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 윤석열 대통령의 돌연한 비상계엄 선포 이후 원·달러 환율이 치솟자, 면세업계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업황 부진으로 어려운 와중에 환율이 급등해 상황을 더 악화시킬 거란 우려에서다. 일각에선 영국 등 일부 국가가 자국민에게 한국에 대한 여행 경보를 발령함에 따라 여행 시장이 위축될 거란 관측도 나온다.

4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전날 오후 3시 30분 1402.9원에 거래를 마친 환율은 밤 10시 23분 계엄령 선포 후 치솟기 시작해 밤 11시 50분 1446.5원까지 급등했다. 원·달러 환율이 1446.5원까지 오른 건 금융위기였던 2009년 3월 15일에 기록한 1488.0원 이후 15년 8개월여 만에 최고치다. 다만, 이날 새벽 1시쯤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면서 새벽 2시 환율은 1425원으로 하락했다. 이날 오전 10시 50분 기준 원·달러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12.3원(0.88%) 오른 1415.2원을 기록하고 있다.

코로나19 시기였던 2022년 2월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내 면세점의 모습. /뉴스1

면세업계는 환율 추이에 예의 주시하고 있다. 고환율은 면세업계 매출에 악영향을 끼치는 요인 중 하나다. 면세점은 달러를 기준으로 상품을 팔기에 환율 변화가 실시간으로 가격에 반영된다. 따라서 환율이 오르면 면세점의 상품 매입 부담이 커지는 건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도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최근에는 고환율에 따라 면세품에서 파는 상품의 가격이 백화점 할인 상품보다 비싸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일단 비상계엄은 해제됐지만, 당분간 윤 정치적 불안이 극에 달할 전망이다. 중국 대량 구매 수요(따이궁) 감소와 고환율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면세업계에 불확실성이 더해진 셈이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판매 물품들은 직매입을 통해 미리 사둔 것이기 때문에 환율 상승이 당장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환율이 오르거나 관광객이 줄어드는 건 기업이 손 쓸 수 없는 일이라 상황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면세업계 관계자는 “(비상계엄 사태를) 해프닝으로 보고 긴급 회의를 소집하지는 않았지만, 이후 일어날 일들에 대해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지난 10월 기준 인천국제공항 출입국 객수는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과 비교해 96% 수준으로 회복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면세점 매출 회복은 59% 수준에 그쳤다. 일반적으로 면세 매출은 출입국객 수와 비례했으나, 최근에는 고환율과 중국 경기침체, 여행 소비 트렌드 등의 영향으로 면세점의 영업 환경이 악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면세점 실적 부진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호텔롯데가 운영하는 롯데면세점은 1·2분기 적자에 이어 3분기 46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롯데면세점은 올 하반기 희망퇴직을 실시한 데 이어, 해외 부실 면세점을 철수 등을 통해 상황 대응에 나섰다. 같은 기간 162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신세계면세점도 지난달 첫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신라면세점과 현대면세점도 3분기 각각 382억원과 8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일각에선 여행 시장에도 후폭풍이 이어질거란 우려가 나온다. 비상계엄 선포 사실이 해외에 알려지자 영국 외무부는 한국에 대한 여행 경보를 발령했고, 이스라엘 외무부는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한국 방문을 자제할 것으로 것을 권했다. 미국 국무부는 계엄령 해제 후에도 상황이 불안정할 수 있다며 “평화 시위도 대립으로 변하고 폭력 사태로 확대될 수 있다. 시위 지역을 피하라”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방한 예정인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 여행을 미루거나 취소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더불어 정치 상황에 불안감을 느낀 한국인들의 해외여행도 위축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아직까지 여행 일정을 취소하는 등의 사례는 발생하지 않았다”면서 “관련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