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그룹 패션기업 한섬이 이달 말 첫 자체 화장품 브랜드를 선보인다.

1972년 쥐띠 동갑내기로 백화점, 면세점 사업에서 경쟁해 온 정지선 현대백화점(069960)그룹 회장과 정유경 신세계(004170)백화점 총괄사장이 이번엔 명품 화장품 사업으로 정면승부에 나설 전망이다.

(왼쪽부터)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과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 /각 사 제공

21일 화장품 업계에 따르면, 한섬은 오는 26일 첫 자체 화장품 브랜드 ‘오에라(OERA)’를 출시한다. 현대백화점 압구정점(본점)을 시작으로 무역센터점, 더현대서울 등에 매장을 열고, 추후 온라인과 면세점으로 판매 채널을 확장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섬이 화장품 브랜드를 선보이는 건 1987년 창사 이래 처음이다. 오에라는 고기능성에 초첨을 맞춘 스킨케어 브랜드로, 제품 가격은 20만~50만 원대로 책정될 전망이다. 스킨케어 제품을 안착시킨 후 색조, 향수 등으로 상품군을 넓힐 예정이다. 한섬은 ‘타임’, ‘마인’ 등 프리미엄 패션 브랜드를 운영해온 경험을 명품 화장품 사업에 접목한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오에라가 신세계인터내셔날(031430)이 올 3월 선보인 ‘뽀아레(POIRET)’의 맞수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섬 관계자는 “후발주자인 만큼 양사의 강점을 잘 활용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뽀아레는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정유경 총괄사장이 공들인 야심작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 ‘폴 뽀아레’를 인수해 10년 만에 선보인 자체 화장품 브랜드로, 최상위 럭셔리 브랜드를 표방한다. 제품 가격대는 세럼 22만~68만 원, 크림 25만~72만 원, 립스틱 8만 원 등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에 따르면, 뽀아레의 1호 매장인 신세계 본점의 현재 매출은 출시 당시 목표 대비 160%를 달성했다. 특히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2030 고객이 차지하고 있다.

최근 명품 소비 증가 속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4년생)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뽀아레는 이달 두 번째 매장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열었으며, 연말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점에 추가 매장을 열 계획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정 총괄사장의 주도 아래 일찌감치 화장품 사업에 진출, 해외 브랜드 판권 확보와 자체 브랜드 출시를 이어왔다.

2012년 색조 화장품 비디비치 인수를 시작으로 바이레도, 산타마리아노벨라, 딥디크, 아워글래스, 스위스퍼펙션 등 해외 브랜드의 국내 판권을 사들였다. 이어 2016년 자체 화장품 편집숍 브랜드 ‘시코르’를 선보였고, 이후 ‘연작’, ‘로이비’, ‘뽀아레’ 등 자체 브랜드를 출시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뽀아레 매장에서 직원이 고객에서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제공

현재 화장품 사업은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실적 성장세를 이끄는 주요 동력이 됐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영업이익은 2017년 254억 원에서 2020년 337억 원으로 늘었는데, 지난해 기준 코스메틱(화장품) 부문(약 313억 원) 비중이 93%에 달했다. 화장품 사업의 매출 비중이 25%인 점을 감안하면 수익성이 높은 알짜 사업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에 한섬의 화장품 사업 진출이 어떤 성과를 낼 지 주목된다. 정지선 회장은 올초 ‘2030 비전’ 발표를 통해 ‘뷰티’를 비롯한 헬스케어·바이오·친환경·고령친화 등의 분야를 미래 육성 사업으로 발표했다.

이를 통해 총매출 40조 원의 종합생활문화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다. 유정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향후 화장품 사업의 성과 여부에 따라 밸류에이션(평가 가치) 확장 여부가 좌우될 것”이라고 말했다.

패션 외길을 걸어온 한섬의 실적은 답보 상태에 빠졌다. 한섬 매출은 2017~2019년 1조2000억 원대에 머물렀고, 코로나19 사태 속 지난해에는 1조1000억 원대로 줄었다. 영업이익은 2019년 1065억 원에서 지난해에는 1020억 원으로 감소했다.

정소연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섬의 화장품 시장 진출이 기대되는 것은 프리미엄 패션 브랜드를 보유한 한섬이 처음으로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는 점, 앞선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성공사례를 비춰봤을 때 성장성과 수익성을 확보할 기회라는 점 때문”이라며 “백화점을 보유한 그룹 차원에서 사업시너지도 클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