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보복 소비 열풍이 거센 가운데 패션 브랜드별 명암이 갈리고 있다.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아 떨어진 소위 ‘신(新)명품’ 브랜드가 의류 기업의 실적을 좌우하고 있어서다.

디자인은 단순하지만 가격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대인 이들 브랜드는 고교생 사이에서도 ‘연예인 패션'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래픽=정다운

2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패션 기업들의 올해 1분기 실적은 MZ세대(1980년대 출생한 밀레니얼세대와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Z세대)가 좌우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적인 명품 브랜드는 아니지만, 가격대가 높으면서도 MZ세대가 선호하는 디자인과 콘셉트를 갖춘 브랜드의 매출이 두 자릿수로 뛰었다.

프랑스 의류 브랜드인 메종 키츠네나 아미, 메종 마르지엘라, 영국 디자이너 브랜드인 폴 스미스와 미국 디자이너 브랜드 톰 브라운 등이 대표적이다. 독특한 로고와 고유한 디자인을 활용해, 셔츠나 카디건 같은 기본적인 제품이더라도 브랜드를 알아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부분 1990~2000년대에 설립된 신생 패션 브랜드들이지만, 가격대는 전통 명품 패션 브랜드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다. 반팔 티셔츠 한 장 가격이 10만~50만원 선이다.

지난해 1분기 영업적자를 냈던 삼성물산(028260) 패션부문은 올해 흑자로 전환했다. 매출은 약 451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가까이 증가했다. 신진 패션 브랜드들의 매출이 올 들어 배로 급증한 결과다. 아미, 톰 브라운, 메종 키츠네, 르 메르 등 브랜드들이 선전했다.

이들 브랜드는 옷을 잘입는다는 평을 받는 연예인들이 착용해 한층 더 화제가 됐다. 소재에 따라 160만~280만원에 이르는 톰 브라운 카디건은 가수 지드래곤과 아스트로 소속인 차은우 등이 입으면서 유명세를 치렀다.

특히 강남권 고교생들의 선호 브랜드로 인기가 높아지면서 신(新) 등골브레이커(부모의 등골을 휘게 할 만큼 비싼 물건)로 불리고 있다. 예전에는 20만~30만원대의 고가 롱패딩이 고교생 사이서 인기를 끌며 등골브레이커란 별명이 붙었지만 최근에는 이보다 3~5배 비싼 고가 브랜드 선호현상이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여신강림'에 출연한 아이돌 겸 배우 차은우가 톰 브라운 제품을 착용한 모습. /여신강림 공식홈페이지

하트 모양에 알파벳 A가 붙은 브랜드 로고로 유명한 아미는 올 들어 매출이 300% 증가했다. 이 브랜드의 반팔 티셔츠는 10만원 중반에서 20만원대, 긴팔 맨투맨 티셔츠는 30만원 초반에서 50만원 중반대에 판매된다. 방탄소년단(BTS) 멤버 진 등이 즐겨 입으면서 십대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디자인이 프랑스 빵인 크루아상을 닮은 가방으로 잘 알려진 르 메르와 여우 로고로 인기를 얻은 메종 키츠네 역시 연초 이후 매출이 100%대로 증가했다. 10만원 중반대인 메종 키츠네의 반팔 티셔츠는 공식 온라인몰인 SSF샵에서 품절 사태를 일으킬 정도로 입소문을 탔다. 걸그룹 블랙핑크의 제니, 레드벨벳의 예리 등이 이 카디건 등을 착용했다.

남호성 삼성물산 패션부문 머천다이저(MD)는 “현재 MZ세대가 신명품으로 주목하며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팬덤이 생긴 아미, 메종 키츠네, 르메르 등은 편집숍(여러 브랜드를 한 데 모아 판매하는 매장)인 ’10 꼬르소 꼬모'와 ‘비이커’ 등을 통해 수 년 전에 국내 시장에 소개하고 성장시킨 브랜드”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미는 하트 로고가 그려진 티셔츠와 셔츠 등이 인기가 많은데 하트 로고의 색이나 크기가 다양해 (여러 디자인 로고 제품으로) 재구매하는 비율이 높다”고 말했다.

메종 키츠네의 '칠랙스 폭스 패치 클래식 티셔츠'. /SSF샵

신세계인터내셔날(031430)도 신명품 브랜드가 포진한 해외 패션 부문의 성장세가 가팔랐다. 올해 1분기 해외 패션 브랜드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약 36% 증가해, 국내 패션 브랜드의 매출 증가율(약 7%)을 크게 웃돌았다.

지난 23일 기준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수입·판매하는 메종 마르지엘라는 연초 이후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2% 늘었다. 폴 스미스와 아크네 스튜디오의 매출도 각각 39%, 33% 증가했다.

반면 ‘신명품’으로 불리는 브랜드가 없는 의류업체는 보복 소비의 수혜를 크게 받지 못했다. 닥스, 헤지스, 질스튜어트 등 캐주얼 브랜드를 보유한 LF(093050)의 패션부문 매출은 약 2809억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 감소했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보복 소비 열풍의 일환으로 명품 소비가 늘어난 가운데, 소비자들이 의류 분야에서도 외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상대적으로 고가이면서 브랜드 가치가 유지되는 제품을 찾는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