의 영수증으로 증빙하도록 요구한다. 업체들은 해당 제품의 심사 출품 이전 4개월 전의 시중 거래 실적과 상호가 다른 2개 이상 업체(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업체명으로 구분)의 금전출납기(POS) 영수증을 4개(지점별 구분) 제출해야 한다.
이 때 제출된 POS 영수증은 서류심사 평가에 반영된다. POS 영수증 평가는 업체 규모별로 배점이 다르다.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하나로클럽 등 대규모 점포는 영수증 하나당 2.5점, 롯데슈퍼와 GS슈퍼마켓 등 준대규모 점포는 2.0점, 백화점과 아웃렛 등 종합할인점와 올리브영·랄라블라와 같은 전문점은 1.5점, 기타 소형 매장은 1.0점을 부여한다. 유통 대기업과 대형마트는 소형 점포에 비해 비교적 가격이 안정돼 있고 제품 선별 작업이 까다롭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납품사는 대형마트 4곳의 영수증을 제출해야 10점 만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대형마트에 제품을 입점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해외 명품 화장품보다 비싼 중소기업의 화장품이 대형마트에서 20만~50만원에 팔릴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판매율이 저조한 상품에 매장 공간을 내줄 대형마트도 없다. 바로 이 때, 화장품 업체에 대형마트 영수증을 만들어주겠다는 브로커 업체가 등장한다.
◇ 낙찰 업체들이 낸 수상한 영수증… 발급처 보니
지난해 군 마트 입찰 심사를 통과한 화장품 업체들이 증빙자료로 제출한 영수증에선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고가의 상품을 출품한 업체들이 하나같이 H 대형할인점 성남점과 고양점이 아니면 영남 지역 대형마트 매장에서 발행한 영수증을 제출한 것이다.
닥터지는 시가 35만원짜리 블랙스네일 프레스티지 세트의 영수증으로 M마트 (부산)남천점과 (부산)동래점, H마트 포항점과 창원점의 영수증을 냈다. 본에스티스는 56만5000원짜리 다이아몬드 리페어 퍼펙트 세트의 영수증을 H마트 (대구)동촌점과 (대구)칠곡점, 또 다른 H마트(이하 H2마트) 고양점과 성남점의 영수증을 냈다. 시가 30만5000원짜리 마유크림 세트를 낸 참존은 H마트 (대구)내당점과 창원점, H2마트 고양점과 성남점의 영수증을 제출했다. 벨라코스메틱은 19만원짜리 넥크림의 영수증을 H마트 칠곡점과 구미점, H2마트 고양점과 성남점의 영수증을 냈다.
판매 이력도 독특했다. 영수증을 발급해 준 마트 중 한 곳에 확인한 결과, 각 점포별로 한달에 한번씩만 판매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는 판매 실적이 전무했다. 해당 마트의 관계자조차 “정상적인 소비자 구매 패턴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러한 구매 패턴은 군 납품 입찰에 필요한 판매 실적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해당 상품은 마트에서 직매입해서 판매하는 제품이 아닌 특정매입 방식으로 판매되는 상품”이라며 “화장품 벤더(납품)사가 직접 제품을 판매하고, 마트는 판매 수수료만 받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목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구매가 이뤄지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화장품 회사들이 제출한 H2마트의 영수증은 H2마트에서 발행한 게 아닌 임대매장 계약을 체결한 업체에서 발급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임대매장을 운영하는 주체는 바로 영남지역 대형마트에 화장품을 납품하는 그 벤더사였다.
◇ 영수증 발급 비용만 1억… 장병 복지 향상은 뒷전으로
복수의 군납업계 관계자들은 해당 벤더사에 대해 “군 마트 입찰을 희망하는 화장품 회사에 대형마트 영수증을 발급해주는 대가로 제품 판매 수수료를 받고 있다”고 말한다.
대형마트에서 20만원을 호가하는 화장품은 잘 팔리지 않는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10만원대 선물세트는 간간히 팔리긴 하지만 20만원대를 넘어서는 고가의 크림이 판매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화장품 제조사들이 군 입찰 상품의 월 판매 실적을 유지하기 위해 직접 상품을 구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낙찰을 받기 위한 일종의 투자 비용인 셈”이라고 했다.
서류 평가에 내는 영수증은 4개면 되지만, 복지단은 ‘POS 영수증을 20개 이상 제출 가능한 업체’를 입찰 기본 자격으로 요구한다. 이 때문에 화장품 제조사는 영수증을 제출한 대형마트 4곳에 추가 16곳에서 거래 실적을 유지해야 한다.
시가 50만원짜리 상품을 매달 20개 매장에서 구입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월 1000만원이다. 최소 4개월 이상 판매 실적을 유지해야 하고 입찰 공고 후 시장 조사까지 3개월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총 7개월 간 매월 1000만원씩 총 7000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입찰하려는 제품이 한 개 이상이라면 그 품목 수만큼, 시가가 더 비싸다면 그 가격만큼 비용은 늘어난다.
제품을 회수해 납품 원가는 챙긴다고 해도 대형마트에 내야하는 판매 수수료와 벤더업체 수수료는 온전히 화장품 제조사가 짊어져야 할 몫이다. 마트 수수료와 벤더사 수수료로 상품가격의 40% 정도 된다. 회사마다 입찰하려는 품목 수는 보통 4~5개 가량, 영수증 준비 비용으로만 1억원은 지출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군납업계 관계자는 “벤더업체에 아예 법인카드를 맡긴 화장품 회사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영수증 발급을 위해 1억원의 비용을 들였다고 해서 낙찰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화장품 업체가 짊어지는 비용 부담은 결국 수익 환수를 위한 부실 제품 납품과 장병 복지 저하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군납업계 관계자는 “비용을 들여서라도 입찰 심사에 나서는 것은 일단 심사만 통과하면 그 이상을 거둬들일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라며 “낙찰에 유리한 고가 제품을 출시하고, 고가 제품의 판매 실적을 유지하기 위해 화장품 제조사들이 출혈 경쟁을 벌이는 현재의 기형화된 군납 시장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군납업계 관계자는 “정작 장병들이 희망하는 제품은 높은 할인율을 수용할 수 없다며 PX 입점을 거부하는 실정”이라며 “장병 복지 향상이라는 본래의 취지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국군복지단에서 근무하다 전역한 간부가 운영하는 업체의 정보 독점도 군납 심사를 부실하게 만드는 문제점”이라며 “국방부가 PX 입찰 심사의 문제점을 전면적으로 진단하고 대대적인 개선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