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에 따른 지역 소멸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위기 속 지역과 상생하는 유통업체들도 있다. 조선비즈는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토종 유통업체들의 현장 및 지자체 현황을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40년 동안 정식품은 청주와 함께 숨 쉬고 성장해 왔죠. 여기서 일하는 직원 중 약 280명은 청주 사람 입니다. 그만큼 청주공장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남달라요. 우리가 나고 자란 고향 청주를 떠나지 않고 일하면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한 터전이니까요.”

지난 13일 정식품 본사가 있는 충북 청주에서 만난 김명영(56) 정식품 관리부서장은 ‘정식품 청주공장이 청주에 어떤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56년 청주 토박이인 김 부서장은 정식품에서만 31년째 근속 중이다. 그는 “저뿐만 아니라 청주가 고향인 사람들은 여기서 기본 10년은 일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지난 13일 방문한 충북 청주 소재의 정식품 청주공장 전경. /민영빈 기자

정식품은 국내 대표 두유 제품인 베지밀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베지밀(Vegemil)은 식물성 우유(Vegetable+Milk)라는 의미로, 정식품 창립자이자 의학박사인 고(故) 정재원 명예회장이 2년간 연구 끝에 만든 제품이다. 1937년 소아과 의사로 재직한 정 명예회장은 당시 환아들이 배앓이를 하다가 사망하는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27년간 연구했다. 1964년 유당불내증(유당소화장애)이 발병 원인인 것을 알아낸 뒤 유당 성분이 전혀 없는 두유 베지밀 개발에 성공했다.

정 명예회장이 1973년 정식품을 설립한 뒤 준공한 생산 공장은 2곳으로 신갈공장과 청주공장이다. 현재 신갈공장은 고가도로 건설로 부지만 있을 뿐, 제품 생산은 하지 않는다.

지난 13일 방문한 정식품 청주공장 내 자동화기기를 통해 베지밀이 쌓인 팔레트가 움직이고 있다(4배속). /민영빈 기자

1984년에 준공해 올해 40년 된 청주공장은 하루 약 290만 개의 베지밀을 생산할 수 있는 자동화 생산 설비를 갖추고 있다. 콩 불순물·껍질 등을 제거한 천연 콩물엔 조정실 슈퍼컴퓨터를 통해 비타민이나 칼슘 등 부족할 수 있는 영양소를 비율대로 넣고, 공정마다 설치된 자동화 기기를 통해 공병·팩·파우치 등에 담겨 멸균·소독 작업을 거쳐 팔레트에 진열된다. 약 3000만 개가 한 팔레트에 보관된다.

청주공장에 한 번에 보관 가능한 콩의 양은 3000톤(t)이다. 이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베지밀 제품의 3개월 치에 해당하는 양이다. 이 중 수입산 콩은 약 90%에 해당한다. 균일한 맛을 내야 하는 만큼 동일한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막대한 양을 공급받으려다 보니 수입산 콩을 사용하게 됐다는 게 정식품 측의 설명이다. 대신 나머지 약 10%는 경남 사천·전북 익산·전남 고흥 등 콩이 잘 자라는 산간지대의 콩밭을 미리 계약해서 공급받고 있다. 단 GMO 콩은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다.

그래픽=정서희

◇정식품 직원 90%는 청주 시민… 미국·중국·인도네시아 등 세계로 뻗어가면서 매출 상승세

청주에 본사와 공장을 모두 둔 정식품 매출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정식품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정식품의 지난해 매출은 2692억원으로 전년 대비 4.5% 증가했다. 최근 3년간 연평균 매출액 증가율(CAGR)은 3.2%로, 올해 2777억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국내 소비 외에도 전 세계 20여 개국 수출과도 관련이 깊다. 헬시플레저(Healthy pleasure·즐겁게 건강 관리하는 것) 트렌드에 발맞춘 미국과 아침식사로 콩국물을 자주 먹는 중국·대만·홍콩 등에 수출하는 양이 많기 때문이다. 또 할랄 인증까지 받은 정식품은 인도네시아·아랍에미리트(UAE) 같은 이슬람 국가에도 베지밀 등을 수출하고 있다.

현재 청주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은 총 301명이다. 사무 관리직 40명과 기술직 포함 3교대 직원 등 261명이 재직하고 있다. 이들 중 약 90%는 청주 시민이다. 나머지 10%는 청주 인근 지역인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출퇴근한다. 공장 직원들의 초임이 보통 연 3000만원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청주 시민의 연간 급여 소득 중 최소 90억원이 이곳에서 발생하는 셈이다.

지난 13일 방문한 충북 청주 소재의 정식품 중앙연구소 1층에 진열돼 있는 제품들. 베지밀은 두유 제품, 그린비아는 환자식(食) 제품, 간단요리사는 채소 육수·콩국물 등 간편 요리 제품 등을 생산하는 브랜드명이다. 오른쪽에는 콩눈을 활용한 세제나 화장품 등 제품도 진열돼 있다. /민영빈 기자

◇지역 대학과 산학협력 통해 인재 양성하는 정식품… 대체육·유산균·화장품 등 연구 다각화 추진 중

정식품은 콩과 두유에 대한 학술 연구와 임상 실험도 수행하고 있다. 오는 2030년까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하는 게 정식품의 목표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베지밀과 같은 대표적인 두유 제품 외에도 고부가 가치가 있는 대체육·유산균 혹은 화장품 등 제품의 품목을 확대하기 위해 연구 방향을 다각화하는 중이다. 현재 정식품은 콩눈을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협력사와 함께 개발한 세제나 화장품 제품도 출시하고 있다.

정식품 청주공장 근처에 마련된 중앙연구소는 1985년 준공했다. 이곳에는 현재 연구원 30명이 재직 중이다. 중앙연구소는 연구·기획 부서와 제품 개발 부서 등 2곳을 운영하고 있다. 연구·기획 부서는 식품 관련 법령이 재개정되면 관련 내용을 본사에 배포하거나 식약처 등 정부 기관에 정책을 건의한다. 특히 신사업을 할 때엔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파악해 로드맵을 작성해 제품 개발 부서에 공유한다. 개발팀은 세 팀으로 나눠 제품·브랜드별로 연구에 들어간다.

중앙연구소는 지역 대학과의 산학협력을 통해 공동 연구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지역 인재 양성소 역할을 해 온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충북 바이오헬스산업 혁신센터에서 예산을 받아 지자체와 함께 콩의 면역 기능성을 입증해 기술을 개발한 연구였다. 이외에도 고부가 가치 제품 개발을 위해 충북대학교 식품생명공학과 대학원생,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생 등과 함께 콩에 유산균을 이용하는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최재권 정식품 연구기획부서장 수석연구원은 “작년에 입사한 연구원 중 1명은 충북대학교 식품생명공학과 학생이었다. 약 8명의 대학원생이 우리와 같이 연구를 하다가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해 함께 연구했다”면서 “우리와 함께 연구해 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채용하는 건 아니다. 다만 같은 연구를 함께하는 작업을 통해 지역 후진 양성에 일조하는 것 같아 보람차다”고 말했다.

청주 지역에서는 정식품이 지방 인구 소멸 위기에서 소위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청주시청 관계자는 “베지밀을 만드는 정식품은 지역에 뿌리를 내린 지 40년 된 청주 대표 기업”이라며 “베지밀 제품 연구나 콩을 활용한 제품 연구 등 산학협력 차원에서 지역 인재를 양성하고 이들 중 일부는 정식품에서 일한다는 점에서 인재 유출 문제를 막고 있다”고 말했다.

정식품 청주공장과 중앙연구소 사이에 마련된 혜춘홀에 전시된 사진 중 일부. 고(故) 정재원 명예회장의 호인 '혜춘'을 따 만들어진 기념관에 정 명예회장의 소아과 의사 시절과 당시 개발된 베지밀 제품 사진이 걸려 있다. /민영빈 기자