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주요 상권 중 하나인 홍대 거리의 얼굴이 바뀌고 있다. 대로를 차지해온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하나둘 홍대를 떠나고 있지만, 골목길마다 1020세대가 선호하는 신흥 패션 브랜드 매장들이 자리를 잡으면서다.
1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포스트 코로나(코로나 이후) 시대에 특화된 ‘체험형 매장’이 서울 홍대 상권의 새로운 핫플레이스(인기 장소)로 부상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성장한 신흥 패션 브랜드들이 이 같은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홍대에 플래그십스토어(브랜드 이미지를 극대화한 오프라인 매장)를 연 신진 패션 브랜드들이 힘을 준 부분은 매장 안의 즐길거리다. 브랜드 이미지를 활용해 꾸민 카페를 매장 안에 조성하는가 하면, 탈의실 안에서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도록 인테리어에도 공을 들였다. 브랜드 이미지를 인테리어에 녹여 입소문이 나는 홍보 효과를 기대한 전략이다.
캐주얼 브랜드인 ‘커버낫’과 라이센스 브랜드 ‘마크 곤잘레스’, ‘LEE’ 등을 운영하는 패션기업 배럴즈는 최근 서울 홍대에 ‘커버낫’ 플래그십스토어를 열었다. 매장에 설치한 대형 모니터로 해당 시즌의 제품 이미지가 재생되고, 마크 곤잘레스가 제작한 설치 미술품과 매장에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포토존 등이 마련돼 있다.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인 ‘널디’의 서울 플래그십스토어도 홍대에 자리를 잡았다. 이 브랜드는 서울 외에도 대구와 부산, 광주 등 지방 주요 광역시에도 단독 매장을 열었다.
홍대점은 1990년대 미국 가정집 같은 콘셉트로 매장을 꾸몄다. 1020세대가 선호하는 복고풍 감성을 인테리어로 구현한 것이다. 널디의 올해 1분기 매출은 18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4억원)의 두 배가 됐다.
해외 유명 브랜드와 협업해 1020세대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패션 브랜드 ‘아더에러’의 첫 플래그십스토어가 들어선 곳도 홍대다.
두 번째 플래그십스토어인 성수동 ‘아더 스페이스 2.0’과 가장 최근에 연 3호점인 신사동 ‘아더 스페이스 3.0’에 이르기까지, 옷 매장이 아닌 예술 전시장처럼 꾸몄다. 매장 안에 카페 공간을 마련하고 미술품 등을 곳곳에 배치했다. 최근에는 매장 각 공간별로 고유한 향을 부여하기 위해 조향업체와 손잡고 자체 향수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패션플랫폼 무신사도 자체브랜드(PB)인 ‘무신사 스탠다드’ 매장을 홍대에 열어 패션업계의 관심을 모았다. 무신사는 옷을 입어보는 피팅룸(탈의실)을 체험형으로 꾸몄다. 피팅룸 안에 휴대전화 거치대와 조명을 설치해, 매장을 찾은 이용자가 여러 옷을 입고 촬영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상업용 부동산 빅데이터 전문회사 알스퀘어의 진원창 빅데이터분석실장은 “코로나 시대에는 큰 도로라고 해서 유동인구가 많은 것도 아니고, 온라인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인 신진 브랜드의 매장은 충성 고객과 관심 있는 소비자가 찾아서 방문하기 때문에 임대료가 높은 대로변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신진 브랜드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 수익을 얻으려 하기보다는 이를 소비자들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방문객의 피드백을 다시 온라인 매장에 반영하는 식으로 밸류체인(가치사슬)을 만든다”면서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소통에 익숙한 1020세대에 특화된 커뮤니케이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만큼 1020세대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기성 매장은 홍대 상권에서 밀려나고 있다. 대기업 브랜드나 프랜차이즈도 예외가 아니다.
홍대입구역사거리 맥도날드 홍익대점은 올 초 임대차 계약을 종료했다. 이 건물은 재건축을 위해 철거됐다. 홍익대학교 근처 스타벅스 ‘홍대 갤러리점’ 매장도 올해 폐점 수순을 밟았고, 지난 3월에는 유니클로 홍대점이 문을 닫았다. 지난해에도 다이소와 주말마다 지역의 ‘만남의 광장’ 역할을 했던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 버거킹, 엔제리너스커피 등이 홍대 매장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