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3000억원 규모의 미정산·미환불 사태를 일으킨 티몬·위메프(이하 티메프)가 회생과 파산의 기로에 선 가운데 이번 사태의 책임자로 꼽히는 류광진 티몬 대표와 류화현 위메프 대표가 회생 개시 시 본인들이 관리인으로 적합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3일 확인됐다. 피해 판매업자(셀러)와 채권자들은 진상 조사가 우선이라며 이들의 태도가 뻔뻔하다고 반발했다.

그래픽=정서희

법조계와 유통업계에 따르면 류광진·류화현 대표가 법정 대리인 법무법인 지평을 통해 법원에 제출한 ‘회생절차 개시 신청서’에는 관리인 선임에 대해 ‘양사 대표가 적합하다’는 의견이 담겼다. 본인들이 관리인으로 적합하다고 한 것이다. 해당 신청서는 지난 7월 29일 티메프가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하면서 제출한 서류다.

해당 서류에는 ▲채무자 회사가 단독 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해 온 점 ▲양 대표 모두 회사의 총괄적인 운영 흐름과 매출에 관련된 주요 결정 등 경영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 ▲채무자 회사의 위기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만한 다른 인물이 없다는 점 등이 적합한 이유로 적혀 있었다.

법원이 회생 개시 결정을 내리면 관리인과 조사위원을 비슷한 시기에 선임해야 한다. 이때 관리인은 회사의 업무 수행권, 재산 관리처분권 등 회생 법인 경영 업무를 도맡는다. 조사위원은 재정적 파탄에 이르게 된 경위와 기업의 청산·존속 가치 산정 등을 전담한다.

피해 셀러·채권자들은 두 대표를 관리인으로 선임하기 전 조사위원부터 정해달라는 입장이다. 재정적 파탄의 직접적 원인이 두 대표에게 있다면 두 사람 모두 관리인이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달 30일에 열린 제2차 티메프 회생절차 협의회에 참석한 한 채권자는 “회생 절차 개시 여부를 떠나서 조사위원 선임을 먼저 해줄 수 없냐는 얘기가 오갔다”며 “티메프 사태의 심각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위원부터 먼저 선임해달라는 의견을 법원에 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티메프 사태 피해자들이 진행한 검은 우산 집회 현장. 사진은 지난달 13일 서울 강남구 티몬 사옥 앞에서 조속한 정산 및 환불 조치, 구영배 큐텐 회장 등 관련자 수사를 촉구하는 모습. /뉴스1

법조계에서는 류광진·류화현 대표의 관리인 선임 요청은 관행에 따른 것으로 본다. 통상 기업이 회생절차를 신청한 경우 기존 경영진을 관리인으로 선임하는 ‘기존 경영자 관리인 체제(DIP)’에 따른다.

박시형 법무법인 선경 대표변호사는 “법원이 회생 개시를 결정했을 시점에 두 대표의 횡령이나 범죄 사실이 수사기관을 통해 기소 처분을 받는 수준이 아니라 고소·고발이나 의혹 정도라면, 이들을 관리인으로 선임하는 게 수순”이라면서도 “기업 사정을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내부 고발이 있거나 재정 파탄 등 부실 경영의 원인이 이들이라는 구체적인 증거가 있다면, 제3자를 관리인으로 선임해 기업회생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했다. 류광진·류화현 대표의 부실 경영 및 재정 파탄에 대한 책임 여부가 법적으로 밝혀지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피해 셀러·채권자들은 류광진·류화현 대표가 관리인 선임 의견을 내놓은 사실에 대해 ‘반성 없는 2차 가해’라는 입장이다. 한 셀러는 “해당 신청서를 낸 시점이 7월 29일인데, 여전히 관리인 선임에 대한 의견이 바뀐 건 없다”며 “아무리 기업 사정을 잘 알아야 한다고 해도, 이미 재정 파탄을 일으킨 장본인들 아닌가. 미덥지 않다”고 했다. 한 채권자는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다시 맡기는 꼴”이라며 “기업을 망하게 한 사람을 기업을 살리는 관리인으로 임명하는 게 말이 되나. 그야말로 2차 가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