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마케팅의 귀재’로 불리는 김창수 F&F 회장이 세계 3대 골프용품업체 테일러메이드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최근 급성장세인 골프 관련 사업을 동력 삼아 중국을 비롯한 세계 시장에서 브랜드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김창수 F&F 회장. /F&F 제공

20일 F&F는 테일러메이드 인수를 위한 센트로이드 프라이빗에쿼티(PE) 펀드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취득 금액은 4000억원으로, F&F는 중순위 메자닌(주식과 채권의 중간 성격)에 1000억원을, 후순위 지분투자에 3000억을 출자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49.51%의 지분을 취득하게 된다.

F&F는 지난해 패션업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실적이 주춤했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8% 감소한 8376억원, 영업이익은 19% 줄어든 1226억원을 기록했다. 전체 매출의 98% 가량을 차지하는 국내 사업이 부진하면서다.

이런 상황에서 김 회장이 테일러메이드 인수에 나선 것은 새 성장 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포석으로 분석된다. F&F는 지난달 투자사업을 담당하는 F&F홀딩스와 패션 부문을 담당하는 F&F로 분할을 마쳤다. F&F부문을 맡은 김 회장은 최근 디스커버리, MLB를 이을 신규 브랜드를 물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봉규 삼성출판사 창업주의 차남인 김 회장은 1986년부터 삼성출판사의 계열사인 아트박스에서 이사와 대표이사를 지냈다. 이후 1992년 F&F를 설립하며 패션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그는 베네통, 레노마스포츠, 시슬리, 엘르 등 굴지의 해외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와 성공시켰다.

그러나 1998년 IMF 사태가 터지며 부도 위기를 맞았고, 결국 형인 김진용 대표가 운영하는 삼성출판사와 회사를 합병했다. 당시 사명도 NSF로 바꿨다. 김 대표는 NSF에서 패션사업부문을 담당, 교육·출판부문을 담당한 형과 공동대표체제로 회사를 이끌었다. 이후 2002년 NSF가 패션부문 F&F와 삼성출판사로 분할하면서 F&F 이름을 되찾았다.

김 대표는 패션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 패션이 아닌 분야의 상표권을 따와 패션 브랜드로 성공시켰다. 현재 F&F의 주력 브랜드인 MLB, MLB키즈,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디스커버리) 등은 모두 상표권(라이선스) 브랜드다.

(왼쪽부터) F&F의 아웃도어 브랜드 MLB, 디스커버리의 모델 화보. /F&F 공식 홈페이지 캡처

그는 1997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와 상표권 계약을 맺고 패션 브랜드 MLB를 선보였고, 2012년에는 미국 다큐멘터리 채널인 디스커버리의 의류 상표권을 획득해 아웃도어 브랜드 디스커버리를 내놨다. MLB와 디스커버리는 F&F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디스커버리는 2017년 ‘롱패딩 특수’를 맞으며 급성장했다. 그해 연 매출은 연초 목표치인 3000억원을 일찌감치 돌파해 3300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롱패딩 제품의 인기가 꺾이며 수익성이 나빠졌다. 2018년 연결 기준 F&F 영업이익은 915억원으로 전년 대비 7% 가량 줄었다.

2019년에는 아동 성(性) 상품화 논란에 휘말리며 위기를 겪었다. 당시 공개한 MLB키즈 수영복 화보에서 화장을 한 여아 모델들이 몸매를 부각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거나 망사 스타킹을 착용하고 있어 논란이 불거졌다. 결국 F&F는 공식 사과와 함께 해당 사진을 삭제 조치했다.

김 회장은 MLB를 중국 시장에 진출시키며 반전을 꾀했다. F&F는 2019년 MLB 중국 판권을 취득, 상하이에 현지법인을 세우고 중국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초기에는 알리바바의 자회사 티몰에 입점하는 형태로 진출했으며, 지난해 말부터 대리점 중심의 오프라인 매장을 늘리고 있다.

지금까지 성과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F&F의 중국 매출은 2019년 119억원에서 지난해 745억원으로 6배 이상 급증했다. 올 1분기 매출도 495억원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690% 늘었다. F&F 중국법인은 올해 말까지 매장 수를 27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2019년 2월 7일 테일러메이드 드라이버 광고 촬영 행사장에서 만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왼쪽)와 프로 골퍼 박성현. /박성현 인스타그램

테일러메이드는 아쿠쉬네트, 캘러웨이골프와 함께 세계 3대 골프용품업체로 꼽힌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를 비롯해 현 세계 랭킹 상위권 더스틴 존슨, 콜린 모리카와, 로리 매킬로이, 리키 파울러, 박성현 등 세계적인 골프 선수들이 사용하는 클럽 등 골프 용품 생산하는 업체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테일러메이드 매출액은 9억달러(약 1조원) 영업이익은 1100억원으로 파악된다.

코로나19 사태 속 골프 산업은 급성장했다. 특히 패션에 민감한 MZ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와 여성 골퍼의 증가로 골프복 시장도 호조를 맞았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골프복 시장 규모는 5조1250억원으로 전년(4조6315억원)보다 11% 성장했고, 올해 5조6850억원, 내년에는 6조335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LF, 코오롱FnC 등 국내 주요 패션업체들은 잇달아 골프 브랜드 강화에 나섰다.

F&F는 현재 골프 브랜드가 없다. 업계는 F&F가 테일러메이드 인수를 계기로 골프 브랜드 사업에 진출, 국내를 비롯해 중국에서의 사업 노하우를 살려 글로벌 시장에서 역량을 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센트로이드PE 측도 기대감을 드러냈다. 센트로이드PE 관계자는 “F&F는 골프웨어로의 확장이 용이한 아웃도어 브랜드 및 스포츠 브랜드를 국내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수행해 왔다”며 “이런 점을 고려하면 단기간 내 국내 및 글로벌 의류 시장에서 보다 확실한 시장 지위 확보가 가능할 것이며, 특히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서의 성공적인 진출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