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한국에서 정보 유출 사태로 내홍을 겪는 와중에, 모회사인 미국 쿠팡Inc가 제2의 시장으로 키워온 대만에서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취임 1년도 채 되지 않은 현지 법인 대표가 돌연 사임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본사 차원에서 해외 사업 전반을 재정비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쿠팡 대만 법인 사업을 총괄해 온 인도 국적의 샌딥 카르와(Sandeep Karwa) 대표가 최근 회사를 그만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인도의 아마존'으로 불리는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 플립카트 출신이다. 그는 올해 2월 대만 법인 대표로 선임됐지만, 1년도 되지 않아 자리에서 물러났다.

쿠팡 대만 로켓배송 이미지. /쿠팡 대만 법인 홈페이지 캡처

대만 현지 언론은 쿠팡 측이 이와 관련한 즉답을 피했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사임 배경, 후임 인사 계획 등은 밝혀지지 않았는데, 업계 안팎에선 그가 대만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됐다.

쿠팡 대만 법인 측은 "각 부문 책임자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전반적인 전략 방향과 의사 결정을 지원하고 있고, 사업 운영에는 차질이 없다"며 "대만 시장에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번 대만 법인 대표 사임은 한국에서 불거진 정보 유출 사태와 맞물리며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말 국내에서 본격화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대만에서도 쿠팡 내부 통제와 데이터 보안을 둘러싼 우려로 이어졌다. 쿠팡 측은 대만 내 정보 유출 피해는 없다고 강조했고, 현지 정부도 모니터링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대만은 쿠팡Inc가 한국 다음으로 공들이는 핵심 시장인 만큼, 인사 변화의 상징성이 작지 않다는 평가다. 쿠팡Inc가 한국 내 여론 악화와 규제 리스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대만을 포함한 해외 법인 전반에 대한 조직 점검과 관리 체계를 재정비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대만 현지에선 한국 법인 대표 교체, 국정감사 등 사태의 파장이 대만 사업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이번 사태가 브랜드 신뢰도에 충격을 주고,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현지 언론 일각에선 올해 6월(6·18 쇼핑 축제), 11월(광군제)과 비교할 때 연말 최대 쇼핑 성수기로 꼽히는 12월 12일(쌍 12절) 쿠팡 대만 법인의 단기 인력 채용 규모가 작고 거래량도 적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쿠팡Inc는 2022년 대만 진출 이후 사업 확장을 이어가고 있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현지에선 물류 시스템 안정화, 마켓플레이스(오픈 마켓) 수수료 정책 등에 대한 의구심이 꾸준히 제기된다. 소비자들 사이에선 '가품 공급 의혹'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올해 3분기 쿠팡Inc는 대만 사업에 힘입어 분기 기준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지만, 비용 부담으로 수익성은 부진했다. 대만을 포함한 성장 사업 부문의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손실은 4047억원을 기록했다. 거랍 아난드 쿠팡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대만 투자가 증가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대만 사업은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이 챙기고 있다. 해외 체류 중인 김 의장은 주로 미국, 대만을 오가면서 업무를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장은 올해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대만 시장은 초기 한국 사업 구축 당시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