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뉴스1

검색 순위 알고리즘을 조작해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우대했다는 의혹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60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받은 쿠팡이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1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쿠팡과 쿠팡의 자사상표(PB) 자회사 CPLB는 지난 5일 공정위를 상대로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 명령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서울고등법원에 냈다. 이와 함께 소송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공정위가 내린 시정명령 집행을 정지해 달라고 신청했다.

공정위는 지난달 7일 쿠팡에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한 제재 내용을 담은 의결서를 발송하고 162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국내 유통업계에 부과된 과징금 중 최대 규모다. 의결서에는 검색 알고리즘 조작과 임직원 리뷰를 통해 PB 상품이 우수한 것처럼 소비자를 오인케 하고 구매를 유도하는 행위를 중단하라는 시정명령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은 쿠팡의 모기업이자 뉴욕증시 상장사인 쿠팡Inc의 작년 2분기 영업이익(1940억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쿠팡Inc는 올해 2분기 실적 보고서에서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0% 늘었으나, 공정위 과징금 추정치(1630억원)를 선반영해 342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쿠팡이 알고리즘을 조작해 PB 상품과 직매입 상품을 검색 결과 상단에 노출한 점을 문제 삼았다. 입점업체 상품보다 자사 상품을 유리하게 배치해 판매를 늘린 건 위계에 의한 고객 유인 행위라는 판단이다. 또 쿠팡이 임직원을 동원해 PB 상품에 긍정적 구매 후기를 남겨 소비자 판단을 방해했다고 봤다.

그러나 쿠팡 측은 회사의 경쟁력은 상품 추천에서 나오며, 이는 유통업의 본질이라고 항변했다. 대형마트에서 PB 상품을 소비자가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하는 것과 같은 행위라는 거다. 또 임직원 후기 평점은 일반인 후기 평점보다 낮고, 임직원이 작성했다는 사실을 리뷰에 고지했다고 주장했다.

쿠팡 관계자는 “법원에 부당한 상황을 충실히 소명하고 판단을 받겠다”고 말했다.

통상 공정위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에서 승소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공정위가 7월 발표한 ‘2024년 상반기 확정판결 결과 분석’ 결과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된 행정소송 가운데 법원 판단이 최종 확정된 사건은 총 43건이다. 이중 공정위는 36건에서 전부 승소, 3건에서 일부 승소했고, 4건은 패소했다.

다만, 쿠팡은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에서 승소한 전력이 있다. 쿠팡은 지난 2022년 공정위로부터 입점업체에 최저가 납품을 강요했다는 혐의로 33억원가량의 과징금을 부과받았으나, 지난 2월 법원으로부터 “쿠팡의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며 “시정명령과 과징금 납부 명령을 모두 취소하라”는 판결을 끌어냈다.

이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2~3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현재로선 정보가 제한돼 있고, 양측이 바라보는 부분이 달라 쟁점 파악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재판부도 쟁점 파악을 위해 프레젠테이션(PT)을 양측에 요구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면 쿠팡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단, 사안의 복잡성으로 인해 결과가 빨리 나오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행정소송법에서는 행정 처분으로 인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인정할 때 집행정지를 인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으면 집행정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일각에선 쿠팡이 공정위의 결정에 또다시 불복한 배경에는 미국과 다른 한국의 공정거래법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에서 공정위 의결은 법원 1심 판결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 즉 행정기관인 공정위는 특정 기업이 불공정 행위를 했다고 판단하면, 직접 처벌하고 금전적 제재를 부과한다.

반면, 미국 공정당국은 기업이 위법 행위를 하면 이를 법원에 제소해 법원이 이를 판단하고 처벌하도록 한다. 미국에 모기업을 둔 쿠팡 입장에선 한국 공정위의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을 거라는 해석이다.

쿠팡과 공정위 간의 갈등은 또 다른 사안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공정위는 쿠팡이 유료 구독 서비스 가격을 58%가량 올리면서 쿠팡플레이·쿠팡이츠 서비스 등을 무료로 제공한 것이 ‘끼워팔기’에 해당한다는 시민단체의 신고에 따라 전날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를 찾아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