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제주도의 패션 유통 지형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수년 전 샤넬, 불가리 등 명품 브랜드들이 특급 호텔을 중심으로 팝업(임시) 매장을 열며 물꼬를 텄다면, 지난해부터는 유니클로 등 중저가 브랜드까지 대형 로드숍 형태로 제주에 잇따라 상륙하고 있습니다.
제주가 단순히 관광을 기념해 제품을 구입하는 곳에서 그치지 않고 국내외 패션 브랜드들이 반드시 선점해야 할 전략 거점으로 부상했습니다. 국내외 브랜드들이 제주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제주에 가장 먼저 발을 들인 대표적인 브랜드는 샤넬입니다. 샤넬은 2021년 제주신라호텔에서 팝업 부티크를 운영했습니다. 한 국가 내 오프라인 매장 수를 엄격히 제한해 브랜드 가치와 희소성을 관리하는 샤넬의 전략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사례입니다. 당시 팝업은 3월부터 6월까지 약 3개월간 운영됐는데요, 제주에서 오픈런 현상이 나타날 정도로 인기를 모았습니다.
이후 샤넬은 제주에서 팝업을 거의 매년 이어오고 있습니다. 운영 기간도 점차 길어지는 추세입니다. 지난해에는 5월부터 11월까지 약 6개월 동안 JW메리어트 제주에서 '시즈널 부티크'를 운영했습니다.
불가리는 제주에서 단순한 쇼핑 매장 형태를 넘어 호텔의 식음료(F&B) 공간과 결합한 방식으로 팝업을 선보였습니다. '선셋 인 제주(Sunset in Jeju)' 콘셉트로 2022년과 2023년에 각각 약 두 달간 운영했으며, 장소는 파르나스호텔 제주와 JW메리어트 제주였습니다. 특히 2023년 팝업은 브랜드의 상징적인 컬렉션인 '세르펜티(Serpenti)' 7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 꾸며졌고, 애프터눈 티 세트 등 체험 요소를 강화해 관광객들이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명품 브랜드들은 서울 도심의 백화점 매장과는 다른 방식으로 제주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휴양지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팝업을 운영하며 브랜드의 고급 이미지를 강조하는 동시에, 제주를 찾는 고소득층 내국인 관광객과 카지노 등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을 함께 공략하는 전략입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명품 브랜드에 이어 대중적인 패션 브랜드들도 제주에 잇따라 매장을 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니클로입니다. 유니클로는 지난해 4월 제주시 도남점과 서귀포점을 동시에 열며 제주 지역 매장을 3곳으로 확대했습니다.
매장 구성에서도 제주 지역 특성을 적극 반영했습니다. 제주 특유의 습한 날씨를 고려해 에어리즘과 리넨 셔츠 등 기능성 제품을 전면에 배치했고, 지역 브랜드인 '우무', '귤메달' 등과 협업한 굿즈를 선보이며 현지화 전략을 강조한 것이 특징입니다. 특히 서귀포점은 현무암 돌담과 통유리창을 활용해 매장 내부에서 한라산을 조망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단순한 의류 판매 공간을 넘어 지역 랜드마크 역할을 하며 도민과 관광객을 동시에 끌어들이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입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다른 글로벌 브랜드들의 제주 진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신발 브랜드 올버즈(Allbirds)와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 등이 제주에서 새 매장을 열었습니다. 국내 패션 브랜드들도 제주 상권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패션 플랫폼 하고하우스가 운영하는 브랜드들과 스트리트 브랜드 디스이즈네버댓,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등 캐이(K)패션 브랜드들도 제주에서 매장을 선보이며 관광객 유입 효과를 노리고 있습니다.
이로써 제주 상권에는 특급 호텔 중심의 초고가 럭셔리 소비와 로드숍 중심의 실용적 소비가 동시에 공존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명품 팝업과 브랜드 체험형 공간, 그리고 일상 소비를 겨냥한 패션 매장이 함께 자리 잡으며 상권의 성격 자체가 다양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제주 매장이 단순한 판매 공간을 넘어 '브랜드 경험 공간'으로 활용된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관광객 중심 상권에서는 매장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됩니다. 여행객들이 매장을 방문해 사진을 찍고 이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브랜드 노출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죠. 일부 브랜드가 매장 디자인이나 공간 연출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 같은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