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유동성 위기설로 홍역을 치른 롯데그룹이 9일 올해 첫 상반기 VCM(Value Creation Meeting·舊 사장단 회의)을 열었다. 이번 회의에는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롯데그룹 전 계열사 대표 등 약 80명이 참석했다.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 참석 차 미국 출장을 떠났던 신유열 부사장도 귀국 후 곧장 회의에 참석했다. 그룹의 분위기 탓인지 이날 참석한 대표들은 모두 굳은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면서 회의장에 입장했다.

9일 본격적인 VCM에 앞서 그룹 내 계열사의 AI 우수 혁신 사례를 소개하는 AI 쇼케이스에서 신동빈 롯데 회장이 롯데케미칼의 'AI 기반 컬러 예측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 시스템은 AI를 활용해 고객이 원하는 플라스틱 컬러 조합을 빠른 시간 내에 찾아 내는 것이다. /롯데 제공

롯데그룹 계열사 사장들은 이날 정오가 지나자 VCM 참석을 위해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정문과 후문을 통해 입장했다. 매년 1월과 7월 열리는 VCM은 상반기와 하반기에 롯데그룹의 경영 상황을 진단하고 중장기 전략을 모색하는 회의다.

롯데 측은 이날 신동빈 회장이 VCM에 앞서 ‘인공지능(AI) 과제 쇼케이스’에 참석하기로 한 만큼, 회의 참석자들에게 일찍 회의장에 올 것을 주문했다고 전했다. 해당 쇼케이스는 그룹 내 AI 혁신 사례를 소개하고 롯데이노베이트(286940), 대홍기획 등 9개 계열사가 참여해 AI 우수 활동 사례들을 소개하는 자리다.

롯데에 따르면 신 회장은 이날 각 계열사 대표들과 함께 롯데케미칼(011170)의 AI 기반 컬러 예측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AI 기반 컬러 예측 시스템은 AI를 활용해 고객이 원하는 플라스틱 색 조합을 빠른 시간 내에 찾아 내는 기술이다. 롯데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꼽히는 롯데케미칼은 AI 시스템을 도입해 개발 생산 속도를 높이고, 엔지니어 기술 역량도 향상하는 등 성과를 내고자 노력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9일 오후 12시 30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개최한 VCM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한 롯데그룹 계열사 대표들. 왼쪽부터 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 타마츠카 겐이치 일본롯데 대표, 김동하 롯데면세점 대표. /VCM 공동취재단·민영빈 기자 갈무리

롯데그룹 계열사 대표들은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취재진들의 질문에 침묵했다. 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는 ‘오늘(9일) 논의하는 내용을 알려달라’는 질문에 입을 굳게 닫은 채 답하지 않았다. 함께 입장한 남창희 롯데하이마트(071840) 대표와 강성현 롯데마트 대표도 ‘어떤 내용이 논의되는지 공유받은 게 있는지’ 묻는 기자들의 말에 굳은 표정으로 “나중에 말하겠다”고 짧게 답한 뒤 곧바로 회의장으로 향했다.

이 외에도 타마츠카 겐이치 일본롯데 대표, 박익진 롯데이커머스사업부(롯데온) 대표, 김동하 롯데면세점 대표, 이돈태 롯데지주(004990) 디자인전략센터장 등도 VCM 참석을 위해 빠른 발걸음을 옮길 뿐, 따로 회의 예정 내용이나 경영 방향성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5 개막 첫날인 지난 7일(현지 시각)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노스홀 롯데이노베이트 전시관을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부사장)이 방문했다. /연합뉴스

이날 가장 먼저 회의장을 찾은 사람은 지난해 11월 정기 인사에서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한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겸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이었다. 신 부사장은 쇼케이스 시작 시간보다 약 2시간 일찍 행사장을 찾았다. 그는 신동빈 회장의 아들이다.

신 부사장은 앞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VCM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부사장은 지난 7일(현지 시각) CES에 마련된 롯데이노베이트(286940) 전시관을 찾아 관계자들을 격려한 뒤, 신사업 발굴을 위해 AI와 각종 기술 트렌드가 접목된 삼성전자·TCL·소니 등 빅테크 기업들의 전시관을 둘러봤다. 신 부사장은 2023년부터 매년 VCM에 참석했다.

신동빈 회장은 이날 회의에 참석한 각 계열사 대표에게 그룹 경영 방침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앞서 신 회장은 지난 2일 임직원들에게 전하는 신년사를 통해 “경제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워 혁신 없이는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며 “올 한 해 더욱 강도 높은 쇄신이 필요하다”고 당부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